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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만 담당 젊은 교수들 97% 사직 고민 "격무·저임금·소송 부담"

입력
2024.08.07 13:0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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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세 미만 산과 교수 설문조사
산과 전망 매우 부정적 89.2%
"싫은 게 아니라 엄두가 안 나"
산과 교수 멸종 속도 빨라질 듯
"고위험 산모 증가… 대책 마련을"

"개선 방안은 없는 것 같아요. 사명감 하나로 버티기 힘든 수준입니다. 제 (연차) 아래 산과 의사는 전멸할 것으로 생각되고 저 또한 사직합니다."

서울 근무 중인 30대 산과 교수

지난 6월 19일 경기 성남시 수정구 곽여성병원의 문이 굳게 닫혀 있다. 129병상 규모의 이 병원은 2018년 전국 분만 건수 1위에 올랐지만 저출생 등 영향으로 폐업을 결정했다. 뉴스1

지난 6월 19일 경기 성남시 수정구 곽여성병원의 문이 굳게 닫혀 있다. 129병상 규모의 이 병원은 2018년 전국 분만 건수 1위에 올랐지만 저출생 등 영향으로 폐업을 결정했다. 뉴스1

젊은 산과(産科) 교수 대부분은 진지하게 사직을 고민한 적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격무와 낮은 급여, 의료소송 부담 탓이다. 고위험 산모는 증가하고 있는데 이들을 진료할 산과 교수들은 줄어들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국일보가 박지윤 분당서울대병원 산부인과 교수의 도움을 받아 7월 11일부터 2주간 50세 미만 전국 산과 교수 37명(총 60명 중 61.7%)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진지하게 사직을 고민한 적 있다'는 응답자가 36명(97.3%)에 달했다. 15명(40.5%)은 '자주' 고민했다고 답했고, '종종' 고민한 적 있다는 응답자는 21명(56.8%)이었다. 산과 교수로서 애로사항(복수응답)을 물었더니 '하는 일에 비해 적은 월급'이라는 답변이 75.7%로 가장 높았다. '과도한 진료 업무 및 당직'(70.3%), '고위험 산모 진료에 대한 책임과 부담'(62.2%)이 뒤를 이었다.

앞서 본보는 지난 5월 전국 95개 전공의 수련병원의 산과 교수 현황을 조사했다. 산과 교수 상당수가 50~60대라 자연감소가 급격히 진행 중인데, 젊은 산과 교수들마저 사직에 나선다면 '산과 교수 멸종' 속도는 더 빨라질 수밖에 없다. 설문을 도운 오수영 삼성서울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대한민국 산과 상황을 '적색 경보'(Red Alram) 가운데 가장 심각한 '울트라 적색 경보'(Ultra Red Alram)로 진단한 바 있다.

설문에 응한 한 산과 교수는 "대한산부인과학회를 비롯해 많은 학회가 있지만 어디에서도 산과 후배들의 처우와 근무환경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며 "대형병원 몇몇 교수들이 돌아가며 회장을 맡고 행사 개최에만 몰두하면서, 행사 준비 등 산더미 같은 일들은 젊은 교수들이 떠맡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현지 분당서울대병원 산부인과 교수가 지난 3월 14일 분당서울대병원 수술실에서 제왕절개 수술을 집도하고 있다. 정다빈 기자

김현지 분당서울대병원 산부인과 교수가 지난 3월 14일 분당서울대병원 수술실에서 제왕절개 수술을 집도하고 있다. 정다빈 기자

향후 산과 전망에 대해 긍정적으로 본 젊은 교수들은 한 명도 없었다. '매우 부정적'이라는 답변이 89.2%에 답했고, '다소 부정적' 10.8%였다. 향후 개선되길 바라는 사항에 대해선 '의료사고에 대한 법률 제정'이 97.3%로 가장 많았고, '급여 증가'(81.1%), '당직의 채용 등 진료 부담 완화'(54.1%) 순이었다.

30대 후반의 한 산과 교수는 "산과는 예비 전문의들에게 '하기 싫은 분야' '비인기과' 차원을 넘어, '하고 싶지만 엄두가 안나는 곳'이 돼버렸다"며 "의료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권역별 분만센터가 안정적으로 유지돼야 하고, 불가항력적 의료사고로부터 의료진과 환자, 가족을 보호할 수 있는 국가 차원의 보상제도가 시급히 도입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 달 당직 횟수 (단위:%)50세 미만 전국 산과 교수 37명 설문조사


산과 교수들은 잦은 당직과 온콜(Oncall·응급환자 발생 시 병원 출근)로 특히 힘들어했다. 응답자의 45.9%는 밤새 병원에서 대기하는 당직을 월 3~5회 한다고 답했고, 나흘에 한 번꼴(월 6~8회)로 당직한다는 교수도 43.2%에 달했다. 사흘에 한 번(월 9~12회)이라는 응답자도 2명(5.4%) 있었다.

온콜의 경우 절반 가까운 의사들(48.6%)이 월 13회 이상 한다고 답했다. 3~5회는 21.6%, 9~12회는 13.5%였다. 결국 당직과 온콜을 포함하면 젊은 산과 교수들은 대체로 일주일에 절반 정도를 병원에서 밤을 새우며 격무에 시달리고 있었다. 실제로 주당 근무시간을 물었더니 절반 가까운(45.9%) 교수들이 81~100시간 일한다고 답했다. 53~80시간이 21.6%, 101~120시간이 13.5%, 120시간 초과가 10.8%로 조사됐다.

일주일 근무 시간(단위:%)50세 미만 산과 교수 37명 설문조사


월 13회 이상 온콜을 받는다는 40대 후반의 한 산과 교수는 "개인병원 의사 수준의 삶의 질과 급여가 보장돼야 젊은 의사들이 대학병원 산과 교수 지원을 고려할 것"이라며 "지금처럼 임금은 적고 노동강도는 높은 상황에서 의료사고 리스크까지 크다면 누가 교수직을 원하겠느냐"고 말했다.

이번 설문조사의 응답자 평균 나이는 40.9세로 여성이 86.5%, 남성이 13.5%였다. 근무 지역은 서울 35.1%, 인천·경기 32.4%, 영남 27.0%, 충청 및 호남 각각 2.7%였다.

50세 미만 산과 교수 37명 설문조사

산과 교수로서 업무에 힘든 점 (복수응답 가능) 응답 수(비율)
적은 급여 28(75.7%)
과도한 진료 업무 및 당직
26(70.3%)
진료에 대한 책임 및 부담
23(62.2%)
연구 진행의 부진함 14(37.8%)
원하지 않는 학회 활동 7(18.9%)
선배 교수의 진료 및 연구업무 지시 6(16.2%)
병원 행정 업무 6(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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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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