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W진병원 진료 기록·CCTV 입수
정신과 전문의·간호사와 함께 분석
"병원 측 관리 부실·사후 방치" 지적
유족, 병원장 등 유기치사죄로 고소
"환자가 불안정하니 집중 관찰과 처치를 하겠다고 여기(격리실)에 집어넣는 거예요. 그런데 바이탈 사인(vital sign·활력 징후) 확인도 5시간가량이 누락돼 있고, 사실상 방치죠."
정신과 폐쇄병동 근무 간호사 A씨
지난 5월 27일 유명 정신과 의사가 운영하는 경기 부천더블유(W)진 병원에서 30대 여성이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의료 과실 정황이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6일 한국일보는 해당 병원의 격리·강박 시행일지와 경과기록지, 간호기록 등 각종 진료 관련 기록과 폐쇄회로(CC)TV 영상을 입수해 6월 5일부터 수도권 정신병원 폐쇄병동에서 근무하는 의사·간호사와 함께 살펴봤다. 이들은 병원 측의 '관리 부실'과 '사후 방치' 문제를 공통적으로 지적했다. 환자 강박(침대에 묶는 행위) 때 실시해야 하는 호흡·맥박수 등 바이탈 확인이 수시로 이뤄지지 않았고, 사망자가 이상 증상을 보일 때 의사가 직접 검진하지 않는 등 문제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급격한 상태 악화에도 '바이탈 공백'
전문가들은 격리·강박이 시작된 후 제때 환자의 바이탈을 확인하지 않은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봤다. 다이어트 약물 중독으로 올해 5월 10일 이 병원에 입원한 박모(33)씨는 샤워실에서 변을 수시로 흘린다는 등 이유로 같은 달 26일 오후 7시쯤 안정실에 격리됐다. 박씨가 저항하자 의료진은 27일 0시 30분부터 새벽 2시 20분까지 양팔과 다리, 몸통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침대에 묶는 5포인트 강박 조치를 했다.
그러나 박씨 격리에서 사망까지 의료진은 바이탈을 수시로 살펴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격리 바로 전후인 26일 오후 7시, 오후 8시, 오후 8시 20분까지만 바이탈을 확인한 후 의료진이 모두 병실을 비웠다가, 복부 통증을 호소해온 박씨가 문을 긁고 탈의를 하는 등 격하게 행동하자 약 3시간 30분 뒤인 오후 11시 55분쯤에야 한 번 더 실행했다. 폐쇄병동에서 근무하는 정신과 전문의 B씨는 "통상 환자가 격리·강박에 들어가면 30분마다 활력 징후를 확인해 문제나 변화는 없는지 살핀다"며 "의료당국 지침에 따라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인데,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보건복지부는 강박 시 최소 1시간, 국립정신건강센터는 최소 30분마다 의료진이 환자의 활력징후를 확인해야 한다고 지침에서 명시하고 있다.
이후에도 의료진은 27일 새벽이 돼서야 묶인 채 버둥대는 박씨의 혈압 등을 한 차례 확인했다. 일지에는 "소리를 지르는 음량과 몸을 비트는 모습이 줄어든다"(새벽 1시 20분)고만 적었다. CCTV 상 박씨의 배가 부풀고 코피를 흘리며 호흡이 거칠어짐이 확인되는데도, 새벽 2시 20분쯤 강박만 해제하고 별다른 조처 없이 방을 나갔다. 간호사 A씨는 "간호기록지상으론 오전 3시 20분까지 정상적으로 수면을 확인했다고 적혀 있다"며 "안정됐다고 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박씨는 의식을 잃었고, 이날 오전 4시쯤 끝내 숨졌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가성 장폐색'이라는 사망 소견을 내놨다. 장운동이 원활하지 않아 음식물이 쌓이면서 복통, 변비 증상이 나타났고 이로 인해 숨지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상황이 심각한데도 의사가 직접 환자 상태를 점검하지 않은 것도 과실의 일종으로 보고 있다. 사망 당일 차트상엔 의사의 '구두 지시'만 남아 있고, 격리실 CCTV에도 의사가 박씨를 검진하는 모습은 확인되지 않는다. 의료법 시행규칙 제39조는 입원환자를 진료하는 데 지장이 없다면 정신병원에 한해 해당 병원 자체 기준에 따라 당직의료인을 배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당시 해당 병원에선 상주 당직의가 부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B 전문의는 "당직의가 직접 환자 상태를 살피고 일찍 응급실 전원 등을 지시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변비 부작용' 약물,정량 넘겨 처방"
의약품 처방 자체가 부적절했다는 의견도 나왔다. 박씨가 병원에 입원한 첫날부터 경과 기록지상에는 '쿠에티아핀'이란 약물이 거듭 등장한다. 조울증이나 조현병 증상을 보일 때 투여해 공격성을 잠재우는 일종의 향정신과약물이다. 경과 기록지를 분석한 B 전문의는 "통상 처방 용량을 벗어났다"고 말했다. 1일 투여 가능한 쿠에티아핀 용량은 최대 800㎎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해당 병원은 박씨가 장 폐색으로 사망하기 수일 전에도 쿠아틴정과 쿠아틴서방정 등 최소 1,100㎎과 900㎎의 쿠에티아핀을 하루에 투여할 것을 주문했다는 게 B 전문의 설명이다.
이 약의 대표적인 부작용은 변비로, 사인인 '장폐색'과 연관이 있다는 게 유족 측 주장이다. 유족이 지난 6월 부천 원미경찰서에 제출한 고소장에 따르면, 박씨는 5월 20일부터 배변 활동의 어려움을 겪으며 간헐적으로 고통을 호소했다고 한다. B 전문의는 "(박씨가) 변을 못 봤다고 하고, 사망 전날 대변 물을 흘리는 상황까지 갔음에도 (부작용 확인을 위한) 진찰이나, 응급실 전원 조치 등이 왜 없었는지 모르겠다"고 의아해했다. A 간호사 역시 "복통이 계속 됐는데 간식을 배부하고 식사도 100% 급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약물 투여로 장의 흡수나 연동운동이 지속적으로 정체돼 변비가 심화되다 장 폐색 쇼크가 올 가능성이 있는데, 반복 처방하면서도 그 부작용에 대한 확인과 관리가 부족했다는 뜻이다. 박씨는 사망 약 3시간 전에도 쿠아틴정 200㎎을 추가로 삼켰다.
유족들은 병원이 상태가 악화된 박씨를 방치했다고 보고 병원장 등 의료진 6명을 유기치사죄로 형사 고소한 상태다. 부천 원미서 관계자는 "안정실 CCTV는 움직임이 있을 시 찍히는 '이벤트 녹화' 방식으로, 현재까진 삭제 정황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며 "의료기록, 고소인 및 병원 관계자 조사를 통해 해당 사건을 면밀히 살필 것"이라고 밝혔다. 병원 측은 "수사기관에 성실히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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