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안위, 삼성 직원 피폭 조사결과 발표
뚜껑-안전장치 연결 배선 임의로 조작
누가·언제·왜 배선 바꿨는지 오리무중
관리자 패싱, 정비 매뉴얼은 유명무실
과태료 1,650만원 수준... 논란 불가피
지난 5월 경기 용인시 삼성전자 기흥사업장에서 직원들이 방사선에 피폭된 사건을 조사해온 원자력안전당국이 26일 최종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방사선(X선) 발생기를 누군가 임의로 조작해 안전장치가 작동하지 않게 됐고, 이 사실을 몰랐던 정비작업자들이 정비를 하다가 손에 피폭 피해를 입은 것이다. 해당 기기를 언제, 누가 조작했는지는 끝내 밝혀내지 못했다. 당국은 삼성전자의 안전 관리가 총체적으로 부실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작동 안 된 안전장치... 명백한 '인재'
사고가 난 기기는 반도체 제작용 웨이퍼(기판)에 도포된 화학물질을 X선을 이용해 분석하는 용도다. 일종의 뚜껑인 차폐체(셔터베이스)와 안전장치(인터록) 스위치가 연결돼 있어, 어떤 이유에서든 뚜껑을 열면 X선이 나오지 않게 설계돼 있다. 설계대로 제작, 판매, 작동하면 안전성이 충분히 확보되기 때문에 허가 아닌 신고 대상이다.
이날 서울 중구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 열린 제201회 회의에서 원안위가 위원들에게 보고한 내용에 따르면 사고는 5월 27일, 고장 난 방사선 발생기를 수리하려던 한 정비작업자가 차폐체를 열면서 벌어졌다. 이때 인터록이 작동하지 않아 작업자 2명이 X선에 그대로 노출됐다. 둘 다 피부(손)에 대한 등가선량(X선이 인체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이 안전기준인 선량한도(연간 0.5시버트(㏜))를 초과했고, 차폐체 안에 손을 집어넣은 A씨의 등가선량은 무려 94㏜로 평가됐다. 통상 1회에 0.1밀리시버트(m㏜, 1Sv=1,000mSv) 피폭이 이뤄지는 의료용 흉부 X선 촬영과 비교하면 A씨 손은 9만4,000배 강한 X선을 맞은 것이다.
차폐체를 열었을 때 인터록이 작동하지 않은 건 배선 오류 때문이었다. 원안위는 배선 오류가 생긴 원인을 인재로 추정했다. 사건 발생 전 인터록을 교체하고 재장착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차폐체와 인터록 사이에 연결이 잘 안 되는 문제가 생겼고, 차폐체가 닫힌 상태에서도 X선이 나오지 않자 누군가 배선을 바꿔 X선이 계속 방출되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 사업장에는 같은 기기가 총 8대 있었는데, 그중 3대에서 같은 문제가 발견됐다. 이 기기에는 X선 방출을 알리는 경고등이 설치돼 있다. 하지만 2015년쯤 부품 수급 문제로 LED 방식으로 교체되면서 작고 희미해져, 사고 당시 작업자들은 X선이 방출된 이후 14분이 지나서야 상황을 인지했다고 한다.
더 심각한 건 인터록을 교체하고 배선을 바꾸는 등의 정비 기록이 부실하게 관리된 탓에 누가, 언제, 어떤 이유에서 배선을 변경했는지 명확히 확인이 안 된다는 점이다. 이 사업장에서는 작업자가 작업 전 공용 기록장에 내용을 간략히 적고 부서 내에 공유하는 식으로 정비 업무를 해왔다고 한다. 2001년 도입된 해당 기기는 2022년부터 사고 당시까지 15건의 정비 이력이 남아 있는데, 기록장에선 사고 관련 내용을 찾을 수 없었고, 최근 3년간 정비 경험이 있는 사업장·판매자 관계자들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도 유의미한 답변을 듣지 못했다고 원안위는 설명했다. 원안위는 이에 대해 수사 의뢰를 검토 중이다.
방사선안전관리자 두고도 피폭 막지 못해
원안위는 삼성전자 측의 관리감독 체계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현행법상 사업장에서 방사선 기기를 사용하려면 안전관리자를 두고, 관리감독 권한을 줘야 한다. 방사선안전관리자는 작업자 교육, 정비 검토·감독 등을 맡아야 하는데, 삼성전자 기흥사업장에서는 관리자 개입 없이 사업장 자체 절차서에 따라 유지보수가 이뤄졌다. 게다가 사고 당시 실시한 작업은 절차서에 담겨 있지도 않아, 안전관리자의 추가 조치가 반드시 필요했다는 게 원안위 설명이다. 그런데도 "정비작업자의 자체 판단에 의해 작업하게 했다"는 것이다.
안전관리자가 없는 건 아니었다. 2명이 있었는데, 694대나 되는 방사선 기기(허가 1대, 신고 693대)를 관리하느라 작업 현장에서의 실질적 관리감독보다 서류작업에 집중하는 상황이었다고 했다. 즉 방사선안전관리 인력이 충분하지 않았고 실질적 권한도 없던 탓에 안전장치가 임의로 조작되고도 기록이 남지 않았고, 이어진 정비 역시 안전을 담보하지 못한 채 실시됐던 것이다.
기본적인 사용설명서나 안전수칙 역시 지켜지지 않았다. 설명서에는 점검 작업 전 X선을 차단하라고 돼 있고, 기기 표면에는 '개조할 땐 안전관리자의 허락을 얻을 것', '인터록 임의 해제 금지' 등의 안전수칙이 붙어 있다.
피해 증상 심각한데, 솜방망이 제재
원안위는 방사선안전관리자가 실질적 관리감독을 하도록 개선할 것을 삼성전자 기흥사업장에 요구했다. 아울러 원안위 자체적으로 △신고 대상 방사선 기기 안전관리 △안전관리자 교육훈련 개선 △30대 이상 기기 보유 기관 실태점검을 추진하기로 했다. 향후 안전관리자가 제 역할을 하는지 점검한 뒤 결과에 따라 규제 강화도 고려하겠다는 입장이다.
삼성전자가 물게 될 과태료는 2,000만 원이 채 안 된다. 피폭 사고에 대해 1,050만 원(인터록 조작·방사선 장해 방지조치 미흡), 이어진 특별점검에서 적발된 피폭 관리·교육 부적합에 대해 600만 원 정도가 부과될 전망이다. 피해 직원의 손가락이 괴사하고 절단 가능성까지 제기된 마당에 솜방망이 조치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사업장이 안전관리자에게 실질적 관리감독 책임을 부여하지 않은 게 사고의 근본 원인이었는데, 이에 대해선 별다른 제재가 없다. 원안위에 따르면 관련법상 사업장의 의무가 안전관리자를 선임하는 데 그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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