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영국 윈스턴 처칠의 ‘제2차 세계대전’ 회고록을 보면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 독일의 흉계와 기만을 끊임없이 지적하고, 증오심을 토로하는 것과 달리 독일 국민에 대한 평가가 후한 데 놀랐다. ‘불사조같이 재기할 것’이라는 등 옥쇄도 각오하지 않을 수 없었던 대전쟁을 지휘했던 그의 방대한 회고록에서 독일인에 대한 부정적 언급을 찾아볼 수 없다. 1차 세계대전 후 독일의 전쟁책임을 묻는 베르사유조약에 대해선 황당무계할 정도로 많은 배상금을 부과할 만큼 독소적이고 어리석다고 독설을 쏟는다. 속내가 어떠하든 전쟁 책임과 관련한 세련된 분리 의도가 아닐까 싶다. 씨를 말리는 식의 전후 처리에 대한 전승국의 반성과 독일 국민에 대한 감정 관리이기도 하다. 물론 독일은 철저한 과거 청산과 치유 과정을 통해 패전 트라우마를 벗고 유럽을 선도하는 국가로 거듭났다.
남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건 일본이 냉전에 이어 신냉전 시대를 맞아 책임과 역할을 키우는데 대한 주변국의 불안은 무엇보다 제국주의 시절 과거사에 대한 부정에 있을 것이다. 지난 8월 일본의 국권침탈이 불법· 무효인지 정부 입장을 밝혀 달라는 광복회 요청이 논란을 일으켰지만, 정작 일본은 불법성을 인정한 적이 없다. 1965년 체결한 한일협정 2조는 "1910년 8월 22일(한일강제병합)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 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고 돼 있다. 한일 정부의 해석 차이를 초래한 '무효' 의미를 따지기 앞서 ‘직시’하기보다는 책임을 ‘회피’하는 일본의 문제를 그대로 드러낸다. 따지고 보면 미국의 간여로 한일 국교정상화 회담이 시작된 1951년 이후 1,200차례 크고 작은 회담을 통해서도 매듭짓지 못하고 14년을 끌었던 이유도 식민지배를 둘러싼 성격 규정 갈등이 근저에 깔려 있다.
우리의 뿌리 깊은 반일 감정은 단순히 일제강점의 자존심 문제만 아니라 오랜 시간 패전과 승전을 거듭해온 독일, 프랑스와 달리 자력의 카타르시스를 이루지 못한 데 기인한다고 보는 전문가가 적지 않다. 여기에 일본의 편협함이 더해지는 바에야 머지않은 시기에 사그라들길 바라기는 어렵다. 일본과의 관계 개선 못지않게 과거사에 대한 비판 의식이 높은 까닭이다. 반일감정이 상수인 한일관계가 일본의 역사수정주의나 혐한과 맞물려 문재인 정부와 아베 정부 시기처럼 퇴행을 빚는 건 손쉽다.
'안보는 매파' ‘과거사에 전향적’이라는 이시바 시게루 총리를 보면 한일 과거사 문제에 대해 이전과 다른 ‘전략적 선택’을 하게 되는 시나리오도 생각 못할 바는 아니겠다. 하지만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나라가 다르면 국익도 다르다"는 그의 말에서 한계가 느껴진다. ‘국방을 평생의 업’이라고 했다는 이시바 총리의 지향점은 국제 사회의 책임 있는 정상국가 실현에 있는 듯하다. 미중, 미러 갈등과 대북 위협이라는 신냉전 구도에 힘입은 바 크겠지만 안보기본법 제정, 전수방위와 비핵3원칙, 미일지위협정 재검토 등은 아베 시절을 뛰어넘는다.
이시바 총리의 안보관은 일본의 과거사 인식 변화와 함께 가지 않으면 주변국 저항을 부를 소지가 크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 시절 윤석열 정부의 대일관계 진전을 위한 호의에도 불구하고 강제징용 해법에서 별 진전 노력을 보이지 않아 한국 내에선 일방적 선의에 기댔다는 비판을 받는다. 과거사나 독도, 여기에 대륙붕 공동개발 문제까지 지뢰밭 현안에 이시바 총리가 어떤 입장을 취할지 중요하다. 한일관계는 깨지기 쉽고, 일방의 호의로 진전될 수도 없다. 어느 외교관계보다 정교한 관리가 요구되는 걸 이시바 총리가 잘 이해하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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