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 지옥이 된 바다 1부]
② 늙은 어부의 고백
한국일보가 만난 어부·해녀 63명 생생 경험담
"수십 년 버린 쓰레기, 바다가 토해내기 시작"
편집자주
콧구멍에 플라스틱 빨대가 박혀 피 흘리는 바다거북, 배 속에 찬 쓰레기 탓에 죽은 향유고래. 먼바다 해양 생물들의 비극은 뉴스를 통해 잘 알려졌죠. 우리 바다와 우리 몸은 안전할까요? 한국일보는 3개월간 쓰레기로 가득 찬 바다를 찾아다녔습니다. 동해와 서해, 남해와 제주에서 어부와 해녀 63명을 만나 엉망이 된 현장 얘기를 들었고, 우리 바다와 통하는 중국, 일본, 필리핀, 미국 하와이를 현지 취재했습니다. 지옥이 된 바다. 그 가해자와 피해자를 추적했습니다.
"밤바다에 들어가면 정강이에 뭔가 툭툭 차이던 때가 있었지. 손에 든 횃불로 가만히 비춰 보면 속이 통통하게 찬 꽃게가 가득했어. 지금 생각하면 꿈같은 얘기네."
어부 박정섭(66)씨는 평생을 함께한 충남 서산의 가로림만 바다를 바라보며 50년 전 일을 떠올렸다. 그는 바라는 것 없이 모든 걸 내주던 이 바다에서 자랐다. 미역을 양식하고 꽃게와 숭어도 잡으며 아들 둘을 키웠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넉넉하던 바다가 돌변했다. 고기 대신 온갖 쓰레기가 어망에 딸려 왔다. 꽃게 잡는 어망과 밧줄, 찢어진 라면 봉투에 검은 비닐봉지와 페트병까지. 여기에 원래 모습을 가늠하기 어려운 색색의 플라스틱 조각들도 수시로 보였다. 그는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누굴 탓하겠어? 범인은 어부들이야. 나도 예외는 아니지.”
박씨의 고백은 특별하지 않다. 한국일보 특별취재팀은 쓰레기로 뒤덮인 우리 바다를 3개월간 취재하며 경험 많은 어부와 해녀 63명을 만났다. 그들은 모두 박씨와 비슷한 경험담을 털어놨다. "어민들이 수십 년간 버려온 쓰레기를 바다가 매섭게 토해내고 있다"는 것이다.
필요없어진 어구들, 어민들은 바다로 던졌다
어민들이 가장 흔히 버리는 건 고기 잡을 때 쓰는 도구들이다. 바다에 한 해 동안 버려지는 해양 쓰레기(14만5,000톤, 2021년 해양수산부 추산) 중 4분의 1이 그물이나 통발 등 어구다. "일부러 버리는 것보다 뜻하지 않게 떠내려가는 게 많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인천 지역 30년차 한 어부의 이야기는 달랐다.
"꽃게는 자망(꽃게 떼가 지나가는 길목에 그물을 쳐놓고 그물코에 걸리면 어획하는 방식)으로 잡거든요. 근데 속이 차지 않거나 너무 작은 놈들이 걸리면 큰 게가 달린 부분만 오려서 챙긴 뒤 나머지는 그냥 그물째 바다에 버려요. 육지로 가져와도 상품성이 없고, 냄새만 심하니까요. 이런 얘기 하면 다른 어민들에게 엄청 욕먹겠지만, 내가 아는 어민 중 쓸모없어진 그물을 뭍으로 가져오는 사람은 한 명도 못 봤어요."
어업은 속도가 생명이다. 어획량과 무관하게 배가 물에 떠 있는 동안 드는 비용(연료비, 인건비 등)은 똑같다. 최대한 빨리 많은 고기를 잡아야 이문을 남길 수 있다. 암초 또는 다른 배에 걸려 망가진 그물과 밧줄을 선상에서 손질해 다시 쓰거나 바다에 떨어진 어구를 수거할 여유가 없다는 게 어민들 얘기다. 그물에 폐어구가 딸려 올라오면 어떻게 할까. 뭍으로 가져오는 대신 대부분 바다에 도로 던진다. 배 위 공간이 좁아 그냥 버리는 게 편하다. 그물은 대부분 플라스틱 소재인 나일론으로 만들어져 600년 동안 썩지 않는다.
미끼 포장재 등 낚시할 때 생기는 다른 쓰레기도 골칫거리다. 제주 서귀포 앞바다에서 벤자리, 도미 등을 잡는 한철남(62)씨는 "어민들이 참 무시로 쓰레기를 버렸다"면서 "요즘 그물을 끌어 올리다보면 그 쓰레기가 다 돌아오는데 특히 미끼용 꽁치를 포장했던 비닐이 많다"고 말했다.
바다를 밭으로 삼는 양식장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전체 해양 쓰레기의 4% 정도가 양식장에서 나올 정도로 많다. 양식장 경계 표시나 구조물 설치 등에 쓰이는 부표와 말뚝, 밧줄 등이 파도나 바람에 수시로 떠내려가지만 다시 찾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이 든 어민들은 "뱃사람들은 뭐든 바다에 버리는 게 습관이 됐다"며 안타까워했다. 예컨대 배에서 나오는 생활 쓰레기도 바다에 버린다. 실제 기자가 지난 6월 승선했던 서해 어선에선 선원들이 고단함을 잊으려 믹스 커피를 하루에 11~15잔씩 마셨다. 그러고는 아무렇지 않게 비닐 포장재를 바다로 던졌다. 라면 봉지와 페트병, 종이컵 등도 바다에 버린다. 배 안에 작은 쓰레기통이 있지만, 가득 차면 이 또한 바다로 내던졌다. 수중에 직접 들어가 작업하는 해녀들은 바다 쓰레기 실태를 적나라하게 목격한다. 부산 영도 해녀 이정옥(70)씨는 "이불이나 옷가지도 흔히 본다"며 "배에 널어둔 게 날아가면 다 쓰레기가 된다"고 했다. 어민들은 고장 난 밥솥이나 선풍기, 냉장고 등 가전 제품도 심심치 않게 바다에 던진다.
바다가 넓은 줄 알아서, 문제 삼지 않아서…그래서 버렸다
어부들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왜 버렸고, 줍지 않나. 크게 네 가지 답변이 돌아왔다.
먼저 ①"바다가 넓은 줄 알았다"는 순진한 대답이다. "바다가 워낙 넓고 버려봤자 표도 안 나니까 그냥 없어지는 줄 알았다"는 것이다. 한씨는 "채낚기(낚싯바늘이 여럿 연결된 줄을 던지는 조업법)로 고기를 잡을 때는 바다 쓰레기가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그물을 쓰면서 바닷속이 엉망이 됐음을 느꼈다"며 탄식했다. 많은 어민이 '나 하나쯤 버려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 투기했고, 문제가 심각해졌을 때는 '나 혼자 줍는다고 의미가 있겠어?"라고 판단해 내버려뒀다는 얘기다.
②누구도 문제 삼지 않아 버렸다는 얘기도 많이 한다. 사실 어장에 폐그물을 버렸다가 적발되면 엄벌에 처한다. '해양 폐기물 및 해양 퇴적물 오염 관리법'에 따르면, 어구를 버리면 7년 이하 징역 또는 7,000만원 이하 벌금형이다. 하지만 해수부 관계자는 "2007년 이 부칙이 만들어졌지만 지금껏 처벌받은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망망대해에서 조업하는 배에서 쓰레기를 버려도 단속이 쉽지 않은 탓이다.
선한 마음을 먹고 항구로 쓰레기를 가져와도 ③버릴 장소가 마땅치 않다. 해수부와 지방자치단체는 폐그물 등을 버릴 수 있는 해양 폐기물 집하장을 운영하는데, 전국적으로 795개에 불과하다. 단순 계산하면 국내 항·포구(2,301개·2023년 기준) 10곳 중 7곳에는 버릴 데가 없다는 얘기다. 오랜 조업을 마치고 몸이 녹초가 돼 항구로 돌아온 어부가 쓰레기를 버리러 차를 타고 먼 집하장까지 찾아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결과적으로 어부 입장에서는 ④쓰레기를 바다에 버리는 편이 경제적으로 이득이다. 폐그물 등 쓰레기를 포대에 넣어 모아오려면 노동력과 시간이 드는데 이때 고기를 잡는 편이 낫다. 그물이 비싸지 않은 것도 투기를 부추긴다. 전남 흑산도에서 3대째 어업에 종사하는 최승진(48)씨는 달라진 어촌의 실상을 설명했다.
“할아버지는 그물을 만들어 썼고, 아버지는 목포에서 사온 그물 하나를 ‘죽을 때까지 쓸 것처럼’ 고쳐 썼어요. 하지만, 지금 내가 그물을 고쳐 쓴다고 하면 다들 한심하게 볼 겁니다.”
실제로 값싼 중국산 그물이 수입되면서 새 그물을 살 때 부담이 없어졌다. 최씨는 “아버지 세대 어부들이 10년에 한 번 그물을 버렸다면 지금은 한 달에 한 번 버리는 꼴”이라고 했다. 2대째 어업에 종사하는 인천의 한 어민도 비슷한 현실을 전했다.
“100m당 그물 가격이 2만3,000원~2만8,000원인데 30년 전 시세랑 별반 차이가 없어요. 그물 값을 못 뽑아서 빚졌던 건 옛날 얘기죠.”
폐어구 탓 고기 죽는 '유령어업', 연간 어획량의 10%
쓰레기를 버린 업보는 고스란히 어부들에게 돌아온다. 40년째 바다에서 일하는 서산 어민 공무철(63)씨는 지난 5월쯤 아귀를 사서 손질하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배를 갈랐는데 500㎖ 플라스틱 생수병이 통째로 나온 거예요. '바다가 이만큼 위험해졌구나' 새삼 느꼈죠."
입이 큰 아귀는 아무것이나 통째로 삼키는 습성이 있다. 이 때문에 옛날 어부들은 이 생선을 잡으면 배를 갈라 소화시키지 못한 조기나 병어를 꺼내 먹었다. 이제는 생선 대신 쓰레기를 품고 있는 셈이다.
바다가 쓰레기로 오염되면 어획량이 줄 수밖에 없다. 바다에 버려진 통발이나 그물에 물고기가 갇혀 굶어죽는 '유령어업' 현상 때문이다. 해수부의 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폐어구 탓에 연간 어획량의 약 10%(약 4,147억 원·2021년 기준) 정도는 피해를 보는 것으로 추정된다.
쓰레기는 어민들의 목숨까지 위협하고 있다. 어선의 스크루(선박 추진용 회전 날개)에 폐그물이나 밧줄이 얽혀 선박을 멈춰 세우거나 심하면 전복시키는 일도 생긴다. 바다에 떠다니는 쓰레기 탓에 사고를 당해 수협에 보험 청구한 건수는 최근 5년간 연평균 3,800건에 달한다. 보험 청구를 하지 않은 경미한 사고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짐작된다.
"심각한 것 알지만…" 답답해하는 어부들
그나마 희망적인 건 어민들의 인식이 더디지만 꾸준히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일보가 만난 어업 종사자 대부분은 "이제 어민들도 해양 쓰레기가 우리 바다를 얼마나 망쳐놨는지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장 할 수 있는 작은 변화부터 시도해보는 이들도 늘었다. 흑산도 어부 최씨는 3년여 전부터 스티로폼 대신 친환경 부표를 쓴다. 빨리 썩기 때문에 혹여나 바다로 떠내려가도 생태계에 치명적이지 않다.
멍게 생산지로 유명한 경남 통영 영운리의 김광진(51) 어촌계장은 정부 지원 예산으로 마을 양식장 오염 실태를 조사했다. 일부 주민들은 양식장 오염 문제가 거론되는 걸 꺼려 했지만, 김씨가 주민들을 설득해 추진했다. 실제 두 눈으로 본 바닷속 상황은 심각했다.
“멍게 껍질 등 어민들이 습관적으로 버려온 양식 쓰레기가 바다에 2.5m씩이나 쌓였더라고요."
상황을 정확히 알게 된 어민들은 쓰레기를 덜 버리기 시작했다.
문제는 어민들의 선의를 꾸준히 지속·확대시킬 시스템이 없다는 점이다. 예컨대 최씨는 바다에서 쓰레기를 몇 번 주워왔지만 육지에서 이를 처리하기 어려워 난감했다고 한다. 포구와 집하장이 멀고, 분리수거 작업도 복잡했기 때문이다. 어민들은 정부나 지자체가 나서 쓰레기를 마구 버리는 동료 어민들의 행동엔 '채찍'을, 쓰레기를 줍는 바람직한 행동엔 '당근'을 주는 시스템이 만들어지길 바란다.
기자에게 암울한 현실만 토로하던 서산 어민 박씨는 인터뷰 끝에 남다른 의지를 내비쳤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 아니냐고요? 맞아요. 그래도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할 우리 바다잖아요.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꾸준히 노력해야죠."
■한국일보 특별취재팀
팀장 : 유대근 기자(엑설런스랩)
취재 : 진달래·원다라·이서현 기자(엑설런스랩), 조영빈(베이징)·허경주(하노이) 특파원, 한채연 인턴기자
사진 : 이한호·최주연·정다빈 기자
영상 : 박고은·김용식·박채원 PD, 제선영 작가, 이란희 인턴PD
※<제보받습니다> 한국일보는 해양 쓰레기 문제를 집중 취재해 보도해 나갈 예정입니다. 해양 쓰레기 예산의 잘못된 사용(예산 유용, 용역 기관 선정 과정의 문제 등)이나 심각한 쓰레기 투기 관행, 정책 결정 과정의 난맥상과 실효성 없는 정책, 멸종위기종 등 동물들이 쓰레기 탓에 겪는 피해, 그 외에 각종 부조리 등을 직접 경험했거나 사례를 직·간접적으로 알고 있다면 제보(dynamic@hankookilbo.com) 부탁드립니다. 제보한 내용은 철저히 익명과 비밀에 부쳐집니다. 끝까지 취재해 보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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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사람도 포기한 바다
늙은 어부의 고백
해양 쓰레기의 역습
세금 포식자가 된 쓰레기
국경 없는 표류
불편한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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