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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의 심장, 고귀한 가족들"…낯 뜨거운 '강남 아파트' 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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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의 심장, 고귀한 가족들"…낯 뜨거운 '강남 아파트' 찬가

입력
2024.09.25 13:30
수정
2024.09.25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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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포 래미안에 새긴 '영원한 파라다이스'
"해 같은 인재" "별 같은 선남선녀" 비유
노골적인 아파트 찬양에 "민망하다" 반응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 퍼스티지 아파트 표지석에 새긴 구성달 시인의 작품 ‘영원한 파라다이스 – 래미안 퍼스티지’.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 퍼스티지 아파트 표지석에 새긴 구성달 시인의 작품 ‘영원한 파라다이스 – 래미안 퍼스티지’.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한 채에 수십억 원을 웃도는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 단지 '찬양가'가 온라인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25일 엑스(X) 등 여러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 퍼스티지 아파트 표지석에 새긴 한 시인의 작품 '영원한 파라다이스-래미안 퍼스티지'가 공유됐다.

"서울은 나라 얼굴 반포는 그 눈동자"로 시작하는 이 시는 "우면산 정기받고 한강의 서기 어려 장엄한 우리의 궁궐 퍼스티지 솟았다"며 아파트를 '궁궐'에 빗댔다.

이어 입주민들을 "해 같은 인재들", "별 같은 선남선녀", "겨레의 심장 되시는 고귀하신 가족들"이라고 찬양했다. 조선시대 여섯 대 임금의 행적을 노래한 서사시 '용비어천가'를 연상시키는 문구다. 끝으로 시는 "반듯한 삶을 위해 따뜻한 내 정성을 / 씨 뿌려 가꾸면서 고운 꿈 키운 낙원 / 웅지를 품은 이들의 꽃숲속의 이상향"이라고 아파트를 칭찬하며 마무리됐다.

래미안 퍼스티지는 지하철 9호선 신반포역, 3·7·9호선 고속터미널역과 붙어 있는 초역세권으로 강남에서도 핵심 지역으로 꼽히는 반포동에 위치해 주거 선호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7월엔 국민평형(전용 84㎡)이 43억 원에 거래됐을 정도다. '퍼스티지'라는 아파트 이름부터 first(일등)와 prestige(품격)를 합성해 만들었다.

"북한 선전 문구 같아"

서울 강동구 고덕 그라시움 아파트단지 표지석에 새긴 입주 기념 시조. 온라인 커뮤니티

서울 강동구 고덕 그라시움 아파트단지 표지석에 새긴 입주 기념 시조. 온라인 커뮤니티

강동구 고덕 그라시움의 입주 기념 시조도 입길에 올랐다. '고덕 그라시움 입주에 부쳐'라는 제목의 이 시조는 "살고 싶은 아파트 / 살만한 가치가 있는 아파트/ 살아서 진정 행복한 아파트"라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이어 "공들여 설계한 명품 아파트 견본주택 개관하니 / 비 오는 휴일에도 인산인해 성황을 이루었고 / 분양 일순위 높은 청약률에 완판 계약까지 / 천우신조로 순조롭게 잘 마무리되었다"라고 분양 과정을 설명했다.

시 두 편을 접한 누리꾼들은 노골적인 찬양에 민망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들은 "하필 튼튼한 돌에 새겨놔서 미래에 발굴되면 인류 문화 수준 (평가를) 떨어트릴 것 같다", "북한의 선전 문구 같다"고 비판했다. 한 누리꾼은 "한강을 넓고 깊고 또 맑게 만드신 이여"로 시작하는 서정주 시인의 '전두환 56회 생일 축시'를 인용하며 "비슷한 느낌"이라고 지적했다.

시대상을 반영해 '아파트 찬가'라는 한국 현대문학의 새 장르가 등장한 것이라는 자조 섞인 반응도 나왔다. 누리꾼들은 "아파트 시조 이상으로 진정성 있는 한국 콘텐츠는 존재하지 않는다", "구한말 셀프 공덕비가 이런 느낌이었겠구나"라고 평가했다.




장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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