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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쪼그려 앉아 컵라면 먹는 소방관 없게...현대차가 수억 원짜리 버스 소방서에 기증한 이유

입력
2024.10.03 09:0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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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그룹, 전국 소방서에 회복 지원 버스 8대 기증
프로젝트 이끈 책임매니저 인터뷰
정의선 "소방관 생명과 안전 지키는 데 기여하고 싶어"

편집자주

세계 모든 기업에 환경(E), 사회(S), 지배구조(G)는 어느덧 피할 수 없는 필수 덕목이 됐습니다. 한국일보가 후원하는 대한민국 대표 클린리더스 클럽 기업들의 다양한 ESG 활동을 심도 있게 소개합니다.

함승현 현대차그룹 책임매니저가 소방관 회복 지원 버스를 찍은 사진 앞에서 설계·제작 과정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제공

함승현 현대차그룹 책임매니저가 소방관 회복 지원 버스를 찍은 사진 앞에서 설계·제작 과정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제공


소방관들이 길바닥에 앉아 컵라면을 먹거나 잠시 쉬는 모습이 안타깝게 보여지는 게 싫다고 하시더라고요.

함승현 현대차그룹 책임매니저


소방관들은 산불이나 대형 화재가 발생하면 몇 날 며칠이고 현장에 머물러야 한다. 화마(火魔)에 맞서 혼신의 힘을 다해 싸우지만 불이 꺼지지 않으면 자리를 비울 수 없기 때문이다. 교대로 잠시 쉬는 동안에도 몸을 기대 쉴 만한 휴식 공간이 마땅히 없어 늘 바닥에 주저앉아 휴식을 취하거나 쪼그린 채로 컵라면으로 열량 보충을 한다. 이런 어려움을 알게 된 현대차그룹은 소방관들에게 '회복 지원 버스'라는 걸 기증했다. 화재 현장에서 소방관들이 잠시라도 편히 쉬면서 수분과 열량을 보충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처음 회복 지원 버스 기증을 결심하면서 "우리 사회를 위해 헌신하는 소방관을 돕는 것도 우리가 가장 잘하는 걸로 하자"며 "소방관들에게 꼭 필요한 자동차를 최고로 만들어 주자"고 말했다고 한다.


꼬박 7, 8개월간 수없이 회의·협의

정의선(오른쪽) 현대차그룹 회장이 6월 27일 제주 소방관 회복지원차 전달 행사를 마치고 참석한 소방관들과 악수하며 인사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제공

정의선(오른쪽) 현대차그룹 회장이 6월 27일 제주 소방관 회복지원차 전달 행사를 마치고 참석한 소방관들과 악수하며 인사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제공


이에 현대차그룹은 2023년부터 강원, 경북, 인천 등에 소방관을 위해 특수 제작한 회복 지원 버스를 기부해 왔다. 정 회장은 2023년 3월 울산시 북구 울산북부소방서에서 소방관 회복버스 여덟 대를 소방청에 기증하기로 약속했고 올해 6월 제주 소방본부에 회복 지원 버스를 전달하며 약속한 차량을 모두 전국으로 보냈다. 정 회장은 제주 전달식에서 "8대가 지원됐는데 전국에서 써보고 더 필요하면 당연히 더 지원하겠다"며 "무엇보다도 소방관분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킬 수 있는 데 큰 기여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버스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맡아 이끈 함승현 현대차그룹 책임매니저는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고 털어놨다. 함 책임은 "회복 지원 버스를 기증하기로 하고 실제 전달하는 데 꼬박 7, 8개월이 걸렸다"며 "그 기간 동안 소방청과 수차례 회의를 하며 의견을 듣고 다시 내부 자동차 전문가들과 길고 긴 협의를 이어 갔다"고 말했다.

이미 국내 최고 기술력으로 다양한 자동차를 생산하는 현대차그룹에서 버스 여덟 대 기증하는 과정이 왜 그리 힘들었는지 최근 서울 서초구 현대차그룹 본사에서 함 책임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소방관들이 충분히 쉴 수 있게

밤샘 화재 진압이 이루어지는 대형 화재 사고나 며칠씩 교대 근무를 해야 하는 산불 진화에 투입된 소방관들은 현장 바닥에 앉아 잠시 쉬거나 쪽잠을 잔다.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것도 부지기수다. 사진은 화재 진압에 투입된 소방관들이 현장 바닥에 앉아 쉬고 컵라면으로 열량을 보충하는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밤샘 화재 진압이 이루어지는 대형 화재 사고나 며칠씩 교대 근무를 해야 하는 산불 진화에 투입된 소방관들은 현장 바닥에 앉아 잠시 쉬거나 쪽잠을 잔다.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것도 부지기수다. 사진은 화재 진압에 투입된 소방관들이 현장 바닥에 앉아 쉬고 컵라면으로 열량을 보충하는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처음 소방관들에게 회복 지원 버스를 기증하기로 했을 때 정 회장의 지시는 딱 한 가지였다고 한다. 소방관들이 꼭 필요한 걸 최대한 많이 듣고 버스 내부를 최고로 꾸며 만들어드리라는 것. 함 책임은 밤낮없이 소방청 실무자와 통화하고 해외 사례와 논문까지 찾아 꼼꼼히 자료를 모아 공부했다.

이런 노력 끝에 소방관 회복 지원 버스 설계는 크게 세 가지에 집중하는 것으로 정해졌다. 우선 ①소방관들이 버스에 머무는 동안 개별적으로 충분한 휴식이 될 수 있는 기능을 갖추는 것②쉬는 동안 충분한 열량과 수분이 보충될 수 있게 하는 것, 마지막으로 ③무거운 장비와 화재로 인한 오염 물질로부터 차량이 파손되거나 오염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였다.


정 회장 "가구의 경첩까지 신경 써라"

전국 8개 소방본부에 전달된 소방관 회복 지원 버스의 내부 모습. 리클라이닝 시트와 개인용 화면, 발을 뻗을 수 있는 공간, 오염방지 소재가 적용된 소파와 테이블이 놓인 회의 공간 등이 보인다. 현대차그룹 제공

전국 8개 소방본부에 전달된 소방관 회복 지원 버스의 내부 모습. 리클라이닝 시트와 개인용 화면, 발을 뻗을 수 있는 공간, 오염방지 소재가 적용된 소파와 테이블이 놓인 회의 공간 등이 보인다. 현대차그룹 제공


이 덕분에 버스에는 프리미엄 리클라이닝 시트가 적용된 개별 휴식 공간 10석이 만들어졌고 양문형 냉장고와 정수기, 전자레인지 등이 배치됐다. 차량 시트에는 오염에 강한 폴리우레탄(PU) 원단을, 바닥엔 찍힘에 강한 강화마루를 깔았다. 버스 안쪽에는 특수 제작된 소파와 접이식 책상도 배치됐다.

최고급 소재만 넣다 보니 어느 새 예산은 처음 세웠던 계획을 훌쩍 뛰어넘어 버스 한 대당 가격은 7억 원 이상이 됐다. 함 책임은 예상을 뛰어넘는 가격이 나오자 실무자로서 중간보고에 신경이 많이 쓰였다고 한다. 하지만 정 회장은 오히려 더 꼼꼼히 살펴 최고로 만들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함 책임은 "회장님은 버스에 배치된 가구의 경첩까지도 내구성 좋은 것을 쓰라고 말씀하셨다"며 "설계가 끝나더라도 혹시 버스 제작 과정에서 더 필요한 게 있으면 더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말했다.


"진심으로 만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제주 소방본부 소방관들이 현대차그룹이 기증한 수소 회복 지원 버스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제공

제주 소방본부 소방관들이 현대차그룹이 기증한 수소 회복 지원 버스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제공


그렇게 제작된 1호 회복 지원 버스가 지난해 11월 경북 소방본부에 전달됐다. 함 책임은 "처음부터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한 소방청 담당자에게 시도 때도 없이 전화하고 의견을 묻고 했더니 '솔직히 속으로 뭘 이렇게 세세한 부분까지 묻나 생각했다'고 말하더라"며 "하지만 최종 전달된 버스를 본 담당자가 '진심으로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말했던 게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경북 이후 강원, 인천, 전북 등에 차례로 차량을 보냈다. 특히 청정 지역 제주에는 친환경 수소전기 버스를 전달했다. 제주는 수소버스 운영이 가능한 환경을 갖췄고 장시간 버스를 세워둬도 오염물질 배출 없이 현장 상황실과 휴식공간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더 의미가 컸다. 다만 버스 한 대의 가격은 약 11억 원 정도로 훌쩍 뛰었다. 그럼에도 현대차그룹은 앞으로도 이런 버스가 필요한 곳이 있다면 더 기증하겠다는 각오라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현대차그룹은 이런 스토리를 담은 유튜브 영상도 만들었다. 캠페인 영상 '사륙, 사칠'을 만들어 7월에 공개했는데 약 3주 만에 국내외에서 3,000만 회 이상 재생되며 큰 관심을 모았다. 영상에 달린 수천 개 댓글엔 소방관 안전과 휴식의 중요성에 대해 공감을 표현하는 글이 대부분을 이룬다. 영상 제작에 참여한 김민현 인천 검단소방서 소방장은 "수많은 댓글과 좋아요를 보며 많은 분들이 저희를 응원해주고 계시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힘이 난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그룹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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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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