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중 수교 75주년인데 냉기류 오히려 강해져
대사관엔 김정은 사진만 가득... 단둥도 잠잠
김정은, 축전서 "존경하는 시진핑" 표현 생략
"전쟁 지속·중국 경제난에 냉기류 강하게 형성"
북한과 중국의 수교 75주년을 맞은 6일 오전 중국 베이징 차오양구의 북한대사관 앞. 정문 오른편에 위치한 게시판엔 최근 1~2년 사이 있었던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현지 시찰 사진이 가득했다. 지난 1월 딸 주애와 함께한 광천닭공장(양계장) 시찰, 8월 공격용무인기 타격 시험 참관 등 25장의 사진이 전시돼 있었지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함께한 사진은 단 한 장도 걸리지 않았다.
지난해 7월 전승절(6·25전쟁 정전협정체결일) 70주년과 '조중(북중) 우호의 해'가 선포됐던 올해 초엔 북중 정상이 손을 맞잡은 사진으로 게시판이 도배됐다. 그런데 정작 수교기념일 당일엔 양국관계의 냉랭함만 확인시킨 셈이다.
올해 들어 '냉담 기류'를 이어온 북중관계가 수교 75주년이란 '호재'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분기점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AP통신은 "북러 간 연대 강화 흐름이 '반(反)서방 북중러 3각 협력' 확대로 비쳐지는 데 대한 중국의 거부감이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경제 회복을 위해 미국 등 서방과의 긴장 관리에 한창인 중국 입장에서 대(對)러시아 군사 지원에 나선 북한과 적당히 거리를 둬야 한다고 판단했다는 분석이다.
북미 정상 간 대화가 한창이던 2018~2019년 북중은 무려 5차례의 정상회담을 열며 북중관계의 전략적 특수성을 과시했다. 반면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북한의 대러 군사 지원, 중국 경제난 심화 등 새로운 상황이 연이어 펼쳐지며 북중관계가 5년 만에 차가워진 것이다.
북중관계 이상 징후는 올해 내내 포착됐다. 지난 5월 한중일 정상회의 공동성명에서 '한반도 비핵화'가 거론되자, 북한은 외무성 담화를 내고 "난폭한 내정간섭"이라고 반발했다. 중국이 참여한 성명을 겨냥한 북한의 노골적 비난은 이례적이었다. 또 지난달 평양에서 열린 북한 정권 수립 기념행사에 왕야쥔 주북한 중국대사가 '휴가'를 이유로 불참했고, 7월 평양과 베이징에서 각각 열린 북중우호조약 기념식 양국 참석 인사 급도 동시에 낮아졌다. 중국은 2018년 랴오닝성 다롄에 설치한 북중 정상회담 기념 양국 정상 발자국 동판 조형물도 돌연 제거한 것으로 최근 파악됐다.
6일 양국 정상이 주고받은 수교 75주년 축전도 심상치 않다. 양국은 "전략적 소통 강화" 필요성을 재확인했지만 전반적인 우호 톤은 후퇴했다. 수교 70주년 당시 김 위원장은 "존경하는 (시진핑) 총서기 동지"라고 지칭한 축전을 보냈던 반면 이번 축전에선 '존경하는'이란 수식어를 뺐다. 시 주석도 5년 전엔 "조중의 전통적 우의는 더 단단해지고 사람들의 마음에 더욱 깊이 들어갔다"는 화려한 수사를 동원했지만 이번엔 형식적인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이에 따라 축전 '분량' 역시 북측은 809자에서 497자로, 중국 측은 435자(중국어 기준)에서 309자로 각각 줄었다.
'신(新)압록강대교 조기 개통' 예상도 빗나갔다. 중국 랴오닝성 단둥시 소식통은 "(개통) 소문만 무성했지 해관(세관) 설치 등 실제 움직임은 전무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북한 신의주와 중국 단둥을 잇는 신압록강대교는 2014년 완공됐지만 10년째 개통식이 열리지 않고 있다. '수교 75주년 개통'으로 서먹한 분위기를 단번에 뒤집을 수 있다는 관측이 최근 지속적으로 나왔지만 이변은 없었던 셈이다.
북한은 코로나19 사태가 사실상 종료된 2023년 이후에도 신규 노동자를 중국에 파견하지 못하고 있다. 베이징의 한 외교 소식통은 "노동자 파견을 통해 중국에서 외화를 벌어 온 북한으로선 중국의 최근 처사가 못마땅할 것"이라며 "러시아와의 연대 과시는 '중국이 북한을 외면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북한의 중국을 향한 일종의 항의 메시지도 있다"고 진단했다.
북중 양국은 지난 4월 '조중 우호의 해' 개막식을 평양에서 열었다. 중국 측에선 권력 서열 3위 자오러지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이 대표로 참석했다. 자연스럽게 75주년 당일 베이징에서 북측 고위급 인사가 참여한 가운데 폐막식 행사가 열릴 것으로 예상됐지만 6일 현재까지 별다른 소식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베이징의 외교 소식통은 "양국이 미국 대선(11월) 결과를 본 뒤 북중관계의 톤을 재설정하고 나설 수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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