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특정 안돼, 적법성 못 갖춘 소추"
세부 내용 판단 없이 만장일치 기각 결정
"입증 않고 소추 반복... 국회 무책임 행태"
검찰은 9개월 수사 뭉개고 자료제출 거부
'처남 마약수사 무마 의혹' 등 각종 비위 의혹을 사유로 탄핵 소추된 이정섭 대전고검 검사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기각 결정했다. 국회의 탄핵 소추사유가 충분히 특정되지 않아 탄핵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는 취지다. 수사나 감찰 등 사실관계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탄핵 소추한 국회 행태에 대해 헌재가 제동을 걸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헌재는 29일 이 검사 탄핵 사건에 대해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기각 결정했다. 이 검사의 주요 소추사유였던 △범죄경력 무단 열람 △리조트 이용 관련 부정청탁금지법 위반 △골프장 예약 편의 제공 △처남 조모씨 마약 사건 수사 무마 의혹에 대해 "소추사유가 특정되지 않아 형식적 적법성을 갖추지 못했다"며 "더 나아가 판단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헌재는 이 검사의 탄핵 사유가 충분히 특정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헌재 결정례에 따르면 소추사유는 탄핵 소추 대상이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고 헌재가 심판 대상을 확정할 수 있을 정도로 사실관계가 구체적으로 기재돼야 한다. 형사사건 공소사실만큼은 아니더라도 공무원 징계사유 정도로는 구체적 사정이 들어가야 한다. 헌재는 이날 "행위의 일시·대상·상대방 등 구체적 태양, 직무집행과의 관련성 등이 특정되지 않았다"며 "심판대상을 확정할 수 있을 정도로 사실관계가 구체화돼, 다른 사실과 명백하게 구분할 수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청구인이 방어권을 행사할 것을 기대하기 어려운 정도"라고 덧붙였다.
헌재의 이 같은 결정은 어느 정도 예견됐다. 탄핵 심판은 수사나 재판이 선행 조건은 아니지만 강제수사권이 없는 헌재가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선 수사 및 감찰 등의 결과 자료가 필요한 게 현실이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의혹 단계의 사안에 대한 탄핵소추는 바람직하지 않을뿐더러, 인용으로 이어지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의혹만 제기된 상태에서 이 검사 탄핵을 강행한 더불어민주당 책임론이 불가피하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결과적으로 심판이 끝날 때까지도 탄핵 사유를 입증하지 못한 셈이어서다. 헌법연구관 출신 황도수 건국대 교수는 "탄핵을 했으면 최선을 다해 증거를 수집하고 탄핵사유를 입증하는 것이 소추 당사자인 국회의 책임"이라며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이 매번 기각당하고도 탄핵소추 자체만 반복하는 것은 국민을 기망하는 무책임한 정치 행위"라고 날을 세웠다. 게다가 이 검사는 탄핵 추진 당시 이재명 민주당 대표 수사를 지휘하는 수원지검 2차장검사였다. "이 대표 방탄용 탄핵"이라는 시각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다만, 검찰 역시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을 면치 못할 전망이다. 당초 이 검사에 대한 각종 의혹이 제기됐을 당시, 검찰 안팎에서는 '속전속결'을 예상했다. 이원석 검찰총장이 이 검사를 직무 배제한 데 이어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 김승호)가 강제수사에 착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압수수색 이후 9개월이 지나도록 수사는 지지부진하다. 최근에서야 '마약수사 무마 의혹' 대상인 이 검사 처남의 압수물에 대한 포렌식을 마쳤다. 그러면서 검찰은 헌재의 자료 제출 요구는 "수사 중"이라는 이유로 전부 거부했다.
헌재는 이 밖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집합금지 위반 의혹 △자녀 위장전입 의혹 등 이 검사의 다른 소추사유에 대해선 검사 직무집행에 관한 것이 아니어서 탄핵 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김학의 뇌물 사건에서 증인신문 전 증인을 사전 면담했다는 의혹 역시 다수 의견으로 "직무집행에 있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기각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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