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개봉 독립 영화 '해야 할 일'
조선회사 인사팀 막내팀 시선
정리해고 안팎 일들 정밀 묘사
강준희(장성범)는 조선회사 한양중공업 직원이다. 입사한 지 4년을 맞은 대리다. 일 처리가 야무진 그는 막 인사팀 발령을 받았다. 준희는 인사팀에 오자마자 정리해고 작업을 하게 된다. 대학 시절 사회운동에 관심이 컸던 준희로서는 마뜩잖은 일이다. 하지만 노래방에서 회식 중에도 업무를 보던 태생적 '일잘러' 준희는 탁월한 업무 능력을 발휘한다.
정리해고, 의사결정부터 집행까지
영화는 정리해고에 대한 의사 결정부터 집행이 이뤄지는 최종 단계까지를 꼼꼼히 들여다본다. 정리해고는 회사 오너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진행된다. 오너의 경영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묻는 과정은 빠진다. 위에서 내려온 지시를 거역할 임직원은 없다. 팀 막내인 준희는 말 한마디 제대로 꺼내지 못한다. 인사팀장 정규훈(김도영) 부장은 "회사의 미래를 위해서"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수많은 사람의 삶을 뒤흔들 정리해고는 일사천리로 단행된다.
정리해고해야 할 인원 150명. 인사팀은 숫자놀음으로 대상자를 선정한다. 대상자 각자는 수치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사연들을 지녔다. 어떤 이는 회사 사정 때문인지 보복 인사의 결과인지 전문성과 무관한 곳에 배치돼 실적이 신통치 않다. 또 어떤 이는 업무 능력이 남다르나 근속연수에 발목을 잡힌다.
영화가 바라보는 시선은 입체적이다. 사측과 노동자 측으로 단순화해 정리해고를 바라보지 않는다. 노동자와 노동자 사이 다른 입장을 조명하고 사측 내에서의 갈등을 살피기도 한다. 한양중공업 내부 사무직과 생산직은 같은 노조 소속임에도 정리해고에 대한 생각이 다르다. 회사는 노-노 간 입장 차이를 파고든다. 생산직 노조 간부들에게 생산 분야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언질을 줘 정리해고의 파장을 최소화한다. 사무직은 대졸이냐 고졸이냐로, 인사팀은 회사 방침을 곧이곧대로 수행하냐를 두고 갈등을 겪는다.
생계가 달린 상황 속 회사 사람들은 각자 자기 위치에서 '해야 할 일'을 한다. 준희는 존경하던 상사와 따르던 선배 사이에서 잔인한 선택을 한다. 하지만 직장 동료들을 내보내는 일은 예측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간다. 종국에 남은 자들은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을 곱씹으며 출근하고, 쫓겨난 자는 고통스럽게 새 삶을 모색한다.
노동자만의 시선을 뛰어넘은 시야
박홍준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박 감독은 한 조선회사 인사팀에서 4년 반 정도를 일한 경험이 있다. 그는 "조선회사 근무 당시 보고 듣고 느꼈던 것들을 조금 극화시켜 영화를 만들게 됐다"고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밝혔다. 박 감독은 "(제가 근무했던) 2016년 이후 무렵 국내 조선업이 되게 힘들어 구조조정이 많았다"며 "제가 회사 안에서 해야 할 일을 하면서 과연 올바른 삶을 살고 있는가 회의감이 컸다"고 돌아보기도 했다.
정리해고 관련 국내 영화는 노동자의 눈으로만 서술되곤 했다. '해야 할 일'은 인사팀 직원이라는 내부자의 눈을 통해 좀 더 넓은 시야로 바라본다. 회사 의사결정 과정의 부조리, 사내 정치의 영향, 고졸자에 대한 부당한 처우, 노조 내부 세력 다툼 등이 세밀하게 그려지는 이유다.
지난해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배우상(장성범), 제49회 서울독립영화제 장편경쟁 최우수작품상, 독립스타상(김도영) 등을 수상했다. 25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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