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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장교' 꿈 접고, 조울증과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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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장교' 꿈 접고, 조울증과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입력
2024.08.25 17:30
수정
2024.08.25 18:03
21면
0 0

[사회적기업 '향기내는사람들' 황소영씨]
임관 후 감정기복·불면증 6년 만에 전역
조울증 고백하고 사회적기업서 새 출발
"특별한 삶, 증상 당당하게 드러낼 것"

6년째 조울증을 겪고 있는 황소영씨가 6월 27일 세바시와 함께하는 서울시민 쏘울 자랑회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서울시 제공

6년째 조울증을 겪고 있는 황소영씨가 6월 27일 세바시와 함께하는 서울시민 쏘울 자랑회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서울시 제공


“‘당신이 잘 지내고 있으니 나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저를 거쳐간 모든 사람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에요.”

황소영씨의 세바시 강연 중

지난 6월 27일 서울시가 강연 프로그램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와 함께 평범한 이웃의 역경과 도전 이야기를 나누는 '제5회 서울시민 쏘울 자랑회'를 개최한 시청 8층 다목적홀. 커피 브랜드 '히즈빈즈'를 운영하는 사회적기업 '향기내는사람들'의 인사행정담당 사원 황소영(31)씨가 연단에 올랐다. 황씨는 6년 동안 조울증을 겪으며 바뀐 삶을 떨림 가득한 목소리로 풀어냈다. 자신의 정신질환을 대중 앞에 털어 놓은 황씨의 용기 있는 고백에 많은 이들이 눈물을 훔쳤고, 응원의 메시지도 보냈다. 최근 유튜브에 올라온 강의 영상 조회 수는 25일 기준 8만2,000회를 넘겼다. 지난 2일 한국일보와 만난 황씨는 "강연을 통해 나를 알고 지낸 사람들에게 일종의 안부 편지를 보낸 것"이라며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힘을 얻기 바라는 마음이 컸다"고 활짝 웃었다.

촉망 받던 해군 장교, 돌연 전역한 까닭은

2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산학관에서 만난 황소영씨가 조울증으로 인해 바뀐 삶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신용주 인턴기자

2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산학관에서 만난 황소영씨가 조울증으로 인해 바뀐 삶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신용주 인턴기자

황씨는 2015년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군인이었다. 꿈꿔왔던 군인의 길 외 다른 삶은 생각해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애정도 깊었던 그는 대위 진급을 앞둔 2018년쯤부터 이상한 증상이 조금씩 나타났다. 부대 내에서 감정조절이 힘들어져 갑자기 화를 내기 일쑤였고, 식욕이 없어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3교대 업무와 새벽 당직, 배를 타는 불규칙적인 생활로 잠 못 이루는 날이 반복되는 삶을 이어온 와중에 발현된 증상이었다. 황씨가 어렵사리 찾은 군병원은 조울증으로 진단했다. 입퇴원을 반복하며 휴직도 1년이나 했다. 황씨는 "되돌아보면 전조증상을 무시했던 게 화근이 됐다"며 "'쉬면 낫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이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지경으로 몰아갔다"고 털어놨다.

동기들보다 뒤처진다는 생각에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미친 듯 숨차게 뛰어가도 따라잡을 수 없겠다는 생각에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어요." '해군 대위 황소영'은 2021년 군복을 벗었다. 촉망 받던 군인의 삶은 6년 만에 끝났다.

조울증 있는 구직자, 받아줄 수 있나요?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산학관에서 만난 황소영씨가 앞으로 삶에 대한 목표를 설명하고 있다. 신용주 인턴기자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산학관에서 만난 황소영씨가 앞으로 삶에 대한 목표를 설명하고 있다. 신용주 인턴기자

전역 후 치료를 병행하며 구직활동도 했지만 줄줄이 낙방이었다. 그러는 사이 조울증은 더욱 심해졌고, 자살 충동도 들었다. "기업에 이력서를 제출할 때나 면접에서 정신질환을 솔직하게 고백했어요. 불리한 결점을 말하지 않아,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뒷감당을 하고 싶지도 않았고요."

다행히 황씨의 처지를 이해해준 현 직장 '향기내는사람들'이 손을 내밀었다. 서울과 경기, 경북 포항에서 기업의 사내 카페 운영과 장애인 고용 및 취업 컨설팅을 하는 이 회사는 황씨의 증상이 악화하지 않게 근무시간 조정 등 물심양면으로 배려했다. 덕분에 6개월만 버티자고 다짐했던 황씨는 벌써 1년 6개월째 근무 중이다. 황씨는 "입사 이후 단 한 번도 심각한 수준까지 간 적이 없었고, 동료 직원들이 약도 챙겨줄 만큼 행복하게 일하고 있다"고 고마워했다.

새 인생 임무, 정신질환자 친구가 되는 것

지난 6월 27일 세바시와 함께하는 서울시민 쏘울 자랑회에서 강의를 진행한 황소영씨가 서울시로부터 받은 감사패를 들어보이고 있다. 서울시 제공

지난 6월 27일 세바시와 함께하는 서울시민 쏘울 자랑회에서 강의를 진행한 황소영씨가 서울시로부터 받은 감사패를 들어보이고 있다. 서울시 제공

황씨의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었지만 얻은 것도 있다. 그는 "남편과 가족, 친구 등 주변 사람들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깨달았다"고 했다.

조울증은 황씨에게 새로운 인생 임무를 부여했다. 바로 '정신질환자들의 친구'가 되는 것. 그래서 자신의 정신질환을 당당하게 드러냈고, 자신을 설명하는 중요한 키워드가 됐다. 그것이 비슷한 처지의 사람에게 전하는 응원이라고도 생각한다.

"조울증은 역설적으로 특별한 삶을 살게 해줬어요.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제가 신기하기도 하고요. 10년 뒤에는 지금처럼 또 예상치 못한 일을 하고 있지 않을까요? 조울증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김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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