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당시 계엄군 성폭행 공론화했지만
6년 간 조사에 지쳐 항암치료까지
"5·18 잊겠다" 결심에도 끝내 다시 증언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아요. 5·18민주화운동을 위해, 성폭력 피해자들을 위해 단 한 톨의 씨앗이라도 뿌리고 갔다. 그렇게 묘비에 남길 각오로 이 자리에 나왔어요."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성폭력 문제를 처음으로 제기한 김선옥씨는 지난달 26일 열매 모임에 앞서 한국일보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피해자를 위한 한알의 씨앗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5·18 당시 시민군의 거점인 전남도청에서 안내방송을 맡았던 김씨는 1980년 7월 상무대 영창으로 연행됐고 전남합동수사단 한 수사관에게 성폭력을 당했다. 2018년 서지현 검사의 검찰 내 성 비위 고백에 용기를 얻어 계엄군의 성폭력 문제를 공론화했다.
지난 6년 간 매번 기억하기도 싫은 끔찍한 기억을 꺼내야만 했던 김씨는 스트레스로 인해 난소암이 생겨 항암 치료를 받았다. 김씨는 "항암 치료를 받으며 5·18이 끝내 나를 죽이는구나 하고 생각했다"며 "어느 날 바닷가에서 맨발 걷기를 하던 중 제발 5·18을 잊게 해달라고 통곡하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이제는 그만 5·18을 잊고 싶다며 목 놓아 울던 피해자는 그럼에도 또다시 이날 모임에 나왔다. 그에게 5·18은 떼어놓을 수 없는 숙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김씨는 "피해자들에게 절대 부끄러운 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며 "내가 쏘아 올린 공이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는 것을, 끝내 끝을 맺는 것을 보고 싶다"고 했다.
김씨는 "이제는 피해자들이 직접 나설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의 피해 사실이 알려졌을 당시 정치권을 비롯한 사회 각계각층에서 연대를 약속했지만 구체적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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