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의대 학사 정상화 비상대책' 논란
내년 복귀 전제 '조건부 휴학' 승인 방침에
"학생 권리 침해" "복귀 안 하면 처분 불분명"
"근본 대책 없이 임시방편으로 갈등 심화해"
의대 증원에 반발해 9개월째 수업을 거부 중인 의대생들에게 내년 복귀를 조건으로 휴학을 허용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정부 비상대책을 두고 의학교육 현장의 반발과 우려가 크다. 의대생 복귀라는 목표를 이뤄낼 수 있는 대책인지 의심스럽고, 설령 휴학생들이 복귀하더라도 내년 신입생과 동시 수업을 들으며 빚어질 수업 파행의 수습책도 미흡하다는 것이다. 정부가 의정 갈등에 땜질 처방으로 대응하면서 의학교육 질 저하를 조장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의대생 휴학에 학칙 또 바꾸나
7일 교육부는 전국 40개 의대에 ‘의대 학사 정상화를 위한 비상대책’ 세부 시행안이 담긴 공문을 전달했다. 공문에는 전날 발표한 비상대책에 따라 각 대학에 의대생 복귀 시한, 휴학 승인 시 학생 복귀에 따른 2024학년도 및 2025학년도 교육과정 운영 계획, 2025학년도 신입생 학습권 보호 방안 등을 요구하는 내용이 담겼다.
정부는 휴학 승인 요건과 절차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각 대학이 교육 여건 등을 고려해 자율적으로 의대생 복귀 시한을 정한 뒤 휴학 신청 학생들과 면담을 통해 복귀 의사를 확인해야 한다”며 “기존에 제출한 휴학원을 정정하고 증빙 서류로 보강해 동맹휴학 의사가 없다는 점을 확인한 경우에만 휴학이 승인된다”고 밝혔다.
의대생들은 정부의 ‘조건부 휴학 승인’ 방침은 학칙 등에 근거 규정이 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교육부가 의대생은 2학기를 초과해 연속 휴학할 수 없도록 제한하는 규정을 학칙에 명시하도록 지침을 내린 점도 비판 대상이다. 의대생 대표 단체인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는 이날 내부 공지를 통해 “학생들이 적법한 절차를 거쳐 휴학계를 제출한 지 반년이 넘었으나, 대학들은 원칙을 무시하면서 휴학을 승인하지 않았고 교육부는 정당한 휴학 의사를 인정하지 않는 폭압을 보여주고 있다”며 “(조건부 휴학 승인은) 학생 권리에 대한 침해이자 강요·협박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이번 대책으로 내년 의대생 복귀를 유도할 수 있을지 회의적인 분위기도 감지된다. 의대가 있는 한 사립대 부총장은 “일반 휴학 사유에 해당한다고 보고 의대생에 한해 내년 복귀 전제, 동맹 휴학 불참 등이 명시된 서약서를 준비하고 있다”며 “하지만 복귀하지 않을 경우에는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아직 불분명하다”고 말했다.
최악의 의대 교육 파행 상황으로 상정됐던 '복학생·신입생 7,500명 동시 수업'을 정부가 기정사실화하고 있다는 의심도 제기된다. 2025학년도 의대 교육과정 운영과 관련한 고등교육법 시행령과 학칙 개정안이 비상대책에 담긴 걸 겨냥한 것으로, 교육부는 각 대학에 정원을 초과해 최대한 가르칠 수 있는 학생 수를 정해 학칙에 반영하도록 요청하는 한편 의대 교육과정을 6년에서 5년으로 단축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최창민 전국의대교수 비상대책위원장은 “의학 발전에 따라 의대 교육과정에서 가르칠 내용은 갈수록 늘고 있다”며 “그런데도 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은 학생들을 진급시키고, 교육과정을 단축해주면 부실 교육이 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땜질 처방 의대 교육 부실 우려만 키워
정부가 어떻게든 의대생을 복귀시키겠다면서도 근본적 대책이 아닌 실효성 없는 미봉책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교육부는 지난 7월 ‘의대 학사 탄력 운영 가이드라인’을 발표해 의대 교육과정을 학기제에서 학년제로 바꿔 학년 말까지는 수업을 이수할 수 있도록 말미를 줬다. 또 수업에 출석하지 않아 F학점을 받아도 유급되지 않도록 배려했다. 의대생들을 2학기에는 복귀시키려는 의도였지만 2학기 등록률은 3.4%에 그쳤다. 증원된 32개 의대 등에 2030년까지 5년간 약 5조 원을 투입하는 ‘의학교육 여건 개선 투자 방안’이 지난 9월 발표된 뒤에도 의대생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증원된 의대들의 무더기 인증 탈락 우려에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 평가·인증 규정을 완화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교육부 조치도 교육계의 반발만 샀다. 한국의학교육협의회는 이날 성명에서 “무리한 의대 정원 대규모 증원 이후 발생이 우려되는 의학교육의 부실화를 덮고 넘어가겠다는 정부의 위험한 발상”이라며 “우리는 의학교육의 질 저하를 막는 최후의 보루인 의평원의 무력화 의도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반발했다.
박평재 고려대 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장은 “교육부가 근본적인 대책 없이 의대 교육의 근간을 흔드는 위험한 임시방편적 대책만 내놓으면서 오히려 현장의 분노가 더 커지고 있다”며 “정부가 의정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논의의 장을 마련해 양질의 의사들을 배출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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