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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백종원 권력 내려놓고 ②셰프들 계급장 떼고 경쟁...'흑백요리사'가 당신을 홀린다

입력
2024.10.03 04:30
수정
2024.10.03 10:03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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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흥행 돌풍 분석


백종원(왼쪽)이 요리 경연 프로그램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에서 안대를 쓰고 도전자의 음식을 맛보고 있다. 오른쪽은 김선태 충주시청 주무관이 안대로 눈을 가린 채 충주 사과를 먹고 있는 모습. '흑백 공무원'이란 제목으로 시 유튜브 채널에 올린 '흑백요리사' 패러디 영상이다. 넷플릭스 제공, 충주시 유튜브 영상 캡처

백종원(왼쪽)이 요리 경연 프로그램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에서 안대를 쓰고 도전자의 음식을 맛보고 있다. 오른쪽은 김선태 충주시청 주무관이 안대로 눈을 가린 채 충주 사과를 먹고 있는 모습. '흑백 공무원'이란 제목으로 시 유튜브 채널에 올린 '흑백요리사' 패러디 영상이다. 넷플릭스 제공, 충주시 유튜브 영상 캡처

"들기름에 간장 맛이 섞이니까 아이디어가 좋아서…"(외식사업가 백종원)

"아이디어는 너무 좋았는데 이게 잘못 만들어진 아이스크림이에요."(미슐랭 3스타 식당 셰프 안성재)

백종원과 안성재는 넷플릭스 요리 경연 프로그램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에서 간장을 주재료로 만든 도전자의 음식을 두고 이렇게 정반대의 심사평을 냈다.

요리 경연 예능프로그램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에서 유명 셰프들과 '무명' 셰프들이 각각 '백수저'와 '흑수저' 팀으로 나뉘어 경연을 준비하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요리 경연 예능프로그램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에서 유명 셰프들과 '무명' 셰프들이 각각 '백수저'와 '흑수저' 팀으로 나뉘어 경연을 준비하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아니, 젊은 사람이 융통성 없이" 백종원의 농담

두 사람의 투표 결과는 1 대 1. 도전자들을 내보낸 뒤 안성재가 심사 기준으로 "요리의 완성도"를 고집하자 백종원은 결국 그의 뜻을 따랐다. 백종원은 '한식 대첩' '집밥 백선생' '장사 천재 백선생' 시리즈 등 요리 예능프로그램에서 늘 절대적 권력자로 그려졌다. 대중적 요리에 이력이 난 백종원을 고급 요리, 즉 파인 다이닝의 선두 주자인 안성재가 심사 곳곳에서 견제했다. 카메라가 꺼지면 백종원이 안성재를 향해 "아니, 젊은 사람이 융통성이 없어"라고 농담했을 정도다. "백종원에 의한, 백종원을 중심으로 꾸려졌던 그간 요리 경연과 예능에서 벗어나 새로운 신·구 요리 심사 권력의 대립을 보여주면서 '흑백요리사'는 식상함을 지웠다"(김교석 방송 평론가).

예능프로그램 '집밥 백선생'에서 백종원의 모습. tvN 제공

예능프로그램 '집밥 백선생'에서 백종원의 모습. tvN 제공


백종원이 요리 경연 프로그램 '한식대첩'에서 도전자의 음식을 맛보고 심사평을 하고 있다. 올리브TV 영상 캡처

백종원이 요리 경연 프로그램 '한식대첩'에서 도전자의 음식을 맛보고 심사평을 하고 있다. 올리브TV 영상 캡처

기성 요리 권력이 흔들리면서 경연에선 진풍경이 속출한다. 유명 셰프들은 다른 유명 셰프들이 단체 요리 과정에서 보여준 문제점들을 지켜보며 "저러지 말아야지"라고 스스로를 돌아본다. "유명 셰프들이 기성 요리 세력의 문제점을 보고 반성하고 달라지는 게 '흑백요리사'의 묘미"(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이기도 하다. 20여 년 경력 중식 여성 요리사의 간판으로 통하는 정지선 셰프도 "(팀전이 끝난 뒤) 우리끼리 반성 많이 했다"고 고백했다.

요리 경연 프로그램 '흑백요리사'에서 백종원(왼쪽)과 안성재 심사위원이 도전자의 음식을 두고 심사평을 주고받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요리 경연 프로그램 '흑백요리사'에서 백종원(왼쪽)과 안성재 심사위원이 도전자의 음식을 두고 심사평을 주고받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미친 짓" 우려에 안대 씌운 속사정

요리 경연을 둘러싼 다양한 권력 변화를 보여준 '흑백요리사'의 인기가 뜨겁다. 지난달 17일 공개된 '흑백요리사'는 같은 달 셋째 주와 넷째 주(16~29일) 연속으로 비영어 TV 시리즈 부문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온라인엔 "채소의 익힘 정도를 굉장히 중요시한다" "재료가 이븐(even·고루 익음)하게 구워졌다" 등 안성재의 심사평을 따라 한 패러디물이 쏟아졌다. 일부 출연 셰프들의 식당은 요즘 예약 개시 1분 만에 속속 마감된다. 프로그램 흥행 돌풍 여파다.

'흑백요리사'는 미국 요리 대결 프로그램 '아이언 셰프'(2010) 우승자인 에드워드 리와 국내 요리 경연 프로그램 '마스터 셰프 코리아'(2013) 우승자인 최강록 등 스타 셰프들과 이름은 덜 알려졌지만 실력만큼은 남다른 셰프 총 100명이 경쟁하는 프로그램이다. 유명 셰프는 '백수저' 그룹으로, 무명 셰프는 '흑수저' 그룹으로 나뉘지만 '계급장' 떼고 맞붙는 게 이 요리 경연의 특징이다.

흑과 백이란 계급 구도를 깔아 공개 전엔 우려를 샀지만, 시청자들은 되레 공정한 평가를 받을 수 있게 한 시도에 주목했다. 백종원과 안성재는 셰프들이 일대일로 경연할 때 안대를 쓰고 음식을 맛본다. 음식을 보는 즐거움도 중요한데 눈을 가린 채 심사를 하다니. 백종원도 처음엔 "미친 짓"이라며 당황했다. '흑백요리사' 제작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심사위원의 반감에도 제작진이 안대를 씌운 속사정은 따로 있다. '흑백요리사'엔 백종원, 안성재와 친분이 있는 셰프들이 나온다. 심사위원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일대일 대결 때 불공정 시비를 최소화하려 한 게 제작진의 '안대 심사' 연출 의도였다. 다소 무리수를 둔 시도였지만, 당연히 질 줄 알았던 무명 셰프, 즉 언더독의 반란을 낳고 시청자를 열광하게 한 배경이다.

'흑백요리사'를 본 해외 시청자 반응. 만화책에 영감받아 조리법을 연구하고 음식을 만든 도전자에 놀라는 후기다.

'흑백요리사'를 본 해외 시청자 반응. 만화책에 영감받아 조리법을 연구하고 음식을 만든 도전자에 놀라는 후기다.


'흑백요리사'를 본 해외 시청자 반응. 사회관계망서비스 캡처

'흑백요리사'를 본 해외 시청자 반응. 사회관계망서비스 캡처


미국 요리 경연 예능프로그램 '아이언 셰프'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미국 요리 경연 예능프로그램 '아이언 셰프'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요리 경연 예능 '마스터 셰프 코리아' 시즌2에서 심사위원이 도전자의 음식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있다. 올리브TV 영상 캡처

요리 경연 예능 '마스터 셰프 코리아' 시즌2에서 심사위원이 도전자의 음식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있다. 올리브TV 영상 캡처


스웨덴, 이스라엘서 한식 예능을?

'흑백요리사'는 스웨덴, 뉴칼레도니아, 이스라엘 등에서도 넷플릭스 톱10에 진입했다. 미국과 일본 등 전통적인 한류 소비국이 아닌 나라에서도 관심을 받은 건 한국 음식에 대한 외국 시청자들의 관심이 커진 영향으로 해석된다. 세계 영화·드라마 비평 사이트인 IMDB엔 "흑과 백의 대결이란 콘셉트가 독특하다" "미국 요리 경연 프로그램과 비교해 역동적이면서 다양성이 두드러진다" 등의 후기가 올라왔다. "'헬스 키친'이나 '아이언 셰프' 등 서방의 요리 서바이벌이 도전자에 대한 존중보다는 '강자끼리의 한판 대결'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거친 욕설로 긴장감을 높인다면, '흑백요리사'엔 도전자에 대한 심사위원의 독설이 배제되고 응원하며 보게 되는 게 차별점"(성상민 대중문화 평론가)으로 꼽혔다. '흑백요리사'엔 심사위원들이 도전자의 음식을 쓰레기통에 버리거나 "못 먹겠다"며 음식을 뱉는 무례한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흑백요리사'는 맛 하나는 최고라고 평가받는 재야의 고수 흑수저 셰프들이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 셰프 백수저들에게 도전장을 내밀며 치열하게 맞붙는 100인의 요리 계급 전쟁이다. 넷플릭스 제공

'흑백요리사'는 맛 하나는 최고라고 평가받는 재야의 고수 흑수저 셰프들이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 셰프 백수저들에게 도전장을 내밀며 치열하게 맞붙는 100인의 요리 계급 전쟁이다. 넷플릭스 제공


"내가 거기 왜 나가?" 출연 거절도

김학민 '흑백요리사' PD는 "'집 앞 김치찌개 맛집 요리사와 파인 다이닝 요리사 중 누가 진짜 음식 잘하는 요리사일까'란 호기심에서 이 프로그램 기획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제작 과정은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일부 유명 셰프들은 "내가 거기 왜 나가?"라며 출연을 고사했다. 백종원도 처음엔 출연을 망설였다. 심사는 부담됐고 "100명의 셰프가 출연하는 요리 경연 세트장이 과연 잘 만들어질 수 있을까?"란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 우려를 깨기 위해 제작진은 첫 번째 경연 요리 세트 제작에만 30일을 쏟아부었다. 330㎡(1,000평)의 대형 세트에 싱크대와 상·하수도 및 가스관 설비를 하는 게 관건이었다. 생업으로 식당을 운영하는 셰프들이 많아 대결은 가게가 많이 쉬는 일요일과 월요일에만 진행됐다. '흑백요리사'에 출연한 한 셰프는 "제작진이 '그냥 편하게 칼만 들고 오세요'라고 하고 어떤 걸 만든다는 얘기를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다"며 "출연 요리사들끼리 카카오톡 단톡방에서 '이거 하지 않을까'란 예상만 하며 전전긍긍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양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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