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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응급실 르포] 중증 심근경색도 "진료 불가능"…췌장암 환자도 36시간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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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응급실 르포] 중증 심근경색도 "진료 불가능"…췌장암 환자도 36시간 대기

입력
2024.09.17 16:38
수정
2024.09.17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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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당일 응급실 병상 ‘포화’..."환자 못 받아"
"의식 없는 장모님 자차로 모시고 왔다"
구급대원 응급실 찾는 '전화 뺑뺑이'도 계속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앞에 '응급실 진료 지연'을 안내하는 게시판이 세워져 있다. 이곳에는 "생명이 위급한 응급환자 외에 일반진료는 제한되거나 장시간 지연될 수 있다"는 문구가 적혀있다. 문지수 기자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앞에 '응급실 진료 지연'을 안내하는 게시판이 세워져 있다. 이곳에는 "생명이 위급한 응급환자 외에 일반진료는 제한되거나 장시간 지연될 수 있다"는 문구가 적혀있다. 문지수 기자

"심근경색인 남편에게도 병상을 내주지 않으니까… 이러다 큰일이 나는 건 아닌지 겁부터 나더라고요."

추석 당일인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만난 박모(65)씨가 퀭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15일 오후 박씨의 남편은 극심한 가슴 통증을 호소했다. 곧바로 자택 인근의 상급종합병원을 방문했지만 의사를 만나지 못했다. 응급 상황임에도 병원에선 "의료 인력이 부족해 환자를 받을 수 없다"며 박씨 남편을 돌려보냈다. 집을 떠난 지 1시간여 만에 박씨의 남편은 겨우 서울대병원 응급실 문턱을 넘었고, 기도삽관과 경피적관상동맥중재술을 받은 뒤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박씨는 "중증인데도 진료 거부를 당할 줄을 몰랐다"면서 "추석 연휴에 가족 모두가 가슴을 졸였다"고 말했다.

의정 갈등으로 인한 의료인력 공백이 심화하고 명절 연휴에 응급 환자가 몰리면서 연휴 기간 응급 진료가 곳곳에서 지연되고 있다. 진료 가능한 병원을 찾기도 어려울 뿐더러 겨우 병원으로 이송한다 해도 응급 처치를 받고 입원하기까지 몇 시간씩 걸린다. 이에 환자와 보호자들은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병상·인력 부족한 응급실은 '빨간불'

17일 오후 3시 기준 종합상황판에 따르면 서울 종로구 소재의 서울대병원과 강북삼성병원 응급실 일반병동에는 8시간 이상 대기를 의미하는 빨간 불이 들어왔다. 종합상황판 캡쳐

17일 오후 3시 기준 종합상황판에 따르면 서울 종로구 소재의 서울대병원과 강북삼성병원 응급실 일반병동에는 8시간 이상 대기를 의미하는 빨간 불이 들어왔다. 종합상황판 캡쳐

17일 중앙응급의료센터 '응급실 종합상황판'(오후 3시 기준)에 따르면, 서울대병원 응급실 일반 병동에는 '8시간 이상 대기'를 안내하는 빨간불이 켜졌다. 음압 병동과 일반 격리 병동 역시 가득 차 있었다. 안과나 이비인후과 등의 응급 진료는 아예 불가능했다.

인근 대형병원들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강북삼성병원 역시 응급의학과 전문의 1명이 진료 중이어서 사전 협의되지 않은 이송 및 전원이 막혀 있었다. 내과 병상은 과포화로 입원이 어려웠다. 적십자병원에도 남은 병상이 없었다.

36시간을 기다리고 나서야 응급실 병상에 누운 암환자도 있었다. 경기 의정부에 사는 안유정(42)씨는 15일 췌장암 환자인 어머니가 호흡 곤란을 겪자 병원 응급실 네 군데를 전전하다 2시간 만에 서울대병원에 도착했다. 하지만 돌봐줄 의료 인력과 병상이 부족해 곧바로 응급실 침상을 받을 수 없었다. 고열 증세를 보인 안씨의 어머니는 수액과 수혈 처치만 받았고, 이틀 만인 17일 오전 6시쯤 혈소판이 급격히 떨어지는 등 병세가 악화되고 나서야 병상을 지정받았다.

지방에 거주하는 환자들은 명절 연휴 정체가 심한 고속도로를 뚫고 응급실을 찾아 서울로 이동했다. 세종시에 사는 최경훈(36)씨는 16일 오전 백혈병을 앓는 아버지가 고열 증세를 보이자 약 160㎞를 달려 서울대병원에 도착했다. 먼저 찾았던 관내 종합병원에선 "더 큰 병원에 가야할 것 같다"면서 최씨의 아버지를 돌려보냈다. 응급 상황인 데다 내원 이력이 있어 서울대병원에서는 진료 거부를 당하진 않았지만, 처치실로 이동하기까진 몇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최씨의 가슴은 타들어갔다.

구급차 '뺑뺑이'에... 자차 이송 나서기도

17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앞에서 응급환자를 이송한 119 구급대원이 의료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문지수 기자

17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앞에서 응급환자를 이송한 119 구급대원이 의료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문지수 기자

받아 주는 병원을 찾기 까지 환자와 보호자가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는 병원 간 이동, 전화 뺑뺑이도 여전했다. 17일 오전 서울대병원 앞에서 만난 소방 구급대원 A씨는 "(응급 환자를 받아 줄 병원을 찾기까지) 최소 병원 5~6군데에는 전화를 돌린다"면서 "병원에서 '그 과는 진료가 안 된다’는 이유로 거절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A씨는 "응급 환자를 받는 병원을 구하더라도 간단한 치료만 하고 2차 병원으로 돌려 보내는 경우가 많다"면서 환자 이송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구급차로 가면 오히려 진료 거부를 당할 가능성이 크다는 정보를 들은 시민들은 자차를 이용해 응급실을 방문하기도 했다.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만난 B(51)씨는 "119 구급대원들이 병원에 연락하면 (진료를) 거절한다고 들었다"면서 "구급차로 가면 안 받아준다니까 직접 운전해 의식 없는 장모님을 모시고 왔다"고 말했다.

정부는 추석 연휴를 앞둔 13일 응급의료 체계 유지 특별대책을 발표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연휴 기간 전국 응급실 409곳 중 407곳이 24시간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의료 현장에서 환자와 보호자들은 여전히 고통받고 있었다. 추석 당일인 17일 문을 연 전국 병·의원은 전날(3,254곳) 대비 절반 가량 줄어든 1,785곳에 불과했다.

김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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