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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낙하산 줄에 매달려 바다 위를 끌려다녔다... 죽다 살아났지만 온몸은 만신창이[문지방]

입력
2024.08.18 13:00
수정
2024.08.18 14:41
0 0

<김경준 기자, 조종사 해상생환훈련 체험>
비상탈출 후 해상 착수 시 행동절차 습득
낙하산 제때 분리 않으면 구조범위 이탈
겨울철 저온 해수에선 생존 시간 급감

편집자주

광화'문'과 삼각'지'의 중구난'방' 뒷이야기. 딱딱한 외교안보 이슈의 문턱을 낮춰 풀어드립니다.



"과도한 긴장은 훈련에 방해가 될 뿐입니다. 한 번 '씩' 웃어 볼까요?"

지난 14일 경남 남해군 미조도 인근 해역. 조종사를 비롯한 '공중 근무자'가 바다 위로 비상탈출을 했을 때 생환에 필요한 훈련을 체험하기 위해 저를 포함한 국방부 출입기자들은 서울에서 헬기를 타고 1시간 20분을 날아왔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저는 약 4, 5노트(약 시속 8㎞) 속도로 항해하고 있는 공군의 300t급 해양생환훈련선 후미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습니다. 방수복 위에 구명대가 달린 하네스를 착용하고, 여기에 연결된 두 가닥 '라이저(Riser·낙하산 줄)'를 힘껏 움켜쥔 채로 말이죠.

긴장을 풀어주기 위한 교관의 조언을 듣기 약 30초 전.

"인박스!"

두려움을 떨쳐내기 위해 일부러 목청껏 복명복창을 했습니다. 'ㄷ'자 형태로 파인 출발 지점에 위치해 바다를 등지고 난간을 잡았습니다. 4m 아래로 남해 바다의 넘실대는 파도와 훈련선이 만들어낸 하얀 물보라가 보였습니다. 다리가 후들거립니다.

"슬로 다운!"

더 아래쪽 난간으로 손의 위치를 옮겨 잡은 뒤, '투명 의자'에 앉은 것처럼 엉덩이를 뒤로 내밀고 발을 뗐습니다. 허공에 둥실 매달려 있는 저에게, 교관은 "착수 준비"를 외쳤습니다. 이제 제가 복명복창을 해야 할 차례.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웃어보라'는 교관의 조언이 들려온 건 이때였습니다.

14일 본보 김경준 기자가 경남 남해군 미조도 인근 해역에서 진행된 공군 해상생환훈련을 체험 중 비장한 표정으로 바다에 빠지기 전 준비를 하고 있다. 공군 제공

14일 본보 김경준 기자가 경남 남해군 미조도 인근 해역에서 진행된 공군 해상생환훈련을 체험 중 비장한 표정으로 바다에 빠지기 전 준비를 하고 있다. 공군 제공

이런 상황에서 웃으라니요. 교관이 야속했습니다. 어려서부터 저는 물이 싫었습니다. 유년기 사진첩엔 발목까지밖에 물이 차오르지 않는 해운대 백사장에서조차 두려움에 질려 울고 있던 기록이 남아있고, 초등학생 때 지리산 계곡에서 물에 빠졌던 트라우마도 있습니다.

게다가 뒤 순번을 택한 저는 앞서 체험한 동료 기자들이 배에 끌려 다니며 벌였던 사투의 현장을 전부 봐 버렸습니다. 과도한 '해수 드링킹'으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상태가 된 기자를 구하기 위해 구조대원이 두 차례나 바다로 뛰어들었고, "살려달라"는 아우성도 수차례 들려왔습니다. 심지어 해상 수난구조사 자격증이 있는 특전사 출신의 한 기자마저도 배에 매달려 끌려가는 상황에선 속수무책이었습니다. 황선우 선수가 2024 파리 올림픽에서 기록한 '자유형 100m 48초41'을 산술적으로 환산하면 약 시속 7.44km. 평생 맨 몸으론 경험하지 못할 그 이상의 속도로, 타의에 의해 끌려가는 상황은 웬만큼 바다 수영을 한다는 이들에게도 '극한 상황'임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내가 과연 이 훈련을 정신을 차린 채로 마칠 수는 있을까.'

온몸에 잔뜩 힘이 들어갔습니다. 웃는 게 웃는 게 아닌, '썩은 미소'를 지어보인 뒤 악을 쓰듯 "착수 준비"를 외쳤습니다. 교관의 "오케이, 레디, 고" 사인과 함께 저는 수면 위로 곤두박질 쳤습니다.

'꼬르륵'. 찰나의 순간 잠수를 경험한 뒤 수면을 마주하자 곧바로 파도가 얼굴을 덮쳐왔습니다. 사전에 갑판에서 배운 대로, 양손으로 라이저를 누르면서 상체를 세웠습니다. 마치 물개처럼 말이죠. 좌우 균형을 잃지 않기 위해 다리를 V자로 벌렸습니다.

14일 경남 남해군 미조도 인근 해역에서 본보 김경준 기자가 낙하산 전방 견인 훈련을 체험하고 있다. 공군 제공

14일 경남 남해군 미조도 인근 해역에서 본보 김경준 기자가 낙하산 전방 견인 훈련을 체험하고 있다. 공군 제공

"좋습니다. 이제 한 번 웃어볼까요?"

교관이 또 웃음을 강요했습니다. 파도가 넘실댈 때마다 바닷물이 코와 입으로 들이치는 데 웃으라니요. 어쨌든 이제는 몸을 돌려 수면을 등진 상태로 자세를 전환해야 합니다. "백 드래그"라는 구호와 함께 라이저를 쥔 양팔을 넓게 벌리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한쪽 발을 구르면서 재빨리 몸을 뒤집는 순간, 바닷물이 그대로 얼굴로 쏟아져 내렸습니다. 정신이 혼미했습니다.

라이저를 놓고 구명대를 잡은 뒤 윗몸일으키기를 하듯 힘껏 상체를 일으켰습니다. 다리를 들어올리고 역시 V자로 벌려 균형을 잡습니다. 코어 근육에 모든 힘을 집중했습니다. 그래도 헬멧과 어깨를 타고 넘어오는 바닷물 때문에 숨쉬기가 버거웠습니다.

마침내 "릴리즈" 사인이 떨어졌습니다. 라이저를 분리해 끌려다니는 상황에서 벗어나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웬걸. 손에 악력이 풀려버린 탓에 분리 버튼이 눌리질 않았습니다. 한쪽만 먼저 분리되자 몸이 휘청거리면서 그대로 '꼬르륵'. 훈련 막바지 절체절명의 위기가 닥쳤습니다. 양손을 이용해서야 나머지 한쪽을 마저 분리시킬 수 있었습니다.

14일 경남 남해군 미조도 인근 해역에서 본보 김경준 기자가 낙하산 후방 견인 훈련 체험을 하고 있다. 공군 제공

14일 경남 남해군 미조도 인근 해역에서 본보 김경준 기자가 낙하산 후방 견인 훈련 체험을 하고 있다. 공군 제공

그렇게 배에 끌려다니길 1분. 살았다는 안도감과 함께 온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근무력증이 찾아왔습니다. 나중에 들어보니 공황상태의 일종이라고 하더군요. 표류하는 저에게 다가온 구조선에 올라타야 하는데, 사다리를 오르기조차 힘에 부쳤습니다. 배 위엔 '나라 잃은 표정'을 한 기자, 고개를 숙이자 코로 바닷물이 흘러나오는 기자, 생명의 위기에 처했는데 왜 구조대원이 출동하지 않느냐고 투덜대는 기자, 방수복에 가득 들어찬 바닷물을 빼기 위해 물구나무를 선 기자 등등이 저를 맞이했습니다. 말 그대로 '만신창이'. 실제 바다로 비상 탈출한 조종사가 무사히 구조되고도 왜 병원으로 이송돼야만 했는지, 이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체험이 아닌 실전을 대비하는 조종사들의 훈련 강도는 이보다 훨씬 셉니다. 훈련선 항해 속도는 체험의 2배인 8노트(약 시속 15㎞), 훈련 시간은 정상적인 자세를 취하고 낙하산 줄을 성공적으로 풀어낼 때까지 계속됩니다. 속도가 빨라질수록 난도는 급격히 올라갑니다. 단순히 2배 빨라졌다고 2배 어려워지는 게 아니란 얘깁니다. 훈련을 경험했던 한 공군 대위는 "정말 이러다 죽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까지 고강도 훈련을 받았다"고 회상하기도 했죠.

'낙하산 견인 훈련'을 받는 이유는 해상에 비상탈출했을 때 바람을 맞은 낙하산에 의해 끌려다니는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입니다. 제때 낙하산을 제거하지 않으면 거센 바닷바람에 끌려가 자칫 구조 범위를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위험하다고 합니다. 교관인 김기환 상사는 "실제 조난 상황에서는 그 누구도 조난자를 구해줄 수 없기 때문에 실전과도 같은 훈련을 통해 언제든 살아 돌아올 수 있도록 강인하게 훈련을 진행한다"고 말했습니다.

14일 경남 남해군 미조도 인근 해역에서 실시한 탐색구조훈련 체험 중 해상에 표류하고 있던 본보 김경준 기자가 착용한 카메라에 찍힌 구조 헬기의 모습. 김광영 PD

14일 경남 남해군 미조도 인근 해역에서 실시한 탐색구조훈련 체험 중 해상에 표류하고 있던 본보 김경준 기자가 착용한 카메라에 찍힌 구조 헬기의 모습. 김광영 PD

이후 △함정이나 헬기에 구조될 당시 행동절차를 숙달하기 위한 '탐색구조훈련' △항공기 비상탈출 후 낙하산을 이용해 안전하게 해상으로 입수하는 '낙하산 부양 강하 훈련'이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부족하고 바람이 약한 탓에 일부 인원만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나마 '천운'이랄까요. 다만 탐색구조훈련 때 구조장치에 탑승만 하지 않고 해상에서 표류하는 체험은 했습니다.

구조 헬기가 접근해 제자리 비행(하버링)할 때 프로펠러에 의해 발생하는 강력한 하강 기류(다운워시) 때문에 해수 파편이 튀었는데, 여기에 맞은 부위는 얼얼할 정도로 타격이 컸습니다. 물보라 때문에 시야도 차단되고, 높아진 파도가 얼굴을 덮쳐 숨쉬기도 곤란했습니다. 공군 관계자는 "다운워시에 의해 구명정이 전복될 수 있으므로 미리 내려서 구조를 기다려야 하며, 구조 필요 인원이 여러 명일 때는 서로 붙어서 흩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낙하산 부양 강하 훈련은, 견인선에 110m 길이의 견인줄로 연결된 채 70m 상공으로 떠올랐다가 견인줄을 분리, 해수면에 착수하는 훈련이었습니다.

14일 경남 남해군 미조도 인근 해역에서 탐색구조훈련 체험을 위해 기자들이 바다로 입수하고 있다. 공군 제공

14일 경남 남해군 미조도 인근 해역에서 탐색구조훈련 체험을 위해 기자들이 바다로 입수하고 있다. 공군 제공

조종사의 생환훈련은 해상·수상(호수)·육상으로 나뉘는데, 그중 해상의 생존환경이 가장 열악하다고 합니다. 육상에선 토끼나 뱀 등을 잡아 먹을 수 있지만, 해상에서는 먹을 게 없습니다. 호수와 달리 바다는 드넓은 데다, 파도·조류와 맞서기도 해야 하고요. 또 수온에 따라 생존 가능 시간도 한정됩니다. 이날은 35도에 이르는 폭염으로 해수 온도가 23도가량이었는데, 이때 평균 생존 가능시간은 12시간 이상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겨울철 평균 해수온도인 10도 안팎일 땐 이 시간이 3~6시간으로 줄어듭니다. 영하 2도~영상 2도 구간에선 45분 정도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낙하산을 제대로 분리하지 못해 표류하게 된다면 구조에 걸리는 시간이 늘어나 생존 가능성은 급격히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죠.

해상생환교육대인 공군8126부대장 오형모 중령은 "본 훈련은 실제 발생할 수 있는 위기 상황에 대비해 우리의 소중한 자산인 조종사들의 생존 능력을 극대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며 "남해 끝자락에서 조종사들의 생존을 위해 땀흘리는 공군들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영토 수호를 위해 공중에서는 중력 가속도와 싸우고, 바다에선 파도·바람과 맞서야 하는 공군 공중 근무자들은, 이 시대 최고의 극한 직업 중 하나임이 틀림없습니다. 저는 불과 1분의 체험 후 나흘째 전신 근육통에 시달리고 있으니까요.


남해= 김경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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