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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옷 좀 그만 사자!"... '패션 강국' 프랑스, 이젠 '패션 전쟁' 선두에

입력
2024.08.26 04:3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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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별의 별의별 유럽: 시즌2]
⑨ 프랑스의 섬유 폐기물 절감 노력
'수선 보너스 제도' 도입... 6~25유로 지원
패스트패션 벌금 제도 의회서 도입 추진
"기후 비상 사태, 인류 구하기 위한 전쟁"

프랑스는 자타공인 패션의 수도다. 패션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하다. 패션 강국 프랑스는 최근 의류 생산 및 소비를 감축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사진은 지난 6월 파리 패션 위크 당시 모델이 신상 의류를 선보이고 있는 모습. ⓒAlain Jocard, 파리=AFP 연합뉴스

프랑스는 자타공인 패션의 수도다. 패션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하다. 패션 강국 프랑스는 최근 의류 생산 및 소비를 감축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사진은 지난 6월 파리 패션 위크 당시 모델이 신상 의류를 선보이고 있는 모습. ⓒAlain Jocard, 파리=AFP 연합뉴스

"해외에 나가면 다른 어떤 것보다도 제 옷이 화제가 돼요. 패션에 대한 논평 중 가장 기뻤던 게 있다면, '너무 프랑스적'(So French)이라는 표현이요. 제 옷이 프랑스와 프랑스 문화에 대한 무언가를 말해준다는 것이잖아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부인 브리지트 마크롱 여사는 올해 초 프랑스 유력 일간지 르피가로가 발행하는 잡지 마담피가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프랑스 패션에 대한 모두의 관심과 프랑스인이 패션에 대해 갖고 있는 자부심을 동시에 보여주는 발언이었다.

프랑스인의 패션에 대한 애정은 어쩌면 자연스럽다. 샤넬, 에르메스, 루이뷔통 등 세계적 명품이 태어난 국가이자 독특한 감성과 기술을 자랑하는 국가가 프랑스다. 프랑스 문화부도 홈페이지를 통해 이렇게 소개한다. "우리의 영토, 언어는 패션에 깊숙이 젖어 있습니다!"

이러한 프랑스가 이제는 '패션과의 전쟁'에 앞장서고 있다. 정확히 표현하면 '새 옷'과의 전쟁이다. 새 옷을 사지 말고 고쳐 입으라며 국민들에게 수선비를 쥐여줬다. 또 빠른 주기로 신상품을 내놓고 저렴한 가격에 왕창 파는, 이른바 '패스트패션' 기업을 상대로 벌금을 걷는 법안도 마련 중이다.

프랑스의 '변심'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패션 관련 비영리단체 르패션, 엔모드클리마 등과의 인터뷰를 통해 살펴봤다.

수선 업체에서 직원이 손님으로부터 신발 수선 신청을 받고 있는 모습. 르패션 제공

수선 업체에서 직원이 손님으로부터 신발 수선 신청을 받고 있는 모습. 르패션 제공


"옷 수선하면 돈 돌려줍니다" 결단

섬유 생산이 환경을 오염시킨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유럽연합(EU)에 따르면, 패션 산업에서 발생하는 탄소는 전체 배출량의 약 10%를 차지하는데, 이는 국제선 항공편 및 해상 운송을 합친 것보다 많은 것이다. 2020년 EU에서 소비된 섬유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는 1억2,100만 톤의 온실가스가 발생했다고 한다.

상황이 심각해진 건 2000년대 이후다. 패스트패션 브랜드가 우후죽순 생기면서 의류 소비가 부추겨진 것이다. 전 세계 의류 생산량은 10년 사이 거의 두 배로 늘었고, 옷이 실제로 사용되는 기간은 3분의 1로 줄었다고 한다.

프랑스도 이를 정확히 알고 있다. 프랑스에서 매년 버려지는 의류만 70만 톤이다. 이에 프랑스는 의류 소비를 줄이기 위해 지난해 11월 '수선 보너스 제도'를 도입했다. 해당 제도는 수선을 하는 이들에게 제품 및 수선 종류에 따라 6~25유로(약 8,959~3만7,329원)의 지원금을 제공하는 제도다. 수선 지원금을 도입한 국가는 프랑스가 유일하다.

'경제적 인센티브'를 통해 '새 옷 구매'에서 '헌 옷 수선' 쪽으로 마음을 돌리게끔 만드는 것이 수선 보너스 제도가 돌아가는 원리다. 정부가 수선 보너스 제도를 총괄하는 단체로 지정한 르패션의 자료 및 인터뷰를 토대로 '프랑스 파리에 거주하는 A'라는 가상인물을 설정해 작동 방식을 살펴보면 이렇다.

1단계. 결함 발견: 어느 날 A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스웨터에 구멍이 났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2단계. 수선 VS. 구매 비교: 수선 비용을 알아보니 12유로(약 1만7,918원). 어쩌면 새 옷을 사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 패스트패션 브랜드 세일 기간이면 비슷한 스웨터를 15유로(약 2만2,398원)에 살 수 있다. 그러나 수선 보너스를 고려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일정한 한도 내에서 수선비의 최대 60%를 돌려받을 수 있으므로 결과적으로는 7.2유로(약 1만751원)를 절약해 4.8유로(약 7,167원)에 스웨터를 고칠 수 있다.

3단계. 수선 결정: 수선하는 쪽이 경제적으로 확실한 이득이라는 판단하에 A는 새 옷 구매 대신 수선을 결정했다.

수선 보너스 지급 방식도 간단하다. 경제적 이점을 고려해 수선을 결심했다가 절차상 복잡함으로 인해 결정을 무르는 일이 발생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수선 보너스는 공식 인증을 받은 수선 업체에 수선을 맡기는 경우에만 받을 수 있는데, 업체 관련 정보는 홈페이지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23일 기준 프랑스 전역에 등록된 수선 업체는 1,188개이고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수선 지원금을 받기 위해 복잡한 서류 작업을 거칠 필요가 없다. 옷을 맡기면 업체가 자동으로 일정 금액을 깎아주기 때문이다. 르패션으로부터 해당 금액을 돌려받는 건 업체 몫이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그래픽=송정근 기자


소비자 반응은 뜨거웠다. 르패션에 따르면 시행 이후 6개월간 약 25만 건의 수선이 접수됐다. 여기에 집행된 금액은 230만 유로(약 34억3,429만 원)에 달한다.

재원은 어떻게 마련될까. 지난해 11월 수선 보너스 정책을 시작하면서 베랑제르 쿠이야르 프랑스 환경부 장관은 "따로 마련해둔 1억5,400만 유로(약 2,299억4,818만 원)의 기금이 향후 5년간 활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때 '기금'은 국민 세금이 아니라 섬유 생산 업체가 낸 돈이다. 섬유를 더 생산하는 데 방해가 되는 기금 마련에 섬유 생산 업체가 참여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생산자 책임 확대법'(EPR)이 있기 때문이다. 해당 법은 '오염물 처리는 오염을 일으킨 사람이 책임지도록' 하는 게 골자다.

르패션은 수선 보너스 지급 규모가 앞으로 더 커질 것이라고 봤다. 엘사 샤사네트 르패션 수선책임자는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수선 보너스는 시민들의 습관에 '구매' 대신 '수선'을 뿌리내리게끔 하는 정책으로 자리 잡았다""정책이 국민들에게 널리 인식되고 수선 업체 참여가 더 늘면 제도는 더욱 활성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옷값 너무 싸면 수선 안 받아' 한계

그러나 수선 보너스는 한계 또한 명확하다. 수선이 필요한 옷의 구매 가격이 너무 저렴했거나 시중에서 싼값에 다른 대안을 구매할 수 있을 경우 수선 보너스가 '경제적 인센티브'로 여겨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지속가능한 패션을 추구하는 업체 약 600개의 연합체인 엔모드클리마의 플로르 베를링언 정책 책임자는 이런 설명을 내놨다. "누군가 아주 낮은 가격에 옷을 구매했다면, 굳이 이것을 고쳐서 다시 입겠다고 마음먹지 않을 것이다. 시장에서 아주 저렴하게 새 옷을 구매할 수 있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국가환경청 조사에 따르면 수선 가격이 새 옷 가격의 33%를 넘을 경우 수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실제로 소비자 반응도 비슷했다. 지난달 여름 세일이 한창인 독일 베를린의 한 패스트패션 브랜드 매장에서 만난 독일인 한나(17)에게 프랑스가 도입한 수선 보너스 제도를 설명하자 "의류 폐기물 감소 효과가 있을 것 같다"면서도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고작 10유로(약 1만4,932원)에 산 옷을 수선하는 건 불편하고 귀찮을 것 같아요. 새 옷을 사면 기분 전환이 되는 효과도 놓칠 수 없고요." 그의 앞 진열대에는 형형색색 티셔츠가 단돈 3.99유로(약 5,958원)에 판매되고 있었다.

지난달 여름 세일이 한창인 독일 베를린의 한 패스트패션 브랜드 매장. 티셔츠가 3.99유로에 팔리고 있다. 베를린=신은별 특파원

지난달 여름 세일이 한창인 독일 베를린의 한 패스트패션 브랜드 매장. 티셔츠가 3.99유로에 팔리고 있다. 베를린=신은별 특파원

문제는 싼값에 옷을 구매하기가 계속 쉬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몇 년간 패스트패션보다 더 짧은 주기로 신상품을 발매하고 초저가로 판매하는 이른바 '울트라패스트패션' 브랜드가 소비자 삶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브랜드가 중국의 '쉬인'이다. 쉬인은 일평균 7,200벌의 신상품을 선보인다고 알려졌다. 중국 온라인 유통 플랫폼인 알리, 테무 등도 저렴한 의류 공급의 선두주자다.

'패스트패션 벌금 물려야' 제재

의류 폐기물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지난달 총선으로 의회 구성이 바뀌는 등 정치적 혼란 탓에 다소 주춤해지기는 했으나 지난 상반기까지 프랑스 의회는 패스트패션에 일종의 벌금을 물리는 법안을 추진했다. 지난 4월 프랑스 하원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된 법안은 '2025년부터 패스트패션 브랜드에 대해 제품당 5유로(약 7,466원)의 부담금을 부과하고, 2030년까지 부담금을 10유로(약 1만4,932원)까지 인상하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베를링언 책임자는 "기업의 자발성에 맡겨서는 의류 폐기물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며 이렇게 말했다. "한 업체가 의류 생산 및 소비를 줄이고자 신제품 발표 속도를 늦춘다면 그게 줄어들까. 그렇지 않다. 다른 브랜드가 그 틈을 발 빠르게 파고들어 시장 점유율을 늘리고자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하에서는 '다 같이 무책임하게 생산하자'는 쪽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샤사네트 책임자는 "우리는 기후 비상 사태와 싸우고 있는 것이자 인류를 구하기 위한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베를린= 신은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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