동자동 쪽방촌 거주하던 전 노숙인
더위에 지하도 갔다 실랑이 끝 범행
새벽 시간 서울 도심 지하보도에서 60대 여성 청소노동자가 흉기에 찔려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지하보도에서 노숙을 하기도 했던 가해자는 사건 당일 피해자인 청소노동자와 말다툼을 하다가 흉기를 휘두른 것으로 확인됐다.
2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오전 8시 50분쯤 흉기로 60대 여성을 살해한(살인) 혐의를 받는 70대 남성 A씨를 긴급체포해 조사 중이다. A씨는 이날 오전 5시 10분쯤 중구 숭례문 지하보도에서 60대 여성을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다.
"누군가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다"는 112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주변 폐쇄회로(CC)TV 영상을 통해 범행 3시간 40분 만에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인근의 한 골목에서 A씨를 검거했다. 피해 여성은 발견 직후 심폐소생술(CPR)을 받으며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오전 6시 20분쯤 끝내 숨을 거뒀다.
A씨는 범행 직전 피해자와 실랑이를 벌였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작년부터 알고 지내던 피해자와 대화를 하다가, 노숙인이라는 처지 때문에 무시를 당했다는 생각에 흉기를 휘둘렀다'는 취지로 당시 상황을 전했다.
범행이 일어난 지하보도는 최근 대청소를 실시했는데, 해당 구역에 노상방뇨를 하는 이들이 많아 실랑이가 빈번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범행 당시 음주상태는 아니었으며 마약 간이검사에서도 음성 반응이 나왔다. A씨는 원래 노숙을 하다가 작년 12월부터는 쪽방촌에 거주했다고 한다. 더운 날씨에 선풍기와 에어컨이 없는 쪽방촌에 머무르기 어려워 새벽에 지하보도 등을 자주 찾았는데, 이날도 남대문 지하보도에 갔다가 피해자와 만난 것으로 확인됐다.
숨진 여성은 숭례문 지하보도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였다. 근무시간은 오전 6시부터 오후 3시지만,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2일까지 대청소 기간이라 사건 당일엔 정해진 근무 시간보다 일찍 출근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구청 관계자는 "구청과 계약한 청소 관리 용역업체 직원이었다"며 "2020년부터 일한 것으로 확인된다"고 했다.
끔찍한 사고에 동료 청소노동자들도 놀란 마음을 금치 못했다. 한 청소노동자는 "사고 발생 전날인 어제까지 같이 일하고 밥을 먹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상상도 못 했다"면서 "오늘 출근해 소식을 듣고 크게 놀랐다"고 말했다.
주변 상인과 시민들도 사람이 많이 오가는 장소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에 불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지하보도 인근에서 30년째 잡화점을 운영하는 상인은 "출퇴근할 때 지나가는 길에서 칼부림이 있었다고 해 깜짝 놀랐다"면서 "피해자는 지나다니며 눈인사를 나누던 분이었는데 이런 일이 벌어졌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숭례문 인근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김모(28)씨도 "평소 식사하러 자주 오가는 길"이라며 "언제 어디서 이런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낯선 이에 대한 경계가 심해질 것 같다"고 털어놨다.
경찰은 A씨를 상대로 구체적인 범행 이유와 경위에 대해 조사한 뒤 구속영장을 신청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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