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 퇴학시켜 달라고 학부모님들이 진정서를 올리려 했대요."
초등학생 지우의 엄마 상연은 어느 날 담임교사에게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듣는다. 지우에겐 지적장애가 있다. 특수학교를 보내는 게 좋겠다는 교사의 말에 생각해 보겠다며 교사와 헤어져 아이의 손을 잡은 상연. 차들이 쌩쌩 달리는 찻길로 자신도 모르게 아이 손을 잡고 한 발을 내딛는다. 경적 소리에 놀라 다시 인도로 올라간 상연은 아이 옆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린다.
지적장애 아들을 둔 류승연 작가의 책 '사양합니다. 동네바보형이라는 말'에 기반한 영화 '그녀에게'의 한 장면이다. 영화 중반까지 애써 울지 않았던 나는 이 대목에서 눈물이 흘렀다. 세상이 내 아이의 존재를 부정하는 순간, 세상을 버리고 싶은 절망감이 온몸에 퍼지는 경험을 장애인 부모라면 누구나 한 번은 한다. 나도 그랬었다.
노골적인 차별을 겪으면 차별에 대한 감각이 남달라진다. 누군가를 차별하는 공간에 가면 바뀐 공기와 분위기를 금세 느낀다.
얼마 전 아이슬란드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는 예능 '서진이네2'의 유튜브 영상 댓글에서 그런 분위기를 느꼈다. "아이슬란드에서 음식점 하는데 왜 손님이 죄다 중국 사람이죠?" 회를 거듭할수록 혐오 표현들이 노골적으로 변모했다. "중국인 안 보이게 하라" "중국인에게 밥해주러 갔느냐" 아이슬란드가 중국 관광객을 적극 유치하고 있어 그렇다는 설명이 댓글창에 달렸지만 혐오는 그치지 않았다. 간혹 중국에서 활동하는 연예인들을 향해 "중국에서 돌아오지 마라" "한국에 얼쩡대지 마라"라는 폭언을 날리는 발언도 심심찮게 커뮤니티 등에서 볼 수 있다. 더 문제는 이런 종류의 인종차별에 기인한 언어폭력이 커뮤니티를 거쳐 언론 기사로도 나온다는 점이다.
이런 차별은 공기처럼 일상화되어 있다. 한 음식점에 갔을 때의 일이다. 음식이 늦게 나오자 사장이 와서 "중국인 직원이 순서를 오인해서 그렇다"며 사과했다. 굳이 '중국인 직원'이라고 짚어서 말할 필요가 있었을까? 중국뿐 아니라 동남아, 아프리카 등 다양한 나라나 인종을 비하하는 단어가 일상적으로 쓰인다는 건 차별의 일상화를 뜻한다. 실제로 한국의 인종차별은 매우 심한 수준이다. 2023년 'US 뉴스앤드월드리포트'가 보고한 '인종차별적 국가 순위'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79개국 중 9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상위 10위에 든 유일한 국가다.
장애인이라고, 성소수자라고 배제당하거나 중국인이라고 댓글 폭력을 당하는 등 존재를 부정당하는 차별 경험은 건강을 악화시킨다. 은근한 차별도 몸에 해롭다. 서울대 김승섭 교수는 차별을 당하고도 "괜찮아"라며 삼키는 사람들의 건강이 더 좋지 않았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이런 글을 쓰는 나조차도 차별하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없다. 누구라도 그렇다. 영화 '그녀에게'에서 상연은 이렇게 회상한다. "나도 그랬었어. 예전에 혜화역에서 휠체어 탄 장애인을 봤는데 내가 바이러스처럼 피했었어." 인종차별을 연구하는 하버드대 데이비드 윌리엄스 교수는 "한 번도 누군가를 차별한 적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차별하기 가장 최적화되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정 "난 누구를 차별한 적이 없는데"라고 생각된다면, 이번 추석 연휴에 영화 '그녀에게'를 한번 보실 것을 권한다. 내 안의 또 다른 '차별하는 나'를 돌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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