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앞에서 발길 돌리는 환자들
정부 "409곳 중 407곳 정상 운영"
의료계 "문만 여는 건 의미 없어"
"병상 포화로 진료가 불가능합니다."
15일 오전 10시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응급진료센터 앞에 '진료 불가'를 알리는 안내문이 설치됐다. 오전부터 응급실 입구를 막아선 안내문에, 아픈 몸을 이끌고 온 환자 10여 명은 그 앞에서 발만 동동 굴러야했다.
고령의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을 찾은 유모(41)씨의 얼굴엔 근심이 가득했다. 췌장암 투병 중인 어머니가 3일째 39도의 고열에 시달리자, 평소 내원하던 병원에선 당장 응급실을 방문하라고 권고했지만 진료를 받기는 쉽지 않았다. 유씨는 "일단 기다리라고는 하는데 위급 상황이라 불안하다"고 털어놨다.
의정 갈등으로 인한 필수 의료 인력 공백이 심화되면서 추석 연휴 기간 혼란이 지속되고 있다. 연휴 특성 상 응급 환자는 1.5~3배 가량 증가하는데 진료가 가능한 응급실 자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문을 연 응급실도 이미 포화 상태라 환자들은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구급차 수배도 어려워"
병원 문 앞에 선 환자들은 초조함을 숨기지 못했다. 왼쪽 팔꿈치가 부러져 신촌세브란스 병원을 방문한 영국인 닉(44)씨는 "응급실에 들어가는 덴 성공했지만 의료 대란으로 골절상을 봐줄 의사가 없다며 다른 병원을 찾아가라 들었다"고 말했다.
분주한 의료진 표정도 어두웠다. 신촌세브란스 병원 소속 간호사 A씨는 대기하는 환자들에게 "응급실 못 오니까 추석에 아프지 마세요"라며 당부했다.
다른 병원도 상황은 비슷했다. 이날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응급실을 찾은 정모(54)씨는 담도암을 앓고 있는 어머니의 열이 40도까지 치솟아 급하게 병원을 찾았지만, 응급실은커녕 구급차를 구하는 것부터 애를 먹었다고 토로했다. 정씨는 "1시간 넘게 구급차를 기다려 병원에 왔는데 또 몇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며 "응급실 이용이 어렵단 얘기를 듣고 연휴 기간 아프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이게 내 일이 될 줄 몰랐다"고 말했다.
2곳 제외 정상 운영 발표... 현장은 '글쎄'
보건복지부는 13일 연휴 대비 응급의료체계 유지 특별 대책을 발표하며, 전국 대다수의 응급실이 '정상 운영'한다고 강조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전국 409곳 응급실 중 407곳이 매일 24시간 운영된다. 정윤순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연휴 기간에도 정부는 지자체와 함께 준비한 대책을 차질 없이 시행하고 개별 의료기관과의 소통도 긴밀히 유지하며 응급의료 상황을 면밀하게 모니터링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의료계 입장은 다소 다르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가 최근 전문의 50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수도권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응답자의 97%, 비수도권 근무 응답자의 94%는 추석 연휴를 '위기' 또는 '심각한 위기'라고 봤다. 응급의학의사회는 "연휴 동안 일평균 약 1만 명의 환자는 응급진료를 받지 못할 수 있다"고 전했다.
현장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강보승 한양대 구리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배후진료 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응급실 문을 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며 "전공의가 없고, 응급실 및 배후진료 인력도 모두 줄어 정상 진료라고 볼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형민 응급의학의사회장도 "응급실을 평소처럼 운영한다고 한들 연휴 기간 환자가 급증하는 것을 고려하면 전혀 충분하지 않다"며 "응급실 진료가 정상적으로 진행되는지 본격적인 추석 연휴가 시작되는 오늘부터 잘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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