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랬다저랬다' 금감원장 발언에 은행권 '심란'
"성급한 금리 인하 기대"... 20여 차례 금리 인상
"금리상승, 당국 바란 것 아냐"...대출 규제 쏟아내
"지나친 규제로 실수요자 피해"...원복할지 고심
"시장 모르는 관료가 더 큰 혼란 일으킬까 우려"
당국이 수시로 방향을 바꾸다 보니 어떤 장단에 맞춰야 혼이 안 날지 고민입니다.
한 금융사 관계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입을 열 때마다 대출 시장이 혼란에 빠지고 있다. 앞서 이 원장이 은행들의 대출 금리 인상을 지적하자 은행들은 각종 대출 규제를 쏟아냈는데, 이제는 대출 규제로 실수요자가 피해가 발생했다며 은행들을 꾸짖고 나섰다. 이 과정에서 실수요자들은 매일 달라지는 대출 정책에 혼란스럽고, 은행들은 당국의 눈치만 보느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은행권은 차라리 당국이 가이드라인을 정해주면 거기에 따르겠다는 자조 섞인 푸념도 늘어놓고 있다.
5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이 원장은 10일 주요 은행장들과 만나 가계대출 정책 관련 간담회를 가질 예정이다. 은행마다 제각각 가계대출 정책을 발표하면서 실수요자의 피해가 발생한다는 지적에 따른 후속조치다. 은행연합회 역시 이에 발맞춰 은행들의 대출 규제안을 정리하는 협의체를 구성하기로 했다. 금융당국도 협의체에 참가할 예정이다.
현재 은행들은 이 원장의 입만 바라보고 있다. 이 원장은 지난달 25일 "대출 금리 상승은 당국이 바란 게 아니다. (은행에 대한) 개입을 더 세게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7~8월 사이 은행들이 대출금리를 연이어 올린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은행들이 금리를 올린 데에는 7월 초 이 원장이 임원회의에서 "성급한 금리 인하 기대와 주택가격 반등에 편승한 대출 확대는 가계부채 문제를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압박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그러던 이 원장이 다시 금리 인상을 지적했고 이에 은행들은 대출 한도를 줄이거나 1주택자의 수도권 전세대출 제한 등 각종 규제책을 경쟁적으로 내놓았다. 그러자 이 원장은 이번에는 "기계적이고 일률적인 대책은 지양해야 한다"며 "가계 부채 관리 속도가 늦어지더라도 실수요자들에게 부담을 줘선 안 된다"고 말을 바꾸면서 은행권은 또다시 혼란에 빠졌다. 더욱이 이 원장이 "은행들이 가계 대출 급증 추이를 막기 위해 들쭉날쭉한 대책을 내고 있다"고 실수요자 피해의 책임을 은행권으로 돌리면서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느냐'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이 원장이 구체적으로 "1주택자들도 자녀가 지방에 대학교를 다녀야 해 전셋집을 구하는 등 실질적으로 생활에 필요한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꼬집으면서, 이미 1주택자 대상 대출 규제를 시행한 우리은행, 삼성생명 등은 정책을 원복해야 하는지 고심하고 있다.
은행들은 실수요자에게 피해가 가지 않으면서도 가계대출 총량을 관리해야 하는 어려운 숙제를 떠안았다. 문제는 실수요에 대한 기준이 명확지 않다는 데 있다. 한 금융사 관계자는 "해당 은행들도 1주택자까지만 실수요자로 판단하고 정책을 만들었을 것"이라며 "고객들은 각자 상황에 따라 실수요라고 주장할 텐데 앞으로 어떻게 대출 정책을 짜야 하는지 고민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결국 이 원장이 은행장들과 만나 얼마나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내놓을지에 관심이 쏠린다. 금융당국의 가이드라인이 나온다면 은행별로 대출 조건이나 한도가 달라 발생하는 혼란은 해결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이 원장이 "은행들이 실수요자들에게 피해를 주지 말아야 한다"는 식의 선언적 발언에 그친다면 혼선은 불가피하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시골에 물려받은 집이 있는 경우, 직장 때문에 단기간 타 지역에 머물러야 하는 사례, 자녀의 학업 때문에 2주택을 유지해야 하는 등 1주택자마다 사정이 천차만별이라 실수요자라는 객관적 기준을 마련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부동산 시장 상황을 잘 모르는 금융관료가 시장에 더 큰 혼란을 야기할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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