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어 키건 단편소설집 ‘푸른 들판을 걷다’
올해 한국 문학계에서 벌어진 이변은 아일랜드 소설가 클레어 키건의 인기다. 지난해 출간된 그의 장편소설 ‘맡겨진 소녀’와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올해 상반기 서점가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소설이다. 그의 초기 단편소설집인 ‘푸른 들판을 걷다’가 17년의 시차를 뛰어넘어 한국에 소개된 건 이 때문이다.
1999년 데뷔작 ‘남극’으로 온갖 문학상을 받으며 문단에 화려하게 등장한 키건은 8년 만에 내놓은 ‘푸른 들판을 걷다’로 소포모어 징크스를 완벽하게 벗었다. 7편의 단편이 실린 소설집에서 작가는 대가족을 원하지 않았던 집의 막내딸, 사랑하는 이의 결혼 예식을 맡은 사제, 잘못된 결혼을 선택했거나 결혼을 약속한 사촌에게 버림받은 여성 등 저마다의 불행과 우울, 결핍을 짊어진 이들을 불러낸다. 거칠고 투박한, 때로는 경직된 아일랜드의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키건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초록색 자두처럼 점점 무르익은” 채다.
2007년이라는 시대도, 아일랜드라는 배경도 다른 이야기에서 ‘나’를 발견하는 순간은 소설의 존재가치를 증명한다. 간결하고 명료한 키건 특유의 단어와 문장은 이런 만남을 가장 정확하게 짚어낸다. 인터뷰를 비롯한 소설 이외의 자리에서 자신의 작품에 대해 부연하지 않는 작가로 알려진 키건은 “소설 그 자체로 설명”이라고 말한다. 그의 소설은 “접시에 담긴 크림을 핥는 고양이 혀처럼 매끄럽게” 독자를 이끈다. 이를 따라가며 푹 젖어 들다보면 어느새 당신만의 푸른 들판을 거닐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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