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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의 무법자’가 되살린 스페인 북부

입력
2024.09.10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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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영화 '석양의 무법자' 마지막 장면은 '새드 힐'이라는 거대한 공동묘지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영화 '석양의 무법자' 마지막 장면은 '새드 힐'이라는 거대한 공동묘지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영화 ‘석양의 무법자’(1966)는 종종 서부극 명작 중 하나로 꼽힌다. 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냉소적인 표정, 엔니오 모리코네(1928~2020)의 감성적 음악이 특히 인상적이다. 미국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금괴를 차지하려는 세 사나이의 사연이 161분 동안 스크린을 채운다. 미국적인 장르인 서부극인데다 등장인물들이 영어를 구사하는 이 영화는 이탈리아 주도로 만들어졌다. 촬영은 좀 엉뚱하게도 스페인 북부 부르고스주에서 이뤄졌다.

□ ‘석양의 무법자’ 촬영 당시 스페인은 군부 독재자 프란시스 프랑코(1892~1975)가 통치하고 있었다. 프랑코 정권은 스페인 내전과 철권 통치로 얼룩진 국가 이미지 개선을 위해 외국 영화 촬영을 적극 유치했다. 세제 혜택을 주는 등 여러 유인 정책을 펼쳤다. ‘석양의 무법자’ 속 남군과 북군이 맞붙는 전투 장면에는 스페인 군인들이 동원됐다. 프랑코 정권은 영화 마지막에 등장하는 거대한 공동묘지 ‘새드 힐(Sad Hill)’ 등 세트 건립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촬영이 끝난 후 ‘새드 힐’은 방치됐고, 흙에 묻혔다.

□ 2015년 한 스페인 열성 팬이 ‘새드 힐’ 복구에 나섰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글을 올려 사람과 돈을 모았다. 미국 유명 헤비메탈 그룹 메탈리카의 리드보컬 제임스 헷필드가 주요 후원자 중 하나였다. 팬들은 18㎝ 두께 흙을 직접 걷어내고 영화를 참조해 ‘새드 힐’을 2016년 되살렸다. 순례자들이나 찾던 인근 작은 마을 산토 도밍고 데 실로에 관광객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석양의 무법자’를 인생 영화로 꼽는 팬들이 대부분이었다.

□ 지난 4일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산토 도밍고 데 실로가 속한 부르고스주 주민들은 더 많은 관광객을 모으기 위해 '새드 힐'이 포함된 관광 코스를 최근 새로 개발했다. 부르고스주는 인구 급감에 시달리는 곳이다. 관광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바르셀로나 등 스페인 관광 인기 지역 주민들이 ‘오버투어리즘(과잉관광)’을 반대하며 시위를 벌이는 것과 대조적이다. ‘석양의 무법자’와 ‘새드 힐’은 스토리의 힘이 얼마나 강한 것인지 새삼 역설한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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