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어렵지만 '붕괴'는 아니라는데...]
교수들 "분만 안 되는 대학병원 수두룩"
응급실 의사 "환자 절반 돌려보내는 중"
정부 "응급실 인력 73%" vs 야당 "절반"
2일 오전 서울 성동구 한양대병원 응급실. 서울 동남권 응급 환자를 진료하는 권역응급의료센터다. 10시 40분쯤부터 5분 만에 구급차 세 대가 연달아 들어왔다. 대원들이 들것에 누운 환자를 응급실 안으로 들여놓는 사이, 또 다른 사설 구급차가 도착했지만 입구 앞에 자리가 없어 동관 주차장으로 향했다. 보호자 대기실에서 만난 70대 A씨는 "아내가 갑자기 쓰러져 응급실을 찾는데 입원이 안 된다고 해 여기저기 떠돌다 왔다"면서 "보호자가 되기 전엔 (응급실이) 이 정도일 줄 몰랐다"고 토로했다.
몇 시간 후 정부는 범부처 합동브리핑을 통해 "일부 어려움은 있지만 응급실 붕괴를 우려하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정부가 낙관하는 동안, 응급실 의료진과 환자들의 신음소리는 끊이지 않고 있다. 붕괴까진 아니라는 말이 맞다고 하더라도, 정부가 밝힌 '일부의 어려움'은 요즘 응급실에서 너무 쉽게 찾을 수 있는 풍경이다. 과연 정부 말대로 진짜로 '일부의 어려움'일까.
"오려는 환자, 절반밖에 못 받는다"
의료 현장에선 심각성을 낮게 판단하는 정부를 향한 불만이 터져 나오는 중이다. 보건복지부는 이날 브리핑에서 전체 409개의 응급실 중 99%인 406개소는 24시간 운영을 하고 있으며 6.6%에 해당하는 27개소만 병상을 축소·운영 중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는 대학병원 응급실 대부분이 기능을 이미 축소했다고 주장한다. 전의비는 "1일 기준 전국 57개 대학병원 응급실 중 분만이 안 되는 곳은 14개, 흉부대동맥 수술이 안 되는 곳은 16개, 영유아 장폐색 시술이 안 되는 곳은 24개, 영유아 내시경이 안 되는 곳은 46개"라고 설명했다.
문은 열되 환자를 안 받는 식으로 응급실 운영을 지속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자책도 나온다. 경기권 지역응급의료센터에서 근무하는 응급의학과 B교수는 "응급실이 평안하게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환자를 많이 받지 않아서 그런 것일 뿐"라며 "복지부 장·차관과 대통령실에 구급차를 직접 타 보라고 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서울 소재 소방서에서 '환자 받아달라'는 전화만 하루에 30~40통씩 받지만 수용 가능한 환자는 그중 절반 정도"라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통계도 엇갈려... 누구 말이 맞나
심각성에 대한 주관적 인식뿐 아니라 '객관적 팩트'라고 할 수 있는 응급실 인력 관련 통계마저 엇갈리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의료대란대책특별위원회가 복지부를 통해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전국 권역응급의료센터 의사 수는 지난해 4분기 910명이었으나 지난달 21일에는 513명으로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전공의뿐 아니라 공백을 메우던 전문의마저 줄줄이 응급실을 떠나는 중이다. 이형민 대한응급의사학회장은 "(이들이) 정부 정책에 반대해 무슨 파업을 하겠다는 게 아니라 그냥 힘들어서 그만두는 것"이라면서 "물리적으로 버틸 수 있는 한계는 이미 벗어난 데다가 해결될 가능성이 안 보이니 정신적인 번 아웃까지 겪고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인력 부족 또한 그 정도로 심각한 상황은 아니라고 반박한다. 이날 브리핑에서 박민수 복지부 2차관은 "일각의 주장처럼 응급실 근무 인원이 절반 이하로 줄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응급실에 근무하는 전문의·일반의·전공의를 포함한 총 의사는 평시 대비 73.4% 수준"이라고 밝혔다.
정부 말대로 '낙관'할 상황인지, 의사들 말대로 이미 '대란'으로 가고 있는지는 결국 정부가 내놓을 대책에 달려 있다는 신중론도 있었다. 수도권 소재 대학병원 응급의학과 C교수는 "지금 의료계와 정부가 극도로 예민해져 있어 감정의 골이 깊어져 있는 상태"라면서 "국민 생명이 걸려있는 문제인 만큼 우선 대책이 진행되는 것을 양쪽 모두 차분하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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