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인간 승리의 산증인 해외 선수들
②새로운 종목 개척한 국내 선수단
③장애·비장애의 경계 지운 조직위
2024 파리 올림픽의 성화는 꺼졌지만, 또 다른 불꽃이 점화를 앞두고 있다. 오는 28일(현지시간) 개막하는 파리 패럴림픽에는 신체 한계에 도전하는 전 세계 장애인 선수들이 출전한다. 이들의 출전기는 하나하나가 인간 승리의 드라마다.
이번 패럴림픽은 '올림픽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명칭에 걸맞게 대회 곳곳에서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지우려는 노력이 이뤄졌다. 개막을 열흘 앞두고 이번 대회의 관전 요소를 짚어봤다.
英 챌리스, 장애 돌고래 '윈터' 계기로 수영 시작
18일 파리 패럴림픽 조직위원회 등에 따르면, 이번 대회에서 주목받는 선수 중 한 명으로 장애인 수영에 참가하는 영국의 엘리 챌리스(20)가 꼽힌다. 그는 생후 16개월 때 뇌막염에 걸려 생존을 위해 사지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았다.
챌리스는 8세 때 수영을 시작했다. 그는 수영을 시작한 계기에 대해 "꼬리지느러미가 절단된 돌고래 '윈터'의 사연을 접하면서, 나도 수영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영감을 줄 수 있다고 느꼈다"고 설명했다.
윈터는 2005년 미국 플로리다주 해안에서 꽃게잡이 그물망에 걸린 채 발견된 돌고래다. 윈터는 그물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다 꼬리가 잘렸다. 해양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윈터는 의료진의 노력 끝에 '인공 꼬리'를 달고 헤엄치며 재활에 성공했다. 윈터의 이야기는 2011년 영화('돌핀 테일')로도 제작됐다. 윈터가 2021년 사망하기 전까지 챌리스는 해마다 미국을 방문해 인생 친구를 만나며 용기를 얻었다.
BBC는 이번 대회에서 주목할 만한 영국 선수 중 한 명으로 챌리스를 지목하며 "파리 대회에서 자신감을 가질 만하다"고 평가했다. 챌리스는 2020년 도쿄 패럴림픽 50m 배영에서 은메달을 땄다.
패럴림픽 펜싱 2관왕인 이탈리아의 베아트리체 비오(27)도 챌리스와 비슷한 사연으로 장애를 갖게 됐다. 비오 역시 11세 때 뇌막염으로 사지를 절단해야 했다. 이후 휠체어 펜싱 선수로 나선 그는 2016년과 2020년 패럴림픽에서 연이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비오는 인스타그램 팔로어가 135만 명에 달하는 인플루언서이기도 하다. 그는 남다른 패션 감각 덕분에 패션계에서도 이름이 알려져 있다. 지난 5월 프랑스 명품 브랜드 디올은 패럴림픽 홍보대사 중 한 명으로 비오를 선정했다.
올림픽과 패럴림픽 모두 출전하는 브라질 탁구 선수 브루나 알렉산드르(29)의 활약도 기대된다. 그는 한 살도 안 된 시점에 백신 부작용에 따른 혈전증으로 오른팔을 절단했다. 7세 때부터 탁구를 시작한 알렉산드르는 2020 도쿄 패럴림픽에선 단식 은메달을 따는 등 장애인 탁구에서 큰 족적을 남겼다.
알렉산드르는 지난 5일 파리 올림픽 탁구 여자 단체전 16강전에서 한국팀에 패배했지만, 투혼으로 전 세계 스포츠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경기 직후 알렉산드르는 언론 인터뷰에서 "언젠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경기하는 것이 평범한 일이 되는 세상이 오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황태·최용범, 트라이애슬론·카누 첫 출전
한국의 경우 패럴림픽 사상 최초로 출전한 트라이애슬론과 카누 종목 선수들이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한국은 이번 대회에 17개 종목에 177명(선수 83명, 임원 94명)의 선수단을 파견했는데, 종목 수로 따지면 1988 서울 올림픽(16개) 이후 최대 규모다.
트라이애슬론에 출전하는 김황태(47·인천시장애인체육회)는 2000년 전선 가설 작업 도중 고압선 감전 사고로 양팔을 절단했다. 운동을 통해 제2의 인생을 시작한 김황태는 "수영·사이클·마라톤을 치르는 트라이애슬론은 그 어떤 종목보다 운동량이 많다"면서 "극한의 고통을 이겨내고 결승선에 들어왔을 때 느끼는 희열감은 삶의 큰 원동력이자, 활력과 자존감의 원천"이라고 설명했다.
김황태는 이번 대회에서 '수질 논란'이 불거진 센강에서 경기를 치러야 한다. 파리 올림픽 당시 트라이애슬론에 출전한 벨기에팀이 건강상 우려로 기권하는 등 센강 수질 문제는 이번 대회의 화두였다. 김황태는 12일 패럴림픽 결단식에서 "수질이 많이 안 좋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두렵지 않다"며 "인생의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패럴림픽인데, 오염된 물이 날 막을 수는 없다"고 각오를 다졌다.
한국 장애인 카누의 새 역사를 쓰고 있는 최용범(28·도원이앤씨)은 비장애인 카누 선수 출신이다. 실업팀에서도 활동했던 그는 군 복무를 마치고 택배 일을 하다 교통사고를 당해 왼쪽 다리를 절단했다. 옛 스승의 권유로 지난해 7월 장애인 카누를 시작한 최용범은 입문 10개월 만에 패럴림픽 출전권을 따냈다.
최용범은 대한장애인체육회와의 인터뷰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 싶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그는 "올림픽 출전 자체가 비장애인 때부터 인생의 목표였다"면서 "이번 대회를 준비하면서 다음 올림픽까지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로고부터 마스코트까지 비장애와 평등
파리 패럴림픽은 올림픽과 로고가 같다. 올림픽이 패럴림픽과 같은 로고를 사용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자유·평등·박애'를 추구하는 프랑스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구분이 불필요하다는 취지다. 대회 로고는 프랑스 자유를 상징하는 여성 '마리안느'에서 영감을 받아 불꽃으로 표현한 것으로 전해졌다.
패럴림픽 마스코트도 인상적이다. 파리 올림픽 마스코트 '프리주'가 패럴림픽에서는 의족을 차거나 휠체어를 타고 있다. 지금까지는 장애가 묘사된 올림픽 마스코트가 없었다. 파리 올림픽 조직위의 마스코트 소개 영상을 보면 장애가 있는 프리주는 비장애 프리주와 함께 농구를 하거나 화살을 쏘며 함께 경기를 즐긴다.
메달에는 패럴림픽 정신에 부합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선수들이 받게 될 메달에는 점자로 '파리 2024'가 쓰여있다. 프랑스 출신의 교육자이자 현대 점자의 발명자로 통하는 루이 브라유를 기리는 의미에서 디자인됐다. 시각장애인이었던 브라유의 업적이 장애인에 미친 영향이 지대한 만큼 그의 성(Braille)은 점자를 의미하는 명사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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