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더불어민주당 모 의원과의 저녁 자리. 식사를 마칠 때쯤 누군가 느닷없이 방문을 열어젖혔다. 옆방에 있던 국민의힘 의원들이었다. 얼큰하게 술도 마셨겠다, 멱살이라도 잡아보자고 온 것일까. 그런데 의외였다. 민주당 의원의 손을 덥석 잡더니 “형님, 우리 언제까지 싸워야 합니까”라고 토로했다. ‘대결이 아닌 대화가 절실하다’는 아주 단순한 명제조차, 늦은 밤 술을 마셔야 겨우 꺼낼 수 있는 취중진담이 돼버린 서글픈 여의도의 현주소다.
목청을 높이며 상대를 깎아내리는 데 혈안이 돼 있는 국회에서 모처럼 토론이 화두로 떠올랐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를 향해 ‘공개토론’을 제안하면서다. 내년 도입 예정인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를 놓고 시시비비를 가려보자는 것이다. 한 대표는 전당대회로 당대표가 공석인 민주당의 상황을 감안해 체급이 한 단계 낮은 박 직무대행을 선택했다. 전례를 찾기 어려운 여야 지도부의 일대일 맞짱 대결이다.
한 대표의 속내는 뻔하다. 증시가 폭락하고 경기침체 공포심리가 확산되는 상황을 절묘하게 파고들었다. 파란불이 넘쳐나는 주식창에 질려 버린 개미들에겐 기어코 금투세를 도입하겠다는 민주당이 ‘눈엣가시’로 비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노렸다. 앞서 약속한 '제3자 추천 채 상병 특검법'을 섣불리 발의할 수 없어 곤혹스럽던 차에 공개토론은 여론의 관심을 단숨에 돌릴 수 있는 호재다.
박 직무대행은 '지금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한심한 것 같다"고도 했다. 민주당 원내 관계자는 "박 직무대행은 회계사"라며 "당장 1시간 뒤라도 토론을 할 수 있지만 금투세가 다른 민생 법안들보다 우선인지는 모르겠다"고 맞받아쳤다.
민주당에는 불리한 구도일 수 있다. 그럼에도 이번만큼은 토론에 응해보는 건 어떤가. 민주당은 야권 192석을 이끌며 '수권 정당'을 표방하고 있다. 압도적 원내 1당이다. 그렇다면 발목잡기에 그칠 수밖에 없는 소수 야당과는 달라야 하지 않을까. 정치공학적 표 계산에만 갇혀 토론을 외면한다면 그 자체로 한 대표의 기세에 밀리는 격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하고 또 거부해도 법안을 밀어붙이던 패기는 다 어디로 갔나. 언제까지 의석수를 앞세운 지긋지긋한 힘 과시에만 집착할 건가.
민주당에는 회계사 출신 박 직무대행이 아니더라도, 이른바 '보수의 메시아'라 불리는 한 대표의 콧대를 납작하게 눌러줄 실력 있는 의원들이 많다. 그들도 이번 토론을 벼를지 모른다. 이소영 의원은 페이스북에 "국회도 정부도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표를 의식한 금투세 논쟁에만 열을 올리고 있어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움과 깊은 책임감을 느낀다"고 적었다. 부끄럽지 않으려면, 한 대표와 박 직무대행은 콜라라도 마시며 밤샘 토론에 나서길 바란다. 각자의 논리로 대화를 통해 해법을 찾아가는 것, 그게 정치의 역할이니까.
관련 이슈태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