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의 인재와 기술독점이 문제,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이 경제 이끌어야 성장
노키아 붕괴는 좋은 사례 "노키아 망해서 핀란드 스타트업 생태계 더 성장"
"한국은 재벌 위주의 경제가 가장 큰 문제입니다. 재벌이 시장을 장악해 비효율성이 크죠. 중소기업과 신생기업(스타트업)이 성장할 수 있는 정책을 펼쳐야 합니다."
핀란드의 경영전략 컨설팅업체 레달의 창립자이자 지한파 유럽인으로 통하는 퍼 스테니우스 대표는 재벌 중심의 한국 경제를 문제로 짚었다. 핀란드 헬싱키 공대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하고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에서 전기공학 박사와 경제학 석사를 마친 그는 미국 벤처투자사(VC) 스트라토스벤처스에서 벤처기업 투자를 담당하다가 리에키라는 벤처기업 대표를 맡았다. 이후 미국 컨설팅업체 액센추어와 맥킨지에서 경영전략을 담당하다가 사업 아이디어를 얻어 2010년 레달을 창업했다.
주한유럽상공회의소 부회장도 맡고 있는 그는 핀란드어 영어 독일어 스웨덴어를 구사하며 한국 여성과 결혼해 우리말도 약간 할 줄 안다. 2012년 서울에 아시아본부를 설치해 자주 한국을 찾는 그를 최근 서울 광화문 사무실에서 만나 국내 스타트업 발전을 위한 제언을 들었다.
전략을 아웃소싱 해준다
레달은 독특한 컨설팅 업체다. 이 업체는 기업의 가장 민감한 부분인 경영전략을 수립해준다. "변호사인 친구가 외주(아웃소싱)를 받아 기업의 법률자문팀을 운영하는 것을 보고 경영전략팀을 아웃소싱 해주는 아이디어를 얻어 창업했어요."
하지만 기업의 내밀한 경영전략을 외부에 맡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레달은 특별한 원칙을 고수한다. "한 가지 산업 분야에서 한 기업만 고객사로 받아요. 다른 컨설팅 업체는 같은 산업에서 다양한 경쟁업체들을 다루다 보니 이해충돌 문제가 발생해요. 한 분야의 한 기업만 고집해 10년 이상 된 고객사가 많죠."
경영전략팀을 외부에 맡기는 방법은 성장단계에 맞춰 규모를 유연하게 조절하며 비용을 아낄 수 있어 유럽의 큰 기업들이 선호한다. "경영전략 수립을 위한 방법론을 고객사와 공유하며 새로 진급한 임원이나 경력직 교육까지 담당해요."
이해충돌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해 스타트업 투자도 하지 않는다. 심지어 직원들의 고객사 관련 투자도 금지한다. "직접 투자하면 투자한 곳에 집중해요. 같은 이유로 직원들에게도 고객사 관련 투자를 하지 못하게 하고 이해충돌 문제를 중요하게 교육하죠."
덕분에 레달의 고객사는 국내에만 약 100개에 이른다. "기업명을 밝힐 수 없으나 대기업, 스타트업 등 다양해요. 한국 기업이 매출 비중의 약 15%를 차지하죠."
재벌의 인재와 기술 독점이 문제
그는 한국경제의 성장을 위한 과제로 재벌 중심의 경제를 꼽았다. 그는 우리말로 '재벌'이라고 콕 찍어 얘기했다. 그가 말한 재벌 중심의 경제란 대기업이 인재와 기술을 독점하는 것이다. "기술 기반의 중소기업이 국가 경제를 이끄는 독일, 핀란드와 달리 재벌 중심의 한국 경제는 큰 문제가 될 수 있어요.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이 경제를 이끌어야 우수한 인재가 들어오고 기술이 발달하며 경제가 발전해요. 그런데 대기업은 인재들이 빠져나갈까 봐 스타트업을 키우려 하지 않아요."
재벌 중심의 한국 경제를 문제로 본 것은 스테니우스 대표뿐 만이 아니다. 최근 월스트리저널 등 외신들도 한국 기업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이 소액주주들과 이해관계가 다른 재벌 때문에 제대로 되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재벌 중심의 경제는 소득불균형의 양극화도 심화시킨다는 지적이다. "한국 경제는 전체 기업 중 10% 불과한 대기업 직원들이 소득을 가장 많이 가져가고 90%인 중소기업과 스타트업 직원은 소득이 적어 분배의 균형이 무너졌어요."
그런 차원에서 그는 세계 1위 휴대폰 업체였던 핀란드의 노키아 붕괴를 오히려 좋은 사례로 들었다. "노키아가 망해서 많은 인재들이 스타트업이나 VC로 이동해 핀란드 스타트업 성장에 밑거름이 됐어요. 덕분에 세계적 모바일 게임업체 슈퍼셀 등이 성장했죠. 노키아 같은 대기업이 망했을 때 파생 효과가 커요. 재벌은 망해도 인재와 기술은 없어지지 않아요."
스타트업 창업자의 경력 중요
스타트업과 관련해 그는 중요한 요소로 창업자의 이력을 꼽았다. "해외 VC들은 기업 근무 경험 등 스타트업 창업자의 이력을 아주 중요하게 봐요. 이런 경험이 없거나 대학생이 창업한 스타트업은 산업과 시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수 있어요."
또 정부 주도의 스타트업 투자는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주도한 벤처투자 프로그램은 실패한 경우도 많아요. 모태펀드처럼 정부가 자본을 투입하면 이것만 노리는 전문업체가 따로 등장해요. 핀란드도 1990년대 정부에서 벤처 투자를 주도했으나 실패했죠. 지금 핀란드는 대학, 민간 등에서 각종 스타트업 행사와 투자 등을 주도해요. 정부는 핀란드와 이스라엘처럼 민간자본이 스타트업에 흘러가도록 연결만 하면 돼요."
더불어 정부나 스타트업 모두 세계 시장을 겨냥하라고 조언했다. "스타트업은 국내 이용자만 보지 말고 해외 이용자의 요구까지 파악 해야죠. 정부도 스타트업을 육성할 때 한국기업이라고 생각하면 안되고 세계 시장을 봐야 해요. 다만 한국은 해외 창업가들이 들어와 창업하기 좋은 환경은 아니죠. 대기업이 시장을 장악해 스타트업이 안착하기 어렵고 언어 장벽이 커요. 정부에서 해외 창업자들이 쉽게 다가올 수 있는 제도를 만들고 영어로 행정을 지원하는 것이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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