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수사 외압 의혹 국회 청문회]
당시 서장 "전혀 사실무근... 직을 걸겠다"
당시 과장은 "분명히 들었다" 입장 반복
여 '맹탕 청문회' vs 야 '국민 의혹 해소를'
"용산(대통령실)에서 사건 내용 알고 있어요. 심각하게 보고 있어요."
경찰서장은 형사과장에게 정말 이렇게 말하며 수사에 부당한 외압을 행사한 것일까. 마약수사 외압 의혹에 실체가 있었는지를 가리기 위해 열린 국회 청문회가 '용산' 발언 관련 진실공방으로 번졌다. 현장 수사책임자(형사과장)에게 대통령실의 관심을 넌지시 알리며 압력을 행사한 의혹을 받아온 총경(당시 서울 영등포경찰서장)은 "그런 발언을 한 적이 없다"며 의혹을 전면 부인했고, 의혹을 제기한 경찰간부는 "분명히 들었다"고 맞섰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20일 오전 마약 수사 외압 의혹 관련 청문회를 개최했다. 이번 의혹의 핵심 인물인 김찬수(현재 대통령실 자치행정비서관실 파견) 총경은 증인으로 출석해 처음으로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김 총경은 "용산 관련 발언을 한 적 있느냐"는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 질의에 "사실무근"이라고 답했다. 그는 수사상식과 공보규칙에 따라 정당하게 브리핑 연기를 지시했으며 대통령실과의 연관성도 부정했다. 그는 "수사가 진전되고 완성도가 있는 다음에 보도해야 한다고 판단했다"며 "제 직을 걸고 말씀드리는데 (대통령실 연락을 받은 적이)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김 총경은 영등포서장이던 지난해 9월 22일 오후 9시 3분 영등포서 형사2과장이던 백해룡 경정에게 전화해 '용산'을 언급하며 브리핑 연기를 지시해 압력을 가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백 경정은 지난달 29일 경찰청장 후보 청문회에 나와, 김 총경이 용산을 언급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날 청문회에서 백 경정은 용산 관련 발언을 분명히 들었다며 맞섰다. 백 경정은 "세관 수사를 진두지휘한 사람이 김찬수 서장"이라며 "갑자기 브리핑도 막고 수사를 방해하게 된 계기가 용산이 아니면 설명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엇갈린 증언은 계속 이어졌다. 백 경정이 "(김 총경은) 수사팀을 배신해선 안 되는 사람인데, 본인이 명령받아서 현장에서 수사한 조직원들을 배신하고 등에 칼을 꽂았다"고 목소리를 높이자, 김 총경은 "칼을 꽂았다고 하는데 (제게) 사심이 있고 외압이 있었다면 이 자리에 올 이유도 없다"고 받아쳤다. 의원들이 김 총경이 용산 이야기를 한 게 맞는지 재차 묻자, 김 총경과 백 경정은 각각 "분명히 했다"와 "아니다"라고 상반된 답변을 내놓으며 평행선을 달렸다.
지휘계통에 있었던 서울경찰청 관계자들도 증인으로 출석해 의혹을 부인했다. 당시 서울청 폭력계장이었던 최형욱 경정은 "경찰이 세관을 수사한다고 보도자료를 공표하면 도망가란 얘기밖에 안 된다"며 "(세관 수사 내용을) 빼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고 증언했다. 서울청 형사과장이었던 강상문 총경은 "세관 수사 중단을 시킨 적 없고 이관 검토 지시만 했다"고 밝혔다.
양쪽 주장을 입증할 뚜렷한 증거가 없어 여야 의원들의 말싸움만 이어졌다. 야당은 백 경정의 증언을 토대로 대통령실과 경찰 윗선이 세관의 혐의를 지우기 위해 브리핑을 연기하는 등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주장한 반면, 여당은 외압 행사 정황 자체가 없었다고 반박했다.
한병도 민주당 의원은 "백 경정은 수사와 관련한 혁혁한 성과를 냈는데 이 정도면 승진해야 하는데 오히려 좌천됐다"고 지적했다. 조승환 국민의힘 의원은 "과도한 승진에 대한 열망과 경찰에 아직까지 남아 있는 기획수사 관행, 수사권 독립 이후 통제되지 않는 경찰 수사권, 정당한 지시에 대해서도 외압으로 느끼게 하는 분위기 등이 빚어낸 해프닝"이라고 주장했다.
마약 수사를 둘러싼 외압 의혹은 경찰이 마약조직에서 세관 쪽으로 수사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지난해 9월 영등포서는 말레이시아에서 제조된 필로폰 74㎏을 국내에 들여와 유통한 13명을 검찰에 송치했다. 이후 수사 과정에서 '세관 직원이 밀반입에 연루됐다'는 진술이 확보됐고, 경찰은 인천공항 세관 직원들에 대한 수사를 시작했다. 당시 수사 실무 책임자인 백 경정은 이 과정에서 부당한 외압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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