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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낮 없는 북한 대남 확성기 소음에 가축들도 신음...사산에 산란율 '뚝'[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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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낮 없는 북한 대남 확성기 소음에 가축들도 신음...사산에 산란율 '뚝'[르포]

입력
2024.09.19 16:28
수정
2024.09.19 16:43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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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강화도 접경지 가보니...소름 끼치는 소리 들려
주민들 "대북 방송 중단하든, 방음벽 세우든 해야"


19일 오전 황해북도 개풍군과 마주 보고 있는 인천 강화군 송해면 당산리의 고려천도공원 주차장. 짐승이 울부짖는 소리와 "우웅" 하는 전파음, 사이렌과 북·장구 소리 등을 뒤섞은 듯한 기괴한 소리가 바다 건너 들렸다. 공원 입구에서 제초기로 풀을 깎고, 도로에서 차량들이 빠르게 질주했지만 북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묻혔다.

이상한 소리는 고려천도공원에서 수백m 떨어진 당산리 마을에서도 들렸다. 당산리 마을회관 앞에서 만난 요양보호사 장모(57)씨는 "차로 10분 정도 거리에 집이 있는데, 거기까지 밤낮없이 소리가 들린다"며 "무서워서 밤에 잘 나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른 주민도 "소음이 낮보다 밤에 더 크게 들린다"며 "새벽 3시까지 이어져 밤을 꼬박 새운 적도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전방 지역에 재설치한 대남 확성기에서 나오는 것으로 알려진 소음은 주민들뿐만 아니라 축산농가에서 기르는 가축들에게도 피해를 입히고 있다. 채갑숙(68) 당산리 부녀회장은 "뭐라 표현하기도 어려운 소음 때문에 주민들이 정신병 걸릴 것 같다고 호소하고 있다"며 "가축들도 스트레스를 받는지 농가에서 키우는 사슴과 양이 사산을 하거나 닭들이 알을 적게 낳는 등의 일이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두 달째 북한 대남 확성기 소음에 시달리고 있는 인천 강화군 양사면 철산리에서 19일 바라본 황해북도 개풍군 모습. 이환직 기자

두 달째 북한 대남 확성기 소음에 시달리고 있는 인천 강화군 양사면 철산리에서 19일 바라본 황해북도 개풍군 모습. 이환직 기자

인천시에 따르면 소음 피해 지역은 강화군 송해면·양사면·교동면 일대로, 3개 면 전체 인구 8,800명 가운데 52%인 4,600명이 직접적 소음 피해를 입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 중에는 수면제가 없으면 잠을 못 자거나 어린 자녀들을 다른 곳에서 지내게 하는 주민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 대남 확성기 소음은 작게는 전화 벨소리에서 크게는 지하철 수준으로, 지난 7월 말부터 시작됐다. 우리 군이 지난 7월 21일부터 북한의 대남 쓰레기 풍선 살포에 대응해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는데, 이를 방해할 목적으로 소음을 송출하고 있다는 것이 군 당국의 설명이다.

문제는 북한의 대남 확성기 소음 송출을 막을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주민들은 전날 송해면을 찾은 유정복 인천시장에게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 △방음벽 설치 등을 요구했으나 유 시장은 정부에 주민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마련해줄 것을 요청하겠다는 원론적 답변만 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날 유 시장이 방문하는 자리에 참석했던 한 주민은 본보와 통화에서 "주민들이 다른 것 바라는 것은 없으니 방음벽을 세우거나 대북 방송을 중단하라고 했지만 (시장이) 즉답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당장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다. 안효철(66) 당산리 이장은 "일곱 살짜리 손녀가 대통령 할아버지에게 편지라도 쓰자고 하더라"며 "뭐라도 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인천시 관계자는 "피해 상황을 행정안전부와 국방부에 알리는 동시에 주민 피해 최소화 방안 등 대책을 마련해 줄 것을 요청한 상태"라고 말했다.

두 달째 북한 대남 확성기 소음에 시달리고 있는 인천 강화군 송해면 당산리에서 19일 제초 작업을 하는 농민 뒤로 황해북도 개풍군 지역이 보이고 있다. 이환직 기자

두 달째 북한 대남 확성기 소음에 시달리고 있는 인천 강화군 송해면 당산리에서 19일 제초 작업을 하는 농민 뒤로 황해북도 개풍군 지역이 보이고 있다. 이환직 기자


이환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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