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준 소설 '여름과 루비'
편집자주
치열한 경쟁을 버텨내는 청년들에게 문학도 하나의 쉼표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작품 중 빛나는 하나를 골라내기란 어렵지요. 소설집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으로 제55회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한 송지현 작가가 청년들의 '자연스러운 독서 자세 추구'를 지지하는 마음을 담아 <한국일보>를 통해 책을 추천합니다.
이야기를 고를 때 몇몇 설정들은 대놓고 편애하는 편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음악을 소재로 한 만화는 모두 좋아한다. 어떤 작품이건 요괴나 귀신이 나오면 일단 본다. 그리고 또 하나. 바로 어린아이가 화자인 소설. 특히 화자가 여자아이라면 나는 이미 소설에 빠져들 준비를 마친 거나 다름없다. ‘여름과 루비’는 이러한 편애로부터 시작된 독서로, 첫 문장은 이렇다. “일곱 살 때 나는 ‘작은’ 회사원 같았다. 하루하루가 길고 피로했다.”
첫 문장을 읽는 순간 주인공을 사랑하고 말았다. 하루하루가 길어서 피로를 느끼는 일곱 살짜리 여자아이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건 당연한 일이다. ‘여름’의 아버지는 사랑을 독식하고 여름의 고모는 모든 것을 통제하며 여름의 ‘새’엄마는 ‘헌’자식인 여름을 싫어한다. 삶은 어리다고 봐주는 법이 없다. 아니, 어릴수록 삶은 더 고되다. 모든 것이 처음이고, 낯설고, 그렇기에 충격적이고, 그것은 나쁜 경험도 예외는 아니기 때문이다.
여름은 학교에서 만난 ‘루비’를 사랑하게 된다. 루비는 학교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이고, 이 때문에 여름은 루비의 집에서만 루비를 만난다. 이쯤에서 여름의 강박적인 행위에 대해 알릴 것이 있다. 여름은 필사한다. 부업처럼, 늘 해야 하는 것처럼. 루비는 책을 읽는다. 쓰는 자와 읽는 자, 그들은 한 몸이나 다름없다.
글이란 그 어떤 것이라 할지라도 지금 이곳에 가져다 놓을 힘이 있다. 그 힘은 워낙 강력해서 그저 눈앞에 가져다 놓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고스란히 경험하게 한다. 우리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색채, 음악, 공기를 쥔 손바닥, 나무 의자의 감촉까지 고스란히 느끼게 된다.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있다. 유년이 시절이라는 것. 유년은 ‘시절(時節)’이 아니다. 어느 곳에서 멈추거나 끝나지 않는다. 돌아온다. 지나갔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 컸다고 착각하는 틈을 비집고 돌아와 현재를 헤집어 놓는다.”
우리가 이 글을 읽으며 경험한 것은 바로 우리의 유년이다. 아름다운 색으로 덧칠되어 있지만 그 아래 숨겨둔 못난 밑그림 같은 것. 모든 서툴렀던 사랑과 이별과 실패. 아니, 어쩌면 미성숙한 우리의 존재 그 자체. 그러나 이 모든 ‘첫’은 우리의 근원이고 시작이다. 우리는 그 모든 실패에도 사랑하길 멈추지 않았다. 부지런히 변화했고 부지런히 늘 그 자리였다. 마치 계절처럼.
아침에 일어나니 선선해서 조금 놀랐다. 계절은 정말이지 부지런히도 변화하고 있었다. 창문을 활짝 열어 새로운 계절을 맞이했다. 여름은 지났지만, 또 영원하기도 하다. 유년이 언제든 되돌아와 나를 헤집어 놓는 것처럼. 그러니 어린아이가 화자인 소설, 특히 여자아이가 주인공인 소설을 읽을 때면 이미 소설에 빠져들 준비를 마친 거나 다름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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