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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극상에 요동치는 정보사... 암투 조장하는 예비역 단체의 그림자

입력
2024.08.19 18:00
수정
2024.08.20 09:30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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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사 넘버 1·2의 충돌, 초유 항명 사태
석연찮은 승진 인사, 예비역 입김 의혹
예비역 단체의 약진, 의심의 눈초리
신원식 장관 "명예훼손" 등 의혹 강한 부정

신원식 국방부 장관이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뉴시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이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뉴시스

국군 정보사령부가 자중지란에 빠졌다. 군무원이 블랙요원의 신상정보가 담긴 기밀을 빼돌리더니 서열 1·2위인 사령관과 여단장이 소송전으로 치받는 초유의 '하극상'이 한창이다. 해외·대북 정보작전의 근간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정보사 내부 인사 실패, 정보요원에 대한 푸대접 등 다양한 원인이 꼽힌다. 그 뒤에는 정보사의 위계와 질서를 좀먹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다는 지적이 많다. 정보병과 출신 예비역 단체의 입김이 작용해 정보사가 뒤틀리고 있다는 것이다.

하극상 불사하는 정보사 넘버 1·2의 충돌

정보사 '항명 사태'가 본격화한 것은 5월부터다. 당시 정보사령관 A소장은 "내 승인 없이 민간 예비역 단체가 (서울) 충정로 소재 비밀 사무실을 무단으로 사용하도록 한 건 직권남용 및 배임"이라며 휴민트(HUMINT·인간정보) 담당 여단장인 B준장을 질타했다. 언급한 예비역 단체는 '군사정보발전연구소', 비밀 사무실은 정보사의 소위 '안가(安家)'를 지칭한다. 정보사 '넘버 1'이 '넘버 2'를 혼내면서 예비역 선배들에게 사무실을 내주지 말라고 엄명을 내린 것이다.

하지만 B준장은 '법대로 하라'고 맞섰다. 사실상의 지시 거부인 항명이었다. 현재 국방부 조사본부는 A소장 측의 의뢰로 B준장의 해당 발언이 항명 및 상관 모욕에 해당하는지 조사하고 있다. 발언 자체의 진위 여부도 파악 중이다.

둘은 6월 또다시 충돌했다. A소장은 연구소가 비밀 사무실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재차 지시했다. 반면 B준장은 "연구소가 없으면 (정보사의) 사업 자체가 불가능하다"며 버텼다. 이 과정에서 '비전문가가 지휘관을 하니까 간섭하는 것'이라거나 '(당시 신원식) 국방부 장관과 독대하여 보고한 사안'이라는 발언까지 나왔다고 한다. 정보사가 아닌 육군부대 출신 A소장을 건너뛰고 장관과 독대를 했다는 의미로 읽힐 만한 대목이다.

고소장에 따르면, A소장은 2m 거리에서 결재판을 던졌고 B준장은 이를 근거로 A소장을 폭행 혐의로 고소했다. 이후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국회에서 B준장의 독대 발언을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다.

2014년 당시 조보근 국방부 정보본부장이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4년 당시 조보근 국방부 정보본부장이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육사 동기로 묶인 국방부와 연구소, 석연찮은 승진 인사

이번 사건과 관련, 본보가 취재과정에서 만난 정보사 안팎의 전·현직 인사들은 연구소의 조보근 이사장을 주요 인물로 지목했다. 조 이사장은 육사 37기로 신 장관과 동기다. 둘은 실제 막역한 사이로 알려졌다. 신 장관이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시절 조 이사장은 국방정보본부장 겸 합참 정보본부장으로 함께 근무했다.

정보사 사태는 '인사 청탁' 의혹으로 번진다. A소장과 B준장은 지난해 11월 함께 진급했다. A소장(육사 50기)은 정보사령관으로 발탁되면서 사령부 혁신을 강조했다. 그런데 B준장(육사 47기)은 A소장의 육사 3년 선배다. 관계가 껄끄러울 수밖에 없다. 익명을 요구한 군 관계자는 19일 "B준장이 대령에서 별을 달기 위해 예비역들의 힘을 빌린 것 아니냐는 말이 파다했다"면서 "심지어 B준장이 진급할 당시 휴민트 병과의 유일한 장성인 해당 여단장 자리에는 아직 임기가 남은 전임자가 있던 상태"라고 전했다.

일련의 인사 흐름도 석연치 않다. 2022년 5월 조 이사장 취임→ 2023년 10월 신 장관 취임→ 2023년 11월 B준장 승진 순으로 이어진다. 이에 육사 출신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7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나와 "지난해 11월은 임기제인 휴민트 보직 준장 인사 시기가 아닌데도 B준장이 진급했고, 육사 49기급이 들어가야 하는데 47기를 진급시켰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강력 부인한다. 특히 신 장관은 8일 국회 국방위 전체회의에서 "진급 청탁이 있었다는 것은 제 명예에 대한 심각한 손상"이라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이어 "B준장에 대한 정보본부장의 정식 수사 전환 요청을 바로 승인했다"며 "(인사 개입) 의혹이 사실이라면 어떻게 보고를 받자마자 승인하겠나"라고 선을 그었다. 조 이사장은 의혹과 관련한 입장을 듣기 위한 본보의 수 차례 전화와 문자메시지에 응하지 않았다.

그래픽=신동준 기자

그래픽=신동준 기자


"현역과 예비역 하나 되어"… 예비역 단체의 약진

이 같은 의혹의 중심에는 군사정보발전연구소가 있다. 지난해 12월 정관을 개정하더니 △홈페이지 개설 △군사정보발전지 창간 추진 △콘퍼런스·포럼 등 반기 단위 행사 개최 △타 정보병과 예비역 단체와 정보교류 행사 등으로 보폭을 넓혔다. 연구소의 약진과 신 장관 취임, B준장 승진 시점이 맞물린다.

새 인물도 등장한다. 올 4월 장성 인사에서 임기제 진급을 하면서 국방부·합참 정보본부장으로 자리를 옮긴 C중장이다. 육사 47기로 B준장과 동기다. 장성 인사 이튿날 조 이사장은 연구소 홈페이지 게시판에 "탁월한 경륜의 C장군이 후임자로 내정된 것을 축하한다"며 "향후 군사정보발전연구소와 긴밀하게 소통하여 국방정보를 한 차원 높은 경지로 발전시켜 나가리라 믿는다"고 적었다.

실제 국방정보본부와 연구소의 협력은 두드러졌다. C중장 진급 후 지난달 열린 연구소의 올해 후반기 포럼에서 국방부 정보본부는 후원을, C중장은 축사를 했다. C중장 진급 전에 열린 행사들은 정보 관련 업체의 후원을 받거나 국회의원실과 공동으로 개최했었다. 지난 6월에는 C중장 초청으로 정보본부와 연구소가 만찬회동을 가졌다. C중장을 비롯해 정보부장, 기획부장 등 국방부 정보병과 요직 장성들이 상당수 참석한 자리다.

조 이사장은 당시 자리에 대해 "국방정보본부와 연구소는 국방정보발전에 필요한 여러 가지 난제를 함께 협력해 해결해 나갈 것을 다짐했다"며 "연구소 발전을 위해 정보본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했다"고 밝혔다. 이어 "현역과 예비역인 정보인들이 하나가 되어 '자주국방의 길'로 힘차게 전진하자는 결의의 자리"였다고 강조했다.

7월 9일 국방컨벤션에서 열린 군사정보발전연구소 주최 '2024 후반기 군사정보발전포럼'에서 연구소와 국방부 인사를 포함한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가운데가 조보근 연구소 이사장, 그 왼쪽이 C중장이다. 군사정보발전연구소 홈페이지 캡처

7월 9일 국방컨벤션에서 열린 군사정보발전연구소 주최 '2024 후반기 군사정보발전포럼'에서 연구소와 국방부 인사를 포함한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가운데가 조보근 연구소 이사장, 그 왼쪽이 C중장이다. 군사정보발전연구소 홈페이지 캡처


잇따라 석연찮은 인사… 가시지 않는 의혹

군 안팎에선 C중장의 승진 인사도 의외였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2년 전 북한 무인기 영공 침범 사건 당시 합참 정보부장이던 C중장이 상황 전파와 작전 발령 지연 및 격추 실패 등의 책임으로 지난해 2월 서면 경고조치를 받았다는 점을 지적한다. 게다가 임기제로 소장에 진급하면서 경쟁자들보다 불리한 입장이었는데도 중장으로 다시 진급해 정보병과 최고 자리에 올랐다. 본보는 C중장에게 입장을 듣기 위해 몇 차례 전화하고 문자메시지를 남겠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익명의 군 관계자는 "극도의 보안을 요하는 휴민트 전담자들은 타 부대와의 교류가 극히 드물기 때문에 인사권자와 근무연을 만들기 어렵다"면서 "그러다 보니 승진을 위해 예비역의 힘을 빌리게 되고, 이는 왕성한 활동을 원하는 예비역 단체와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휴민트 작전의 특성상 같은 정보병과라도 다른 분야에서 경력을 쌓은 지휘관은 이해가 떨어질 수밖에 없어 조직쇄신과 기득권 유지 간 힘겨루기는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정보사 소속 상사와 중령 간 또 다른 하극상 사건이 불거진 만큼, 추락한 정보사의 위상을 되찾기 위해서는 조직 전반이 환골탈태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경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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