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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커스 광대 세쓰 블룸이 (못)이룬 꿈

입력
2024.09.23 04:30
수정
2024.09.24 19:0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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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robuffos의 Seth Bloom(1975.1.4~2024.8.2)

세쓰 블룸은 아내 크리스티나 젤솜과 함께 '아크로부포스(Acrobuffos)'란 이름의 듀오로 활동하며 대표작 'Air Play(사진)' 등 여러 작품으로 세계 40여개 국 무대에 선 미국 광대 공연예술가다. 그는 2003년부터 아프가니스탄과 다르푸르 난민캠프 등 재해-재난지역 아이들에게 서커스의 웃음과 아름다움으로 새로운 꿈과 희망을 전하고자 한 서커스 사회활동가이기도 했다. 그는 감정의 표출이야말로 치유와 재활의 시작이라고 믿었다. acrobuffos 사진.

세쓰 블룸은 아내 크리스티나 젤솜과 함께 '아크로부포스(Acrobuffos)'란 이름의 듀오로 활동하며 대표작 'Air Play(사진)' 등 여러 작품으로 세계 40여개 국 무대에 선 미국 광대 공연예술가다. 그는 2003년부터 아프가니스탄과 다르푸르 난민캠프 등 재해-재난지역 아이들에게 서커스의 웃음과 아름다움으로 새로운 꿈과 희망을 전하고자 한 서커스 사회활동가이기도 했다. 그는 감정의 표출이야말로 치유와 재활의 시작이라고 믿었다. acrobuffos 사진.

오직 인간만이 웃을 줄 아는 동물이라 여겼던 철학자 니체는 “혼자서 너무 극심한 고통을 겪다 보니 웃음이란 걸 발명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사후 출간된 ‘권력에의 의지’(1878)에 썼다. “가장 불행하고 또 가장 우울한 동물이, 짐작할 수 있겠지만, 가장 쾌활한 동물인 셈이다.”
100년 뒤인 1978년 심리학자 새뮤얼 야누스(Samuel Janus)는 유대인의 코미디가 그들이 겪은 민족적 수난과 관련이 있다고 미국심리학회 세미나에서 밝혔다. “유대인의 유머는 우울증과 보편적 문화로부터의 소외에서 비롯됐다. (…) 코미디는 타인의 공격성과 적대감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방어기제다.” 그는 자신이 인터뷰한 희극인 약 80%가 유년기 심각한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실도 확인했다. 곤경과 비탄에 빠진 이들이 웃음을 짓는 것도 그런 예일 것이다.
‘슬픈 광대 패러독스(Sad Clown Paradox)’라는 심리학 용어도 있다. 불안과 우울, 끊임없는 존재 증명의 압박감과 내적 혼란, 역경 속에서 스스로에 대한 통제력을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 웃고 또 웃음을 창조하는 경향을 가리키는 말이다. 작가 알브레히트(Albrecht)는 소설 ‘어릿광대의 우울'에서, 권력 암투의 틈바구니에서 일생을 부대낀 주인공 궁정 광대를 두고 이렇게 묘사한다. “웃어서 웃는 게 아니다. 가짜 웃음을 하도 짓다 보니 저 표정 그대로 굳어진 것이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버리고 버린 광대야. 네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했는지 아느냐? 그런데 어찌 너는 점점 슬퍼지느냐.”
서커스 사회운동(Social circus)이 저런 맥락에서 시작됐다. 언어와 문화 장벽이 가장 낮은 오락예술 장르인 서커스(의 웃음으)로, 재해나 전쟁의 폐허 위에서 웃을 일이라곤 없을 것 같은 이들에게 즐거움의 감정을 선사하고, 더불어 왁자지껄 웃는 행위를 통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작은 의지나마 북돋우려는 활동 전반을 가리키는 말이다. 서커스 사회운동 활동가들은 감정의 표출이 치유와 재활의 시작이라 믿는다. 세기말 허무주의와 맞섰던 니체의 ‘권력에의 의지’도 아마 극복의 의지, 생의 의지였을 것이다.

미국의 광대 공연예술가 세쓰 블룸(Seth Bloom, 1975.1.4~2024.8.2)이 서커스 사회운동가였다. 동료이자 아내인 크리스티나 젤손(Christina Gelsone, 1973~)과 함께 ‘아크로부포스(Acrobuffos)’란 이름의 광대 듀오로 활동하며 영국 런던 로열페스티벌홀과 미국 워싱턴D.C 케네디홀을 비롯, 전세계 40여 개 국 주요 무대에서 공연한 그는 아프가니스탄 등 10여 개 국 분쟁-재난지역에서 현지 활동가 및 아이들에게 서커스 기초 기술을 가르치고 함께 공연을 기획했다. “병원도 학교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사람이 사람처럼 사는 것도 필요하다. 우리가 하는 일은 아이들을 꿈꾸게 하는 것이다. 그들로 하여금 미래를 상상하게 하는 것이다.
3년 넘게 원인 모를 발바닥 통증을 견디며 공연 등을 이어오던 그가 지난해 말 걷기조차 힘들어지면서 모든 활동을 중단하더니 얼마 전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49세.

세쓰 블룸(왼쪽)과 크리스티나 젤손은 2003년 아프가니스탄에서 만나 2007년 결혼했다. 둘은 아프간전쟁이 다시 격화한 2010년 전까지 7년 간 매년 석 달씩 아프간 현지에 머물며 아이들과 주민들을 위한 서커스 공연을 기획-연출하고 기본기를 가르쳤다. acrobuffos 사진.

세쓰 블룸(왼쪽)과 크리스티나 젤손은 2003년 아프가니스탄에서 만나 2007년 결혼했다. 둘은 아프간전쟁이 다시 격화한 2010년 전까지 7년 간 매년 석 달씩 아프간 현지에 머물며 아이들과 주민들을 위한 서커스 공연을 기획-연출하고 기본기를 가르쳤다. acrobuffos 사진.

블룸은 워싱턴D.C에서 태어났지만 부모 일 때문에 인도와 케냐 스리랑카 등지를 떠돌며 자랐다. 그는 고교 진학을 앞두고서야 워싱턴에 정착했다. 아버지는 미국의 비군사 해외원조기구인 국제개발처(USAID) 외교관이었고 어머니도 저개발지역 현지 근무가 잦은 유엔세계식량계획(WFP)에서 일했다. 귀국 직후 우연히 장검 삼키기의 일인자로 꼽히는 마술사 조니 폭스(Johnny Fox)의 공연을 본 블룸은 곧장 서커스에 매료돼 저글링을 익히기 시작했다. 서커스 공연 전문 잡지 ‘The Widow Stanton’과의 2016년 인터뷰에서 그는 고교 졸업 후 자기에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말했다. “정규 대학에 진학해 영어와 불어, 수학을 계속 공부하거나 광대학교에 가서 파이를 던지고 커다란 신발을 신고 자빠지는 기술을 익히는 거였다.” 그는 후자를 택했다.

만 19세 되던 해 겨울, 그는 위스콘신에 있던 유서 깊은 서커스 전문학교 ‘링링 브로스 앤 바넘 & 베일리 광대학교(Ringling Bros. and Barnum & Bailey Clown College, 1997년 폐교)에 지원, 100대 1 경쟁률을 뚫고 오디션을 통과했다. 지원자가 무려 3,000여 명이었다고 한다. 10~13주 과정의 커리큘럼을 통해 그는 서커스 기본 즉 곡예와 저글링 외줄타기 무언극 의상·메이크업을 익혔고, 찰리 채플린 등 고전 배우들의 연기를 연구했다. 무언극 광대 연기에 특히 심취한 그는 졸업 후 버몬트주의 한 서커스단을 거쳐 캘리포니아 델라르테 피지컬 시어터에서 따로 몸 연기를 배웠고 웨슬리안대에서 2000년 학사학위(무용)를, 영국 런던 국제공연예술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아내 젤손은 그를 “세계에서 가장 가방끈이 긴 광대”라고 소개하곤 했다. 공부를 하면서도 그는 동료들과 함께 거리공연으로 경험을 쌓아갔다.

탈레반 정권이 붕괴한 직후인 2003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일하던 어머니의 ‘호출’이 왔다. 덴마크로 난민 이민을 떠났던 한 아프간 소년이 고국에 돌아와 서커스를 하려 하니 도와주라는 청이었다. 그 소년이 몸담고 있던 단체가 어린이들을 위한 유랑 미니 서커스(MMCC)'였고, 덴마크 출신 예술가 데이비드 메이슨(David Mason)이 그해 3월 국제 NGO로 설립해 아프가니스탄에서 첫 프로젝트를 시작하던 무렵이었다. 블룸은 그해 여름 내내 아프간 현지에서 아마추어 활동가들과 현지 어린이들에게 "코나 몸에 멍들지 않고 곤봉을 던지고 받는 법" 등을 가르치고 공연의 스토리라인 등을 짰다. 젤손을 처음 만난 것도 그해 그 현장이었다.

서커스 사회운동의 일환으로 2003년 출범한 국제 NGO '어린이를 위한 유랑 미니 서커스(MMCC)'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들은 서커스를 즐기고 또 저글링 등을 배워 직접 공연하기도 한다. 사진은 MMCC 프로그램에 참여한 아프간 아이들의 모습. mmccglobal.org

서커스 사회운동의 일환으로 2003년 출범한 국제 NGO '어린이를 위한 유랑 미니 서커스(MMCC)'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들은 서커스를 즐기고 또 저글링 등을 배워 직접 공연하기도 한다. 사진은 MMCC 프로그램에 참여한 아프간 아이들의 모습. mmccglobal.org

텍사스 출신인 젤손은 프린스턴대에서 발레를 전공한 직업 발레리나였다. 하지만 매주 40시간씩 춤 추는 일상에 지친 데다 자신의 기량이 세계적 수준에는 못 미친다고 판단한 그는 암벽등반으로 스트레스를 풀다가 서커스로 전향했다. 각 분야의 대가들을 찾아다니며 서커스 기본기를 익힌 그는 델라르테 피지컬 시어터를 졸업한 뒤 극단 ‘뉴욕 본드 시어터’에 입단해 발칸 분쟁지역과 아프간 등을 다니며 서커스 사회운동을 시작했다. 이내 연인이 된 둘은 아프간전쟁이 다시 격화하던 2010년 무렵까지 내리 7년 간 해마다 3개월씩 단원들과 함께 아프간 오지를 누볐고, 나머지 기간에는 광대 듀오 ‘아크로부포스’로서 자신들의 작품을 기획하고 공연했다.

그들은 세계 최대 공연예술 제전인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 2006년부터 무명 거리공연단의 일원으로 참가했다. 하지만 첫해 그들은 젤손의 표현에 따르면 “완전히 망했다(failed abysmally).”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돌아서는 관객이 있었을 정도였다. 이듬해에는 저글링과 곡예로 프로그램을 바꿨지만, 공연 도중 둘 다 허리를 다치는 사고를 겪었다. 체류비를 벌어야했던 가난한 광대 듀오는 "추운 에든버러에서 물풍선 던지기"를 시도해보기로 했다. '물풍선을 맞으면 적어도 외면은 안 하겠지' 하는 생각이었을지 모른다. 그렇게 둘은 우스꽝스러운 검투사 복장에, 못을 촘촘히 박은 바가지 투구와 방패를 들고 거리로 나섰다. 시민들과 함께 물풍선을 던지며 결투를 벌이는 그 코미디 무언극은 뜻밖에 큰 인기를 끌었다. 그들의 레퍼토리 중 하나로 지금까지 25개국에서 공연한 ‘워터밤(Waterbombs)- 코믹 물풍선 글래디에이터 쇼’가 그렇게 탄생했다. 젤손은 “좋은 광대가 되는 데는 무척 긴 시간이 걸린다. 처음 몇 년은 끔찍한 실패의 연속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듀오로서 기량을 연마해갔다”고 말했다.

거리와 극장 관객들의 외면으로 낙담한 아크로부포스는 아프간 오지에서 자신들의 연기 또는 그들이 기획한 공연에 열광하는 아이들을 보며, 그 웃음의 힘으로 다시 도전할 용기를 얻곤 했을 것이다. 젤손은 “본드스트리트 시어터 시절 나는 12개국에서 공연했다. 내 공연을 본 (난민 캠프)아이들은 공연이 끝난 뒤 보듬어달라며 달려오곤 했다”고 말했다.

아프간 공연을 기획하고 연출하며 그들은 웃음과 재미뿐 아니라 생존을 위한 교육적 내용도 담곤 했다. 지뢰를 피해 이동하는 법, 말라리아를 예방하는 법 등등. MMCC 창립자 메이슨은 지금까지 최소 430만 명의 아프간 아이들이 블룸이 만든 공연을 봤고 지금도 그의 스크립트로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세쓰는 자신이 뭘 할 줄 알고 우리가 뭘 하길 원하는지 정확히 알고 요구하는 사람이었다. 그게 우리에게 일종의 확신을 주었다. 우리가 제대로 된 사람을 만났다는 확신, 이 남자는 뭐가 옳은지 안다는 확신이었다”고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말했다.

블룸은 뉴스 등이 소개하는 아프가니스탄과 자신이 경험한 그곳은 사뭇 달랐다고 말했다. “그 나라는 삭막하면서도 아름답다. 미디어의 눈이 미치지 않는 지역에서 촬영한 아이들과 무슬림 남자들의 해맑은 미소, 당나귀 수레를 끌고 우리 공연을 보러 온 노인의 모습 등을 찍은 사진이 내겐 무척 많다”고, “그들은 우리를 집에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고 잠자리를 제공하곤 했다”고 말했다. 어쩌면 그것이 또 광대의 힘일 것이다.

2007년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국제공연페스티벌에서 결혼식을 올린 젤손(왼쪽)과 블룸. 젤손이 입은 풍선 드레스는 페스티벌에 참가한 일본 디자이너 리에 호사카이가 즉흥적으로 디자인해 만든 선물이었다. 크리스티나 젤손 사진, 워싱턴 포스트

2007년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국제공연페스티벌에서 결혼식을 올린 젤손(왼쪽)과 블룸. 젤손이 입은 풍선 드레스는 페스티벌에 참가한 일본 디자이너 리에 호사카이가 즉흥적으로 디자인해 만든 선물이었다. 크리스티나 젤손 사진, 워싱턴 포스트

물론 종교-문화적 차이 때문에 공연 내용을 바꿔야 할 때도 있었다. 어떤 곳에서는 여성 출연자를 남자로 대체해야 했고 또 어떤 동작은 무례한 행동으로 비칠 수 있어 피해야 했다. 아프간 아이들은 광대의 코가 왜 빨간지 의아해했다. 하지만 “넘어지고 자빠지는 슬랩스틱 코믹 연기는 지역과 문화, 연령대를 초월한 인류 보편의 웃음 코드”였다.

그렇게 유럽과 미국 공연장뿐 아니라 여러 나라 내전지역과 난민캠프 등을 떠돌던 둘은 2007년 말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국제공연문화페스티벌에 참가했다가 현지에서 크리스마스에 맞춰 결혼식을 올렸고, 이듬해 뉴욕 웨스트할렘의 서민 아파트를 얻어 정착했다. 뉴욕주 주택개발기금공사(HDFC)가 슬럼가 노후 아파트 등을 보수, 일정 소득 미만 서민들에게 장기 임대하거나 매각한 아파트였다. 그들의 아파트 벽에는 부부가 촬영한 아프간 아이들의 사진 등이 걸려 있었다고 한다. 공연 소품인 죽마를 타고 신나서 우쭐거리는 카불의 소녀 사진도 있었다. 아이들은 그렇게 몸의 학습을 통해 ‘피지컬 리터러시(physical literacy)' 즉 저마다의 새로운 언어를 익혔을 테고, 부부는 그 사진들을 보며 또 그들의 길을 찾곤 했을 것이다.

아크로부포스의 대표작 중 하나인 'Waterbombs!'의 한 장면. 공연 장소와 계절에 따라 의상과 음악 등이 바뀌긴 했지만, 물풍선 던지기라는 단순한 결투-놀이를 통해 그들은 세계 25개 국 관객들에게 웃음과 감동을 선사했다. acrobuffos.com

아크로부포스의 대표작 중 하나인 'Waterbombs!'의 한 장면. 공연 장소와 계절에 따라 의상과 음악 등이 바뀌긴 했지만, 물풍선 던지기라는 단순한 결투-놀이를 통해 그들은 세계 25개 국 관객들에게 웃음과 감동을 선사했다. acrobuffos.com

아크로부포스는 2012년 그들에게 세계적 명성을 안긴 역작 ‘Air Play’ 공연을 뉴욕의 한 극장(New Victory Theater)에서 초연했다. 헬륨 풍선을 이용한 느리고 몽환적인 저글링, 정교하게 배치된 송풍기 바람을 타고 나부끼는 다양한 색상의 실크 천, 오르락내리락 무대 위를 부유하는 우산들. 그 사이를 오가며 “아주 느슨한 몸짓 언어”로 남매의 우애 또는 우정을 전하는 아크로부포스의 애틋하고도 코믹한 1시간짜리 무언극. 세계적 키네틱 아티스트 대니얼 부르첼(Daniel Wurtzel)과 협업한 작품으로, 공연장 냉난방 공조기를 모두 끄고 인공의 바람과 중력, 관객 규모와 그들이 내뿜는 호흡과 체온, 정전기까지 감안해야 하는 무척 섬세하고 정교한 공연이었다.
‘공기의 힘에 대한 숨을 멎게 하는 오마주’라는 평을 듣는 그 작품을 그들은 ‘시각적인 시(visual poem)’, 시간의 이야기라 표현했다. 미술관에서 '전시'되던 부르첼의 작품을 극장 무대로 끌어올리면서, 어쩌면 그들은 툭하면 모래바람이 휘몰아치던 아프간 시골 간이무대의 시간을 떠올리기도 했을 것이다. 아크로부포스의 Air Play는 공연예술가들이 꿈의 무대로 꼽는 영국 로열페스티벌홀과 워싱턴 케네디센터를 비롯 거의 전세계 주요 극장 무대에 올랐다.

약 3년 전 블룸의 발 통증이 시작됐다. 40곳이 넘는 전문 병원을 찾아다녔지만 뚜렷한 병명을 찾지 못했고 증상은 점점 악화했다. 공연이 끝나면 얼음 찜질을 했지만 통증이 심해져 최근에는 물병보다 무거운 건 들 수도 없게 됐다. 지난해 12월 사우디아라비아 공연을 마친 뒤부턴 걸어서 비행기에도 오를 수 없을 만큼 나빠졌다고, 젤손은 말했다. 그들은 공연을 포함한 모든 활동을 중단했고, 재담꾼 궁정 광대의 혀나 다름없는 발을 잃은 블룸은 이후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서 보내야 했다.

알브레히트의 어릿광대는 “어린 아이들이란 잔인한 현실을 멀리하고 보다 천진한 세계를 영위할 권리를 가진다”고, “그건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는 절대적인 권리”이며 “어린 시절 친절한 세상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누구보다 그 말에 동조했을 블룸이지만, 그는 어릿광대가 말한 광대의 5계명은 충실히 따르지 못했던 듯하다.
그 어떤 것도 진지하게 여기지 말라, 농담을 하는 데 두려움을 가지지 말라, 수수께끼를 내는 데서 그치지 말고 너 자신이 수수께끼가 돼라, 광대 이상의 것이 되려 하지 말라. 마지막 계명은 “충성은 바치되 마음은 바치지 말라. (…) 이를 어기면 눈에서 눈물 마를 날이 없을 것이다”였다.

혼자 남겨진 아내 젤손은 말했다. “그는 함께 공연에 참여하고 싶게 만드는 따뜻한 눈빛으로 관객들에게 다가가곤 했어요.(…) 하늘에 떠 있는 풍선을 쫓을 때면 그와 덩달아 풍선을 잡고 싶게 만들었어요.”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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