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공사 시추 예상 지점, 대게 서식지
3년 전 탐사 때부터 포항 어민과 마찰
붉은대게, 한 해 수백억 올리는 자원
포항시, 지역경제 타격 우려 중재 나서
어민들 "시추로 대게 씨 마를까" 걱정
석유공사 "시추 기간 짧아 영향 미미"
경북 포항시 남구 구룡포항에서 9.77톤짜리 붉은대게(홍게)잡이 어선 병포호 한 척을 갖고 있는 김진만(62)씨는 지난 6월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브리핑 이후 마음이 어수선하다. 윤 대통령이 “막대한 양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다”고 밝힌 포항 영일만 앞바다는 동해안에서 홍게가 가장 많이 잡히는 황금어장이다. 그는 이미 3년 전부터 한국석유공사 측과 마찰을 빚은 터라, 본격적인 시추가 이뤄지면 대게 조업을 아예 못 하게 될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김씨는 “올 12월부터 내년 2월까지는 시추를 한다고 하는데 그 기간은 홍게 살이 가장 통통하게 오를 때고 대게 금어기도 풀리는 연중 최대 성어기”라며 “석유공사 탐사선이 3년 전부터 어구를 훼손해 골탕을 먹었는데 시추가 시작되면 조업은 물론 진동과 소음으로 대게 어장이 황폐해져 게를 못 잡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석유공사가 포항 앞바다에 석유 가스전 시추('대왕고래 프로젝트')에 나서기도 전에 동해안 홍게잡이 어민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포항지역 홍게잡이배는 모두 33척. 모두 석유공사가 올 연말 시추를 시도하는 82해구와 83해구에서 집중적으로 홍게를 잡는다. 해구는 바다 위를 위도와 경도로 각각 0.5도 간격으로 나눠 설정한 구역이다. 포항 앞바다에 위치한 82·83해구는 포항항을 끼고 북위 36~36.5도, 동경 129.5~130.5도에 걸쳐져 있는 바다로, 수심이 900~1,700m에 달해 홍게가 서식하기 안성맞춤이다.
문제는 홍게 집단 서식지인 82·83해구가 석유공사의 시추 지점과 겹친다는 것이다. 석유공사는 정확한 시추 지점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석유공사로부터 탐사 용역을 맡은 업체는 주로 82·83해구에서 탐사를 진행하며 홍게잡이 어민들과 빈번이 충돌했다. 탐사 업체의 대표는 지난 2021년 3월 탐사과정에서 홍게잡이배들이 통발의 위치를 표시하기 위해 띄워놓은 해상 부이를 절단하도록 지시해 재물손괴 혐의로 기소됐고 유죄 판결을 받았다. 홍게잡이배들은 한 척에 3,000~5,000개의 통발을 집어넣지만, 통발과 연결된 부이의 줄이 끊어지는 바람에 하나도 건져내지 못했다. 탐사 업체는 일부 어민들에게 17억 원의 합의금을 지급하기도 했다.
포항시도 어민들의 생계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판단에 지난 1일 석유공사를 직접 방문해 해결책 모색에 나섰다. 경북 동해안 홍게는 포항 배들이 경북 전체의 약 60%를 차지하고, 한 해 수백억 원을 벌어들여 지역 경제에 효자 노릇을 하는 수산물이다. 경북도에 따르면, 지난해 경북 동해안에서 잡힌 홍게는 2만2,801톤에, 금액으로는 816억5,393만3,000원에 달한다. 같은 해 대게도 1,706톤에 421억3,461만9,000원의 판매고를 올렸다. 홍게는 해외수출도 활발해 지난해 경북에서만 2,006톤을 일본 등으로 보내 2,734만5,000달러(371억1,350여만 원)를 벌어들였다.
정철영 포항시 수산정책과장은 “시추로 조업에 차질이 생기면 지역 경제에도 적잖은 타격을 입을 수 있다”며 “석유공사 측에 어민들을 대상으로 한 설명회 개최를 요구하고, 정보 공유 협조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한국석유공사는 길이 200m, 폭 50m의 시추선 한 척을 해상에 고정한 상태로 시추를 진행해 면적을 많이 차지하지 않는 데다 시추 기간도 40일이라 어업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주장했다. 한국석유공사 국내개발전략팀 관계자는 "향후 탐사 시추 추진과정에서 현장 조사를 통해 어구 현황을 파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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