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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고사리까지 캐 간 '국가대표 영셰프'…미식 본 고장 파리 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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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고사리까지 캐 간 '국가대표 영셰프'…미식 본 고장 파리 홀리다

입력
2024.08.29 04:30
수정
2024.08.29 06:48
23면
0 0

코리아하우스 만찬 총괄 신용준 셰프
CJ제일제당 영셰프 배출 프로젝트 출신
한국·프랑스 아우르는 메뉴로 입맛 저격

7월 25일(현지시간) 파리 올림픽 코리아하우스 개관식 당시 만찬 모습. CJ제일제당 제공

7월 25일(현지시간) 파리 올림픽 코리아하우스 개관식 당시 만찬 모습. CJ제일제당 제공


파리가 처음부터 미식의 본고장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유명 셰프가 나오고 그들이 음식을 선보이면서 지금의 파리가 됐다고 봅니다. 한식도 마찬가지죠. 제가 더 유명해져서 한식을 더 알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024 파리 올림픽에서 대한체육회가 운영하는 코리아하우스 개관식 만찬 총괄을 맡았던 신용준(30) 셰프가 자신이 한 단계 성장했다고 했다. 그는 올림픽 개막 하루 전인 7월 25일(현지시간) 코리아하우스를 찾은 VIP 150인에게 '한류의 향연, 파리에서 만나다'를 주제로 열여덟 가지 음식을 내놓고 이를 맛본 손님들로부터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국가대표 선수단 못지않은 사명감을 안고 준비한 결과다.

신 셰프가 손님에게 자신의 요리를 선보이기 시작한 건 2021년 9월. 고등학교 친구인 이경원 셰프와 20대 초반부터 꿈꿨던 한식주점 '주052'를 서울 성동구 왕십리에 열었다. 호텔조리학과를 나와 여러 레스토랑에서 경력을 쌓은 신 셰프가 주방을 지켰다. 하지만 셰프보단 용준씨, 사장님이라고 불릴 때가 잦았고 그땐 그도 이런 호칭이 익숙했다.

2023년 9월 선발된 '퀴진케이'는 신 셰프에게 전환점이었다. 퀴진케이는 CJ제일제당이 젊은 한식 셰프를 발굴·육성하기 위해 2023년 5월 시작한 프로젝트다. CJ제일제당이 비비고 브랜드 등 가공식품을 앞세워 일군 K푸드 세계화를 확장하는 차원이다.


퀴진케이로 성장, 미쉐린 가이드에 선정


신용준 셰프가 26일 서울 동대문구 CJ제일제당센터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는 모습. CJ제일제당 제공

신용준 셰프가 26일 서울 동대문구 CJ제일제당센터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는 모습. CJ제일제당 제공


이 셰프와 CJ제일제당이 마련한 팝업레스토랑을 6주 동안 운영하면서 2, 3일마다 새 메뉴를 개발하는 등 혹독하게 수련하고 단련했다. 노력의 결과는 달았다. 주052는 요식업계 최고 권위를 가진 미쉐린 가이드에 최근 이름을 올렸다. 셰프로서 인정을 받은 셈이다.

올해 초 CJ제일제당이 코리아하우스 개관식 만찬 총괄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했을 때 그는 또 하나의 도약이 될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가졌다고 한다. 그는 이 셰프 등 퀴진케이 출신 셰프 다섯 명과 함께 만찬을 준비했다. 한국, 프랑스 고유의 요리와 식재료 간 조화에 초점을 뒀다.

4개월 동안 총 100가지 음식의 맛, 색감 등을 비교해 최종 18개를 만찬에 올리기로 결정했다. 신 셰프가 지리산 청학동에서 직접 캔 고사리 등 한국 식재료를 공수하고 프랑스에서 구할 식재료는 국제 전화·이메일을 통해 미리 확보했다. 음식 신선도·모양 유지 등 예측하지 못한 돌발 변수에 대처하기 위해 국내에서 실전 같은 리허설을 세 차례 진행했다.

행사 당일엔 등골이 오싹해지기도 했다. 코리아하우스에서 한 시간 거리인 파리 외곽에서 동료들과 함께 손질한 재료를 냉장 트럭에 싣고 만찬장으로 향한 신 셰프는 안절부절못했다. 오후에 예정된 만찬을 준비하려면 0.1초라도 빨리 도착해야 하는데 올림픽 기간 중 차량 통제로 파리의 도로 곳곳은 꽉 막혔다. 그는 차에서 내려 지하철을 타고 100m 달리기 선수처럼 뛰어갔다.


비비고 활용한 메뉴도 인기


7월 25일 파리 올림픽 코리아하우스 개관식 만찬을 준비한 퀴진케이 영셰프. 권영욱(왼쪽부터) 셰프, 신용준 셰프, 배요환 셰프, 김하은 셰프, 이경원 셰프, 백경록 셰프. CJ제일제당 제공

7월 25일 파리 올림픽 코리아하우스 개관식 만찬을 준비한 퀴진케이 영셰프. 권영욱(왼쪽부터) 셰프, 신용준 셰프, 배요환 셰프, 김하은 셰프, 이경원 셰프, 백경록 셰프. CJ제일제당 제공


현장에 도착한 신 셰프는 텅 빈 창고에 현지에서 빌린 각종 조리 기구로 임시 주방을 차렸다. 조리 기구 전원을 켜는 순간 정전이 됐다. 한꺼번에 많은 조리 기구에 전력을 공급하기 어려웠던 탓이다.

다행히 정전 역시 대응법을 짜뒀다. CJ제일제당이 변압기, 배터리 등을 구해와 10분 만에 정전을 해결한 후 음식을 계획대로 만들었다. 토마토 겉절이, 궁중 들깨 떡볶이 등 이날 준비한 250인분 음식은 순식간에 동났다.

CJ제일제당 제품을 활용한 음식도 주목받았다. 비비고 떡갈비를 프랑스 가정식인 부르기뇽(포도주를 이용한 스튜)과 접목한 게 대표적이다. 만찬 참석자들은 "한국 식재료와 프렌치 조리 기법이 만나 만들어내는 폭발적 풍미가 놀랍다", "전통 한식을 세련되게 표현했다"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일상으로 돌아온 신 셰프의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그는 "나만의 철학이 담긴 요리를 만드는 데 집중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한식 발전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기 시작했다"며 웃음 지었다.

박경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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