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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족이 없으니 대신 죽게 해달라”

입력
2024.08.14 04:3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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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4 St. 막시밀리안 마리아 콜베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한 수감자를 구하고 대신 죽음을 맞이한 가톨릭 사제 막시밀리안 콜베. 위키피디아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한 수감자를 구하고 대신 죽음을 맞이한 가톨릭 사제 막시밀리안 콜베. 위키피디아


1941년 7월, 나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피수감자 한 명이 사라졌다. 탈옥을 의심한 나치 친위대 지휘관은 그 수용동에서 무작위로 10명을 끌어내 굶겨 죽이게 했다.

폴란드군 육군 포로 프란치셰크 가요브니체크(Franciszek Gajowniczek, 1901~95)도 그렇게 끌려 나왔다. 그는 아내와 두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절규했다. 함께 수감돼 있던 만 47세 가톨릭 사제 겸 수도사 막시밀리안 마리아 콜베(St. Maximilian Maria Kolbe, 1894.1.8~1941.8.14)가 나섰다. 그는 “나는 나이도 많고 가족도 없으니 대신 죽게 해달라”며 나치 장교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고, 나머지 9명과 함께 옥에 갇혀 그들과 함께 기도와 명상을 하며 물 없이 보름 가까이 버티다 나치에 의해 독극물 주사를 맞고 숨졌다.

러시아 제국의 영토였던 폴란드 즈둔스카볼라에서 태어난 그는 1907년 콘벤투알 프란치스코 수도회에 입회, 그레고리오대(물리학 박사)와 성보나벤투라대(신학 박사)를 졸업한 뒤 사제가 됐다. 1917년 성모기사회를 결성해 가톨릭 신앙의 독보성을 부정하던 프리메이슨 집단과 맞서며 복음을 전했고, 22년 월간지 ‘성모의 기사’와 35년 일간지 ‘작은 신문’을 발행해 전성기 월간지는 매달 100만 부, 일간지는 23만 부를 발행했다고 한다. 1930년 일본 등지로 해외 선교를 나섰다 결핵에 걸려 36년 고국으로 돌아왔고 39년 나치의 폴란드 침공 직후 자신의 수도원에 유대인 1,500여 명 등 폴란드 난민 4,500명을 들여 보호하다 나치에 발각됐다.

그의 희생은 가요브니체크를 포함한 수용소 생존자들의 증언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로마 교황청은 1971년 그를 복자로 시복하고 1982년 순교자-성인으로 시성했다. 그의 시복식과 시성식에는 그의 희생 덕에 살아남은 가요브니체크가 참석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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