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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 기사에 달랑 한 줄 “선생님 전 깍두기예요, 자존심 상해요”...김유진을 만든 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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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 기사에 달랑 한 줄 “선생님 전 깍두기예요, 자존심 상해요”...김유진을 만든 독기

입력
2024.08.09 16:27
수정
2024.08.09 16:40
2면
0 0

세계 랭킹 24위로 대반란 일으켜
톱 랭커 연파, 여자 57㎏급 금메달
낮은 랭킹에 스포트라이트 못 받아
하루에 1만 번 발차기 연습
"지옥길 가는 것처럼 훈련했다"

김유진이 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여자 태권도 57㎏급 결승전에서 이란의 나히드 키야니찬데를 꺾고 금메달을 획득한 뒤 기뻐하고 있다. 파리=서재훈 기자

김유진이 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여자 태권도 57㎏급 결승전에서 이란의 나히드 키야니찬데를 꺾고 금메달을 획득한 뒤 기뻐하고 있다. 파리=서재훈 기자

세계 랭킹은 실력순이 아니었다. 숫자에 불과했다.

여자 태권도 57㎏급 세계 24위 김유진(울산광역시체육회)이 올림픽에서 대반란을 일으켰다. 세계 5위부터 4위, 1위, 2위를 차례로 꺾고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섰다.

김유진은 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여자 태권도 57㎏급 결승전에서 2위 나히드 키야니찬데(이란)를 2-0으로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앞선 16강에서 5위 하티제 일귄(튀르키예), 8강에서 4위 스카일러 박(캐나다), 준결승에서 1위 뤄쭝수(중국)를 잇달아 격파해 세계 랭킹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랭킹 파괴자’가 된 김유진은 세계 랭킹의 의미에 대해 “진짜 별거 아냐”라고 힘줘 말했다.

김유진이 공격을 하고 있다. 파리=서재훈 기자

김유진이 공격을 하고 있다. 파리=서재훈 기자

한국 태권도는 당초 금메달 1개를 목표로 잡았지만 남자 58㎏급 박태준(경희대)에 이어 김유진이 이틀 연속 ‘금빛 발차기’를 날려 3년 전 도쿄 대회 노골드 수모를 제대로 씻었다. 아울러 2008 베이징 대회 임수정 이후 여자 57㎏급 올림픽 금메달을 16년 만에 수확했다.

태권도가 종주국의 자존심을 살리면서 한국 선수단은 금메달 13개로, 역대 최고 성적을 찍은 2008 베이징 대회, 2012 런던 대회 금메달 개수와 동률을 이뤘다. 1976 몬트리올 대회 이래 48년 만에 최소 규모로 꾸려진 선수 144명이 만든 대반전이다.

한국 선수단에 13번째 금메달을 선사한 김유진은 랭킹이 낮아 파리 올림픽 전까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태권도 대표팀 가운데 김유진만 제외하고 나머지 3명은 모두 5위 이내였기 때문이다. 박태준이 3위, 남자 80㎏급 서건우(한국체대)와 여자 67㎏ 초과급 이다빈(서울특별시청)은 나란히 4위에 이름을 올렸다. 실제 올림픽을 앞둔 충북 진천선수촌 태권도 미디어데이 때도 김유진을 향한 관심은 크지 않았다.

감격에 젖어 있는 김유진. 파리=서재훈 기자

감격에 젖어 있는 김유진. 파리=서재훈 기자

밀려오는 서러운 감정은 독기를 품게 만들었다. 김유진은 자신을 지도하는 손효봉 대표팀 코치에게 “선생님, 저 진짜 자존심 상해요. 제 기사가 뒤에 한 줄 나오는데, 깍두기인가 봐요”라고 속내를 털어놨다. 이에 손 코치는 “고생할 만큼 했으니까 무조건 일 낼 수 있다. 자신만 믿어라”라고 힘을 실어줬다.

안 그래도 모든 초점이 운동에 맞춰진 일상인데, 김유진은 더 독해졌다. 하루에 발차기 연습만 1만 번 할 정도로 훈련, 또 훈련을 했다. 유럽 전지훈련을 갔다 온 당일에도 시차 적응 대신 훈련장에서 시간을 보냈다. 김유진은 “정말 관두고 싶을 정도로 훈련했다”며 “훈련 나갈 때마다 지옥길에 가는 것처럼 했다”고 밝혔다. 손 코치는 “단 하루도 안 쉴 만큼 진짜 독하다”며 “훈련을 같이 나가느라 내 몸무게가 10㎏ 빠졌다”고 덧붙였다.

올림픽 무대에 서기까지 겪었던 우여곡절도 김유진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2022년 무릎 인대 부상으로 1년간 재활에 매진하느라 세계 랭킹이 계속 떨어져 세계 1~5위에 주어지는 올림픽 출전권을 미리 확보하지 못했다.

김유진과 손효봉 코치. 파리=서재훈 기자

김유진과 손효봉 코치. 파리=서재훈 기자

하지만 대한태권도협회가 올해 1월 내부 회의를 통해 여자 57㎏급에서 한 장 더 올림픽 티켓을 따기 위해 도전하기로 했고, 김유진은 2월 진행된 자체 선발전을 통과했다. 그리고 이후 관문인 3월 아시아 선발전에 나가 상위 2명에게 주어지는 파리행 티켓을 따냈다.

먼 길을 돌아 올림픽 무대에 오른 김유진은 오히려 자신감이 넘쳤다. 그는 “지난 과정을 돌아보면서 ‘내가 이까짓 거 못하겠냐’라는 생각을 했다”며 “너무나도 힘들게 준비했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자신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금메달을 획득한 뒤 가장 먼저 떠올린 사람은 할머니다. 김유진은 8세 때 호신술을 배우라는 할머니의 권유로 태권도를 시작했다. 또 어릴 때부터 자신을 키워준 사람도 할머니라고 했다. 김유진은 할머니를 향해 한마디 해달라는 말에 “할머니, 나 금메달 땄어. 태권도 시켜줘서 너무 고마워”라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체중 관리를 혹독히 하느라 식단 조절을 했던 김유진은 “삼겹살과 된장찌개가 먹고 싶다. 그리고 맥주”라며 환하게 웃었다.

김유진이 도복의 태극기를 가리키고 있다. 파리=서재훈 기자

김유진이 도복의 태극기를 가리키고 있다. 파리=서재훈 기자

대회 후반부를 향하는 한국 선수단은 예상치를 훌쩍 뛰어넘는 금메달 13개를 따냈다. ‘금빛 레이스’는 양궁(5개), 사격(3개)이 주도했고 펜싱(2개), 태권도(2개)가 뒤를 받쳤다. 배드민턴도 1개를 보탰다. 11일 폐막 전까지 남은 일정을 볼 때 분위기를 탄 태권도, 근대5종 등에서 추가 금메달도 기대할 수 있다.

파리 = 김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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