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림청, 27일 849km 중 1~4구간 47km 개통
제1구간 가봤더니...산과 바다 들 만나는 숲길
맨동쪽 55구간과 달리 휴펜션 민가 카페 쉼터
소멸 위기 농산어촌 경제 활성화에 도움 기대
55개 구간 849km 길이 동서트레일의 첫 번째 구간(안면도식물원)을 걷다 보면 눈 앞에 펼쳐지는 염전.
25일 오후 충남 태안의 안면도수목원. 선선해진 날씨에 가족, 동호회 모임 단위로 산책에 나선 이들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하지만 그들이 걷는 그 길이 동해까지 닿는 ‘동서트레일’의 제1구간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경기 안산에서 친구들과 놀러왔다는 함미숙(60)씨는 “이 길이 동해까지 연결된다는 게 사실이냐"며 “더 나이가 들기 전 완주할 수 있도록 빨리 완공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국의 산티아고 순례길’로 불리는 동서트레일의 서측 구간이 대거 개통된다. 한반도 남쪽 허리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849km 55개 구간 중 제1~4구간 총 57km 숲길이다. 27일 1~4구간의 정식 개통을 앞두고 제1구간(16km)의 일부를 미리 다녀왔다. 작년 6월 처음으로 개통한 55번 경북 울진 구간(20km), 지난 6월에 개통한 47번 봉화 구간(15km)에 이어 3개월 만에 새로 뚫린 숲길이다.
27일 4개 구간이 추가로 개통해 동서트레일 55개 구간 중 총 6개 구간이 완성됐다. 산림청은 연말까지 21개를 완공, 개통하고 2026년까지 나머지 구간의 숲길 다듬는 작업을 마치고 2027년 개통한다는 계획이다. 동서가 단선으로 연결되던 당초 계획과 달리 충북 구간에서 북쪽으로 휘어 동쪽으로 가는 숲길이 추가됐다. 이에 따라 공사가 마무리되는 2026년 말 '55개 구간, 849km'의 동서트레일 규모는 커질 수 있다. 보다 안전한 숲길 조성, 더 다양한 생태, 환경, 문화 자원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그래픽 송정근 기자
수목원에서 시작하는 1구간 첫머리는 휠체어가 다닐 수도 있는 숲길이다. 경사가 완만해 동서트레일 전체에서도 난도가 가장 낮은 구간이라고 할 수 있다. 숲길을 조성한 한국등산·트레킹지원센터의 박은혜 숲길관리실장은 “당초 계획은 서해를 마주한 바닷가에서 숲길이 시작하는 것이었지만 안면송을 감상할 수 있도록 계획을 바꾸었다"고 설명했다. 2km가량의 수목원 산책로가 끝나자 거대한 공사장이 나타났다. 내년 완공을 목표로 진행되는 ‘안면도 지방정원’ 조성 공사 현장(21ha)이었다. 충남도와 태안군은 지역 주민은 물론 동서트레일을 찾는 이들이 이곳에서 산과 바다, 들을 동시에 경험하며 쉬어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서해를 따라 걷게 될 동서트레일 제1~4구간이 지나는 안면도 모습. 수목원 산책로와 숲길, 들판(염전), 마을 골목을 지나면 걷게 되는 곳이다. 산림청 제공
휴대폰이 잘 터지는 것도, 펜션 등 중간중간 민가가 많은 것도 험준했던 55번 구간과는 확연히 달랐다. 1~4구간 숲길을 조성하는 데 8억 원의 민간자금이 투입됐다지만 ‘55번 구간(우리금융길)’처럼 후원기업명을 노골적으로 노출하지는 않았다. 구간 안내판 맨 아래에 작은 글씨로 표기돼 있다. 산림청 관계자는 “본래의 숲길 이름을 놔두고 돈을 낸 기업 명칭을 이용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 나와 이를 감안했다”고 설명했다.
안면소나무숲과 들판의 염전, 대나무숲, 편백림을 지나 만난 펜션 마을에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했다. 승언리의 한 민박집 사장은 “길이 잘 나면 왔던 사람들이 그냥 지나가기만 가지 않을까, 쓰레기만 놓고 가지 않을까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라며 “그래도 사람들이 더 많이 찾을 수 있다니 기대도 된다”고 말했다.
숲길을 벗어나면 꽃지해수욕장을 만나게 된다. 한동안 그늘이 없는 해안 구간이지만 카페와 상점들이 즐비해 쉬어갈 수 있다.
동서트레일은 늘어나는 국내 장거리 트레일 수요 대응과 함께 숲의 생태·환경적, 문화적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게 목적이다. 소멸 위기의 농산어촌을 지나는 만큼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하는 인체의 혈관에도 비유된다. 산림청 관계자는 “구간 중간 중간에 쉼터(야영장)를 설치해 많은 이들이 머물다 갈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더 많은 이들이 찾을 수 있도록 전체 55개 구간에 대해 ‘스탬프 투어’도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1~4구간 야영장은 16면 규모로 태안군 남면 별주부마을에 조성된다. 심덕용 태안군 환경산림과장은 "산림청과 협의해 야영 편의시설뿐만 아니라, 소금 고구마 양파 마늘 같은 지역 특산물 판매점 등 지역경제 활성화 시설도 함께 들어설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정원 공사 현장을 지나 만나는 국유림 내 트레일. 동서트레일 조성 과정에서 새로 만들어졌다. 기존 숲길을 다듬어 잇는 게 기본 원칙이지만, 숲길과 숲길, 숲길과 마을 길을 연결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새로 길을 만들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 때에도 벌채는 최소한으로 이뤄진다. 제1구간에선 기획재정부 소유 국유림에 길이 800m의 길이 새로 났는데, ‘이곳이 벌채해서 만든 그 길’이라는 설명이 없었다면 알아채기 힘들 정도로 자연스럽다.
충남 태안 안면도를 대표하는 수종, 안면송. 고려시대부터 아무나 베어가지 못하도록 특별 관리한 소나무다. 조선시대 왕실에 필요한 가구나 건물을 지을 때 이용됐다고 한다. 충남도는 1978년 안면도 소나무 숲을 '소나무유전자원보호림'으로 지정했고, 2019년엔 '국가산림문화자산'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동서트레일은 이 안면송 숲에서 시작해 경북 울진 금강송 숲으로 연결된다.
동서트레일 이정표. 숲길 조성에 기여한 기업이 거의 노출되지 않았다. 작년 6월, 처음 개통한 55번 구간과 다른 점 중 하일다.
동서트레일 제1구간 안내도. 동서트레일은 충남 세종 대전 충북 경북 5개 광역 시도, 21개 시군, 87개 읍·면·동을 지난다. 55구간 중간중간에는 트레일을 걷는 이들이 쉬어갈 수 있는 거점 마을 90개와 야영장도 43곳에 조성된다. 산티아고 순례길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트레일을 경험한 이들은 공통적으로 지적한다. "트레일은 최소 100km 이상의 장거리를 걷는 게 목표인 만큼 텐트 야영, 민박(게스트 하우스) 시설이 뒷받침돼야 하고, 배낭을 날라다 주는 서비스가 더해지면 금상첨화다. 해당 지역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로컬식당, 특산물 및 기념품 가게, 관광지 등 해당 지역과 협업하면 새로운 K 관광 콘텐츠가 충분히 될 수 있다."
연관기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