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 “자신 있게 해”
2024 파리 올림픽 남자 태권도 80㎏급에 출전한 서건우(한국체대)가 경기를 펼치는 내내 그랑팔레 경기장에선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방송 중계에서도 또렷하게 들릴 정도로 소리를 질러 서건우의 경기 운영을 도왔던 이는 한국 태권도 대표팀의 오혜리(36) 코치다.
그는 제자 서건우가 동메달 결정전까지 올라가는데 가장 큰 공을 세웠다. 서건우는 9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의 그랑팔레에서 열린 남자 80㎏급 16강전에서 칠레의 호아킨 추르칠과 대결했다. 서건우는 이 경기를 라운드 점수 2-1(6-8 16-16 14-1)로 이겼다. 이 경기는 서건우의 올림픽 데뷔 무대였다.
최종 승자는 서건우였으나 오 코치의 발 빠른 대처가 없었다면 서건우는 올림픽 데뷔 무대에서 짐을 쌀 뻔했다. 2라운드가 막 끝난 시점 승자가 추르칠로 선언됐다. 1라운드를 내준 서건우는 2라운드 종료와 함께 회심의 뒤차기를 성공한데다 상대 감점까지 끌어내 16-16을 만들었다.
이 같이 라운드 동점인 경우 회전차기로 딴 점수가 더 많은 선수, 머리-몸통-주먹-감점의 순으로 낸 점수가 더 많은 선수, 전자호구 유효 타격이 많은 선수 순으로 승자를 결정한다.
오 코치는 서건우가 두 차례, 추르칠이 한 차례 회전 공격을 성공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추르칠이 승자가 된 상황을 납득할 수 없었다.
오 코치는 바로 코트로 뛰어 들어와 이의를 제기했다. 오 코치는 약 10초간 코트의 심판과 본부석을 오가며 강하게 항의했다. 양손 검지손가락을 흔들며 판정에 문제가 있다고 거듭 강조한 오 코치는 양팔을 치켜들며 항의의 뜻을 표시하기도 했다.
이에 경기 관계자들이 한데 모여 각 동작과 장면을 따져보며 동점 상황에서 판정이 제대로 이뤄졌는지를 재검토했고, 결과가 번복됐다. 최초에 회전 공격보다 감점 빈도가 더 우선순위로 설정된 채 판정이 이뤄졌음이 뒤늦게 확인됐기 때문이다.
오 코치의 신속하고 강력한 항의로 운영 시스템상의 오류가 밝혀졌지만, 오 코치는 규정 위반에 따른 경고를 피하지 못했다.
세계태권도연맹(WT)의 대회 규정을 보면 판정에 대한 항의는 심판이 아닌 기술 담당 대표(Technical Delegate)에게 해야 한다. 또 경기 운영과 관련, 장내의 관중들을 상대로 특정한 반응을 유도하는 등 행동도 자제해야 한다. 이에 WT는 오 코치에게는 '경고 및 공개 사과'를 적용했다.
첫판부터 패배의 쓴맛을 볼 뻔했다가 기사회생한 서건우는 오 코치의 빠른 대처로 3라운드를 압도하며 8강으로 올라섰다. 다만, 서건우는 3위 결정전에서 '덴마크 복병' 에디 흐르니치에게 라운드 점수 0-2(2-15 8-11)로 패하며 아쉽게 메달을 따지는 못했다.
경기 후 오 코치는 제자 패배의 아쉬움에 눈시울이 붉어진 상태였다. 오 코치는 16강전을 돌아보며 "심판 대신 기술 담당 대표에게 말해야 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뒷일을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그대로 끝나면 뭘 해도 뒤집을 수 없다"고 말했다.
WT의 '경고 및 공개 사과’에 대해 오 코치는 "내가 사과해야 한다"면서도 "선수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 뭐든지 해야 했다.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한국체대와 대표팀에서 서건우를 지도한 오 코치는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여자 67㎏급 금메달리스트 출신이다. 오 코치는 "건우가 정말, 누구보다도 열심히 했다"며 "좋아하는 콜라도 끊고, 탄산수를 먹으면서 운동했는데…"라고 아쉬워했다.
서건우도 "나 때문에 코치님이 정말 많이 힘들어하셨다. 보답해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며 "16강에서 그렇게 해주시지 않았으면 졌을 수도 있다. 발 벗고 나서주셔서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더 열심히 하겠다. 주신 만큼 보답하는 선수가 되도록, 더 나은 제자가 되도록 더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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