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원 "정당 범위 내 인용" 주장
2심 "저작권법 취지 벗어나" 판단
"사용료 지급해 공익·저작자 균형"
문학·미술 작품을 인용한 대학수학능력시험 문제를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개한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이 저작권료를 내지 않은 건 위법하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공익상 필요하다면 사용료를 지급하고 기출문제를 게시하는 방식으로 공익과 저작자 간 이익의 균형을 도모할 수 있다는 취지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한국문학예술저작권협회가 평가원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지난달 11일 확정했다.
협회는 평가원이 2009~2019년 수능 등에 출제된 문제를 홈페이지에 게시해 누구든지 다운로드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저작권법 위반이라며 1,700만 원을 배상하라고 청구했다. 시와 소설, 미술 작품 등 이 기간 동안 155개 저작물을 인용한 문제를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게시해 협회에서 관리하고 있는 저작권자의 전송권을 침해했다는 주장이다. 반면 평가원은 "공표된 저작물을 교육 등을 위해 정당한 범위 안에서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게 인용한 행위"라면서 저작권법상 허용된다고 맞섰다.
1심은 "공익적인 목적 외에 영리적 목적이나 사적인 이익을 위해 이뤄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평가원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2심에선 평가원이 저작물을 인용해 문제를 내는 것을 넘어 홈페이지에 게시하는 건 저작권법 취지를 벗어난다고 판단해 1심 결론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시험 종료 후 저작권자 동의 없이 시험문제를 공개하는 것은 정당한 채점과 성적을 제공하는 데 필요한 제한적 범위에서만 허용돼야 한다"며 1,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결정했다.
대법원 판단도 2심과 같았다. 출제부터 성적 제공까지 모든 과정이 완료된 이후 기간 제한 없이 불특정 다수인에게 저작권자 허락 없이 저작물을 전송한 건 시험 목적에 필요한 정당한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저작권 침해를 방지하려 복제방지 조치를 취하지도 않았고, 출처도 표시하지 않은 점 등을 지적했다.
대법원은 시험 문제 공개라는 공익·비영리적 측면을 인정하면서도, 게시를 위해선 사용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대법원은 "평가원은 공익상 필요한 경우, 이 사건 저작물에 대해 승인된 사용료를 지급하고 평가문제를 비롯한 기출문제를 홈페이지에 게시하는 것이 가능하다"면서 "이를 통해 공익과 저작자 간 정당한 이익의 균형을 적절히 도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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