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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전복은 실종, 서해 꽃게는 '속 빈 강정'…”피해액 얼마인지도 몰라”

입력
2024.08.14 14:00
수정
2024.09.19 14:22
9면
0 0

<추적 : 지옥이 된 바다 1부>
③ 해양 쓰레기의 역습
어민들 "쓰레기가 삶의 터전 망쳐놨다"
육지에 버리면 돈 들어서 바다로 던져
유령 어업도 심각 "먹이사슬 밑단 붕괴"
수온 상승에 해양 오염 겹치며 '이중고'

편집자주

콧구멍에 플라스틱 빨대가 박혀 피 흘리는 바다거북, 뱃속에 찬 쓰레기 탓에 죽은 향유고래. 먼바다 해양 생물들의 비극은 뉴스를 통해 잘 알려졌죠. 우리 바다와 우리 몸은 안전할까요? 한국일보는 3개월간 쓰레기로 가득 찬 바다를 찾아 다녔습니다. 동해와 서해, 남해와 제주에서 어부와 해녀 63명을 만나 엉망이 된 현장 얘기를 들었고, 우리 바다와 통하는 중국, 일본, 필리핀, 미국 하와이를 현지 취재했습니다. 지옥이 된 바다. 그 가해자와 피해자를 추적했습니다.

인천 먼바다에서 조업하는 어선 갑판에 죽은 꽃게들이 널브러져 있다. 꽃게들은 어민들이 버린 폐그물에 걸려 바다에서 죽은 채 발견됐다. 인천=원다라 기자

인천 먼바다에서 조업하는 어선 갑판에 죽은 꽃게들이 널브러져 있다. 꽃게들은 어민들이 버린 폐그물에 걸려 바다에서 죽은 채 발견됐다. 인천=원다라 기자

촘촘한 그물코에 꼼짝없이 걸린 꽃게가 줄줄이 딸려온다. 봄에 알이 꽉 차고, 살이 통통히 올라 제철이라는 암꽃게다. 여름 금어기(어류 번식 등을 위해 어획을 금지하는 기간)를 열흘 앞둔 지난 6월 21일, 인천의 북쪽 어장에서 9톤급 닻자망(바닷속에 그물을 옆으로 치는 것) 어선이 막바지 꽃게잡이에 한창이었다. 이곳은 우리 영해 최북단의 ‘꽃게 황금어장’이다. 불과 4, 5년 전만 해도 꽃게가 자취를 감춰 흉어였지만, 올해는 다르다. 각 지방자치단체가 최근 4년간 꽃게 치어를 매년 1,200만~2,100만 마리씩 방류한 효과로 풍어를 이뤘다. 갑판 한편에 꽃게가 수북이 쌓이자 종일 조업을 같이 했던 기자도 마음이 꽉 찼다.

그물에 걸린 꽃게들은 육지의 선별 작업장으로 옮겨진다. 하지만 수확물을 앞에 두고도 김연숙(58) 진흥수산 이사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그가 게딱지를 뜯어 보이며 말했다.

“여기 빨간 게 알이고, 검은 게 먹장이에요. 속이 빨간 게 건강한 놈이죠. 얘들이 먹이를 충분히 먹어 살이 차면 이 먹장을 몸 밖으로 밀어내거든. 근데 먹장 낀 애들은 잘 먹지 못한 거야. 이런 건 항의 들어와서 팔지도 못해.”

속이 꽉 찬 꽃게와 빈 꽃게를 비교하는 장면. 왼쪽 꽃게는 딱지 안으로 붉은색 알(붉은 원 안)만 보이는 반면 오른쪽 꽃게는 알 옆으로 어두운 먹장이 껴 있는 것이 보인다. 보통 꽃게의 살이 통통하게 차오르면 먹장을 밖으로 밀어내 알만 남는다. 인천=원다라 기자

속이 꽉 찬 꽃게와 빈 꽃게를 비교하는 장면. 왼쪽 꽃게는 딱지 안으로 붉은색 알(붉은 원 안)만 보이는 반면 오른쪽 꽃게는 알 옆으로 어두운 먹장이 껴 있는 것이 보인다. 보통 꽃게의 살이 통통하게 차오르면 먹장을 밖으로 밀어내 알만 남는다. 인천=원다라 기자


꽃게잡이 어부들, 풍어에도 웃지 못해

‘외화내빈의 역설’에 부딪힌 건 이곳 어민뿐이 아니다. 충남 서산∙보령 등 꽃게 산지로 유명한 서해의 어촌 대부분이 같은 어려움을 하소연했다. 서산 어민 박정섭(66)씨는 “옛날에는 꽃게 딱지를 떼면 노란색 장이 차 있었는데 요즘은 그게 안 찬다. 꽃게 먹이 중 하나인 플랑크톤이 부족해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꽃게가 많이 잡혀도 어민들 벌이는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속이 빈 꽃게는 왜 늘어났을까. 먹이사슬 붕괴가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꽃게는 플랑크톤부터 갯지렁이, 생선 사체까지 먹는 잡식성인데 먹이가 부족해지면 영양 상태가 나빠진다. 그러면 살이 찌지 않고, 면역력이 떨어져 먹장게가 된다는 게 국립수산과학원의 설명이다.

연도별 암꽃게 판매량 및 가격 추이. 그래픽=이지원 기자

연도별 암꽃게 판매량 및 가격 추이. 그래픽=이지원 기자


어민들은 원흉으로 쓰레기를 지목했다. 인근 지역 어민들이 몰래 버리고 간 폐그물 등이 해저층을 오염시켜 생태계를 망쳐놨다는 것이다. 이 지역 사정을 잘 아는 한 꽃게잡이 어민이 말했다.

"인천 어선들이 수십 년간 상습적으로 폐그물을 버렸어요. 나일론 그물은 썩지도 않으니 계속 쌓인 거죠. 그래서 이 바다가 엉망이 됐어요."

황폐화한 어장을 바라보며 한숨 짓는 어민들은 전국 곳곳에 있다. 어획량이 급격히 줄어든 '효자 어종'들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정부나 학계에선 수온 상승과 남획 탓에 일부 어패류의 씨가 말랐다고 분석하지만, 현장에선 이에 더해 “쓰레기 탓에 바다가 더러워진 것도 고기가 줄어든 이유"라고 설명한다.

제주 해녀 "전복 한 마리 잡으면 재수 좋은 것"

빈말이 아니다. 제주 바다에서는 해녀들의 주된 수입원이었던 전복이 실종되다시피 했다. 평생 물질을 해온 고송자(61) 제주해녀협회 사무국장은 “자연산 전복은 멸종 단계인 것 같다”면서 “10년 전만 해도 하루 7~10㎏은 잡았는데 지금은 1년에 하나 보기도 어렵다”고 했다. 어쩌다 전복 한 마리라도 잡으면 해녀들끼리 “재수 좋았다”고 말할 정도라고 한다.

실제 제주 해녀들이 잡아 수협을 통해 위탁판매한 자연산 전복의 양을 보면 2022년과 2023년에는 1개도 팔리지 않았다. 개인 간 사고 파는 일은 있을 수 있지만 별로 잡히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제주 바다에서 잡힌 자연산 전복 판매량 추이. 그래픽=박구원 기자

제주 바다에서 잡힌 자연산 전복 판매량 추이. 그래픽=박구원 기자

5~7월이 제철인 성게도 마찬가지다. “5, 6년 전에는 많게는 하루에 4~5㎏씩 잡았는데 지금은 3㎏ 잡기도 어렵다는 게 제주 해녀들의 이야기다. 고씨는 쓰레기를 탓했다.

“잠수해서 성게, 전복이 숨어 있을 만한 돌을 뒤집으면 생수병, 깡통 같은 쓰레기만 꽉 차 있어. 쓰레기가 (수압 탓에) '뿅' 튀어올라 머리를 때리거든. 어쩔 때는 물안경이 깨질까 봐 겁나. 다른 동네 해녀들도 다들 비슷한 경험이 있을걸?”

10여 년 전만 해도 해녀들이 바다에 들어가면 전복이 쉽게 눈에 띄었다. 하지만 이제 자연산 전복은 씨가 말라 간다. 제주 해녀들은 "한 마리라도 찾으면 해녀들끼리 '재수 좋네'라고 말할 정도"라고 증언한다. 사진은 전남 신안군 하태도의 해녀들이 2009년 여름, 자신들이 채취한 자연산 전복을 들어 보이고 있는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10여 년 전만 해도 해녀들이 바다에 들어가면 전복이 쉽게 눈에 띄었다. 하지만 이제 자연산 전복은 씨가 말라 간다. 제주 해녀들은 "한 마리라도 찾으면 해녀들끼리 '재수 좋네'라고 말할 정도"라고 증언한다. 사진은 전남 신안군 하태도의 해녀들이 2009년 여름, 자신들이 채취한 자연산 전복을 들어 보이고 있는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제주에서 자연산 전복과 성게는 왜 사라졌을까. 제주 바다를 잘 아는 전문가들은 전복의 주식인 해초가 줄어든 게 실종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양병규 제주해양수산연구원 연구사는 “제주에 갯녹음(바다의 사막화)이 진행되면서 해초류가 사라지고, 온난화 탓에 전복이 별로 안 좋아하는 홍조류가 많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갯녹음 현상이 발생하는 건 해수온 상승이 가장 큰 이유다.

해녀들은 또 쓰레기 등 오염물질 탓에 전복 등 제주 해양 생물의 서식 환경이 나빠진 것도 원인 아니겠느냐고 추측한다. 양 연구사는 "제주 대부분은 조간대(만조 때 물에 잠기고 간조 때 드러나는 구간) 지역인데 치어 등 어린 생물이 많이 산다. 사람 사는 사회로 치면 유치원 같은 곳"이라면서 "이 때문에 쓰레기 등 외부 유입물질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만 인근 해역의 산호초 위에 버려진 장어 통발이 올라 앉았다. 이곳 주변은 하얗게 변하는 '갯녹음'(바다 사막화)이 상당히 진행됐다. 대만 어부 첸진촨 제공

대만 인근 해역의 산호초 위에 버려진 장어 통발이 올라 앉았다. 이곳 주변은 하얗게 변하는 '갯녹음'(바다 사막화)이 상당히 진행됐다. 대만 어부 첸진촨 제공


"쓰레기 탓에 '청정 이미지' 망칠까 봐 걱정"

어민들이 쓰고 바다에 버린 폐어구에 물고기가 잡혀 죽는 '유령 어업' 현상도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이는 어획량 감소로 이어진다. 김경신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부연구위원은 “폐통발이나 그물이 바닷속에 가라앉으면 물고기도 걸려 죽지만, 파래 등 녹조류나 말미잘 같은 강장동물도 사라진다”면서 “이들은 다른 물고기의 먹이라서 먹이사슬이 밑단부터 깨질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산호초가 치어들의 서식처라는 점이다. 산호 지대가 쓰레기 탓에 망가지면 치어들은 몸을 숨길 곳이 없어지는데 이렇게 되면 대가 끊길 수도 있다.

양식장도 쓰레기 피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예컨대 전국 멍게 생산량의 70~80%를 책임지는 경남 통영의 한 어촌계는 일부 어민들이 멍게 껍질을 바다에 버리면서 수중 상태가 엉망이 됐다. 껍질을 육지에서 처리하면 비용이 든다는 이유로 바다에 던져버린 것이다. 통영의 한 어민은 "환경 조사 전문가들이 수중 카메라로 바닷속을 보고는 '지질 상태 등이 상당히 심각하다'고 전했다"며 "사람으로 치면 며칠 안에 병원 가야 할 정도로 아프다는 얘기인데, 우리 삶의 터전이 위협받을 수 있는 것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쓰레기 탓에 조업량이 줄지는 않았지만 더러워진 바다를 보고 지역 특산물의 이미지가 나빠질까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전복으로 유명한 전남 완도의 한 어촌계장은 "양식 전복은 쓰레기 때문에 아직 피해 본 건 없어 여전히 건강한 수산물"이라면서도 "관광객들이 완도 바닷가에 쓰레기가 널려 있는 걸 보면 '청정 지역'으로 생각하겠느냐"고 말했다.

어민들이 증언하는 지역 대표 수산물의 ‘위기’. 그래픽=이지원 기자

어민들이 증언하는 지역 대표 수산물의 ‘위기’. 그래픽=이지원 기자


25년 전 설문조사로 '유령 어업' 피해 추정

어촌 현장에서 "해양 쓰레기가 어획량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정작 정부는 실제 피해가 얼마나 큰지 제대로 추정조차 못하고 있다. 해양 쓰레기가 특정 어종의 개체 수를 얼마나 감소시켰는지 검증하는 연구는 초보 수준이라 정확한 통계가 없다. 특히 유령어업 피해는 바다 밑을 조사해보면 어느 정도 실상을 알 수 있는데도 정부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해양 쓰레기 민간연구소인 동아시아바다공동체오션의 홍선욱 대표는 "우리나라의 유령어업 피해액은 3,400억 원 정도로 알려졌는데 이는 25년 전에 어민 19명에게 ‘쓰레기 때문에 조업 피해를 얼마나 보고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어본 뒤 추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어민들이 폐어구 탓에 조업량의 10% 정도를 피해 본다고 답했는데, 정부는 이후에도 이 수치만 믿고 매년 조업량의 10%를 피해액으로 추산하고 있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올해 외부에 연구를 맡겨 현재 추산되고 있는 유령어업 피해 규모가 얼마나 타당한지 등을 정밀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일보 특별취재팀
팀장 : 유대근 기자(엑설런스랩)
취재 : 진달래·원다라·이서현 기자(엑설런스랩), 조영빈(베이징)·허경주(하노이) 특파원, 한채연 인턴기자
사진 : 이한호·최주연·정다빈 기자
영상 : 박고은·김용식·박채원 PD, 제선영 작가, 이란희 인턴PD


※<제보받습니다> 한국일보는 해양 쓰레기 문제를 집중 취재해 보도해 나갈 예정입니다. 해양 쓰레기 예산의 잘못된 사용(예산 유용, 용역 기관 선정 과정의 문제 등)이나 심각한 쓰레기 투기 관행, 정책 결정 과정의 난맥상과 실효성 없는 정책, 그 외에 각종 부조리 등을 직접 경험했거나 사례를 직·간접적으로 알고 있다면 제보(dynamic@hankookilbo.com) 부탁드립니다. 제보한 내용은 철저히 익명과 비밀에 부쳐집니다. 끝까지 취재해 보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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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유대근 기자
인천= 원다라 기자
통영·제주= 진달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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