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무계원 '예(禮)티켓 서당' 체험]
1600년 서당 교육 핵심 '실천의 가치'
올바른 인사법 배우고 고전 따라 읽기도
탁본, 부채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
광복절인 15일 오후 2시, 조선시대 안평대군(세종대왕 셋째 아들) 별장이었던 서울 종로구 무계원. 안채에 마련된 전통 서당에 부모님 손을 잡고 온 아이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한복을 입고 검은 갓을 눌러쓴, 수염이 덥수룩한 '훈장님'이 이들을 맞았다. 그런데 자리에 바로 앉거나 군것질을 하느라 인사하지 않는 아이들이 눈에 띄었다. 한재홍 훈장이 '에헴'하며 인기척을 내며 "인사하는 법부터 알려줘야겠군"이라고 하자, 그제야 아이들이 한 훈장을 따라 공손히 배꼽인사를 했다.
엄숙한 분위기에 저절로 긴장되는 이곳은 종로구문화재단과 한국전통서당문화진흥회가 마련한 '예(禮)티켓 서당'. 올바른 인사법을 배우고 경전을 읽으며 '인성·예절 교육'을 배우고,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기획됐다. 편리함을 추구하고 격식을 따지지 않는 요즘 시대에, 역설적으로 예절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사라지는 전통에 대한 호기심으로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한 훈장은 "부모님, 형제, 친구, 선후배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예절은 꼭 갖춰야 하는 덕목"이라며 "서당은 사람 간 지켜야 할 도리를 가르치는 곳이고, 자신의 몸을 소중히 지키고, 효도하는 게 사람의 기본 도리"라고 강조했다. 이 말을 듣고 최희정(44)씨는 맨 앞줄에서 바짝 얼어붙은 아들(9)에게 "효도할 거지?"라며 웃었다.
"사람 도리 기본은 '효'... 부모가 효도 가르쳐야"
한 훈장은 '방심한' 부모에게도 "자녀가 사람의 도리를 지키고, 효를 실천하도록 부모 역시 도리를 다해야 한다"고 일침했다. "서당에 와서 벌러덩 눕고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소리 지르는 아이들이 많아요. 그럴 때 부모가 안절부절못할 게 아니라 잘못을 따끔하게 혼내고 바로잡아야 합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효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으면, 그 아이는 커서 누굴 만나든, 어디에 가든 쓸모없는 사람이 될지도 몰라요." 이번엔 부모들이 멋쩍어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한 훈장은 더 중요한 말로 교육을 마쳤다. "1,600년 넘게 이어져 온 서당 교육의 핵심은 배움을 생활에 실천하는 겁니다. 훌륭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배운 것을 실천 하냐 못 하냐죠. 사소한 교훈도 삶에서 실천하면 그 변화는 큽니다."
다양한 체험 통해 교훈도 전달
참가자들은 먹으로 나무·금석에 새긴 문자·부조를 종이에 그대로 뜨는 '탁본' 체험도 했다. 경기 수원시에서 온 김정환(10)군은 먹을 갈고, 한지를 천천히 내린 뒤 먹물이 골고루 묻도록 붓으로 꼼꼼히 쓸었다. 어느새 김군의 굽었던 어깨와 허리가 펴졌다. 목판에 "어려서 배우지 아니하면 늙어서 아는 것이 없고(幼而不學 老無所知), 봄에 밭을 갈지 않으면 가을에 바랄 것이 없다(春若不耕 秋無所望)"는 문구가 드러났다. 탁본을 돕던 고남화 훈장은 "인생의 큰 시련을 운명의 장난이라 넘기거나 좌절하지 말고, 자신의 흠결을 돌아보고 어떻게 대처할지 연구해야 한다"며 "과거 지식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평생 공부해야 한다"고 일러줬다.
"엄마 말은 잔소리... 훈장님 말씀 새겨 듣기를"
가장 인기 있는 체험은 '부채 만들기'다. 참가자들은 압화(꽃누름) 스티커를 원하는 문양대로 붙이고, 글씨를 써 부채를 꾸민다. 참가자들은 어떤 문구를 쓸지 오래 고민했다. 보조강사 최순영씨는 "마음에 품고 있는 말, 스스로 부족한 점, 아무 말이나 괜찮다고 했더니 욕설을 쓴 아이도 있었다"며 "다른 말 쓰자고 얼마나 타일렀는지 모른다"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수업 전 인사하지 않아 지적받았던 아이들은 모든 과정을 마친 뒤에는 훈장님께 허리 숙여 인사하고 떠났다. 학부모 고경희(48)씨는 "엄마 말은 잔소리로 듣던 아들(10)이 훈장님 말씀은 진지하게 듣더라"며 "아이가 재미있는 체험을 통해 효도와 예절을 배울 수 있어 뜻깊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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