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5일 밝힌 ‘8·15 통일 독트린’은 역대 정부의 구상 가운데 가장 공세적이다. 정권 간 협상이 아닌 남북 주민이 주도하는 통일을 담았다. 기존 통일 담론인 ‘민족공동체통일방안(1994년)’이 ‘화해협력→남북연합(2체제 2국가)→통일국가’의 수순을 밟은 반면, 윤 대통령은 남북 ‘화해협력’이 요원하다는 판단에 따라 좀 더 현실적인 통일방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통일을 거부하며 남북을 '적대적 국가관계'로 규정한 북한이 받아들이기 어렵다. 특히 북한 주민을 직접 겨냥해 통일을 추진한다는 점에서 김정은 체제의 격한 반발을 초래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당국 간 '대화 협의체'를 제안했지만, 남북관계가 최악인 상황인 만큼 북한이 응할지도 미지수다. 2014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드레스덴 선언처럼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당시 남북 불신과 대립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인도적 지원과 민간 협력을 확대하겠다며 북한에 당근을 내밀었지만 거들떠보지도 않아 폐기된 전례가 있다.
윤 대통령은 2년 전 취임 직후 대북정책으로 ‘담대한 구상’을 제시했다. 비핵화 진전에 따라 경제·정치·군사 분야의 상응조치로 북한 정권의 변화를 꾀했다. 반면 8·15 독트린은 북한 정권과 관계없이 북한 주민의 실질적 변화에 초점을 맞췄다. 동시에 한국이 주도할 수 있는 7대 통일 추진방안을 제시했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이제는 북한 정권의 선의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선제적으로 실천하고 이끌어 나갈 행동계획이 필요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북한 주민의 정보접근권 확대’가 눈에 띈다. 윤 대통령은 “북한 주민들이 자유의 가치에 눈을 뜨도록 만드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들이 통일의 강력한 우군이 될 것이란 기대도 숨기지 않았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북한 이탈 주민이 가장 많이 접하고 그들의 생각에 영향을 준 것은 우리의 라디오, TV 방송”이라며 “(확성기나 대북전단 등) 아날로그 방식에 과도하게 의존할 생각은 없다. 북한도 이미 디지털화 과정을 겪고 있기 때문에 여러 경로로 바깥세상을 접할 수 있는 방도가 있다”고 설명했다. 남한 문화 유입을 체제 불안요인으로 경계해온 북한의 면전에 비수를 꽂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울러 북한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인권' 이슈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북한 자유 인권펀드를 조성하고 북한 인권 국제회의를 통한 국제공조로 대북 압박수위를 높여나갈 방침이다. 보편적인 자유의 가치를 앞세워 북한을 변화시킨다고는 하나 북한과의 교감 없는 일방적 구상일 수밖에 없다. 특히 흡수통일론을 사실상 공식화한 것이어서 당장 북한 정권 붕괴가 임박하지 않은 상황이라면 오히려 갈등과 긴장이 고조될 우려가 적지 않다.
윤 대통령이 제안한 대화 협의체는 남북관계를 관리해나가기 위한 장치다. 관건은 북한의 반응이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북한 정권은 공식적으로 남북 대화 채널을 걸어 잠그고 체제 단속에 몰입하고 있다”면서 “현재로선 언제 어떻게 낙관적으로 (북한이 나올지) 기대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기존처럼 깜짝 이벤트식으로 내용이 뭔지도 모르고 갑자기 남북 정상이 만나 악수하는 그런 장면은 남북관계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