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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델라의 ANC가 손가락질한 흑인 민권운동가

입력
2024.09.12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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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2 스티브 비코

30대 만년의 남아공 민권운동가 스티브 비코. 아트스탠드컬처 캡처

30대 만년의 남아공 민권운동가 스티브 비코. 아트스탠드컬처 캡처

스티브 비코(Stephen “Steve” Biko, 1946.12.18~1977.9.12)는 아파르트헤이트 시대 남아프리카공화국 청년 지식인 운동의 거인이다. 넬슨 만델라(1918~2013)의 아프리카민족회의(ANC)가 추구한 무력 투쟁과 달리 평화주의 반(半)합법 노선을 지향한 그는 60년대 말부터 ‘흑인의식고양운동(Black Consciousness Movement)’, 즉 흑인 사회에 팽배해 있던 열등감을 극복하고 흑인 문화와 전통에 대한 자긍심을 고취하며 흑인 참정권 캠페인 등을 주도했다.

남아공 이스턴케이프주에서 태어나 나탈 의과대학에 진학한 그는 60년대 미국 흑인인권운동 영향을 받아 68년 흑인 중심의 남아프리카학생기구(SASO)를 결성해 초대 회장을 맡았고, 대학을 거점 삼아 지역사회로 흑인의식고양운동을 확산시켰다. 당시는 ANC의 군사조직 ‘민족의 창’ 초대 사령관이던 만델라가 62년 체포돼 종신형을 선고받고 수감돼 있던 때였다.

비폭력주의를 표방하긴 했지만 그의 활동은 백인 정권에 ANC 못지않은 위협이었고, 2명 이상의 대중을 상대로 한 연설조차 불법이었던 시절이어서 활동 자체도 불법이었다. 그는 수차례 연행 구금됐고, ANC 역시 그의 ‘유순하고 분열적인’ 활동 노선을 비난했다.

72년 SASO 조직을 지역사회로 확장한 ‘흑인인민회의’를 설립, 남아공 전역으로 조직을 확장하던 77년 8월 그는 테러방지법 위반 혐의로 다시 체포 구금됐고, 모진 고문 끝에 뇌 자상 등으로 숨졌다. 남아공 당국은 단식농성 후유증이라고 사인을 밝혔다.

그의 장례식에는 2만 명이 넘는 시민이 운집했을 정도로 대중적으로 커다란 영향력을 미쳤지만, 반아파르트헤이트 운동의 구심체인 ANC는 90년대 이후에야 그의 기여와 정치적 위상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그는 1930년대 범아프리카 인종 정체성 운동(Negritude)을 계승하고 60년대 이후 흑인 문화운동(Black is Beautiful)을 이끈 주역이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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