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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주자들의 '피해자 서사'

입력
2024.10.11 18:3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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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의 경쟁력 중 하나인 '정치 서사'
박정희 '산업화', YS·DJ '민주화' 대표적
팬덤이 만든 왜곡된 서사에 현혹 말아야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윤석열(왼쪽 사진부터) 대통령과 차기 대선주자로 꼽히는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한국일보 자료사진

윤석열(왼쪽 사진부터) 대통령과 차기 대선주자로 꼽히는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2년 여름으로 기억한다. 야당이었던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에선 대선주자 선출을 노리는 예비후보들의 경쟁이 치열했다. 친노 진영의 지지를 확보한 문재인이 가장 유력했지만, 김두관을 주목하는 이들이 의외로 많았다. '노무현의 친구'로 참여정부의 공과 논란이 불가피한 문재인보다 이장 출신으로 군수·장관·도지사까지 오른 인생 역정을 갖춘 김두관이 표의 확장성이 크다는 이유였다. 여당인 새누리당(현 국민의힘)의 사실상 대선주자였던 '대통령의 딸' 박근혜와 대립각을 살릴 수 있다는 고려도 작용했다. 그러나 당내 토론회에서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대선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정치인의 인생 스토리 또는 서사는 아직도 선거에서 후보의 주요 경쟁력 중 하나로 꼽힌다. 최근 거대 양당인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중도 확보 경쟁을 펼치다 보니 표방하는 이념과 정책 차이가 이전만큼 확연하지 않기 때문이다. 극심한 정치 불신으로 인해 고만고만한 정치 경험보다 극적 서사가 대중의 관심을 유발하는 탓도 크다. 대선주자급 정치인일수록 자신의 스토리와 서사를 어떻게 구축할지를 고민하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역대 대통령들은 나름의 거대 서사를 갖고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근대화·산업화 서사', 김영삼(YS)·김대중(DJ) 대통령의 '민주화 서사'가 대표적이다. YS는 1969년 박정희의 3선 개헌에 반대하다 자택 인근에서 초산 테러를 당했고, 1980년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가택연금을 당했다. 1971년 대선에서 박정희와 겨뤘던 DJ는 1973년 일본에서 중앙정보부 요원들에 의해 납치돼 수장될 뻔했고, 1980년 신군부에 의해 사형 선고를 받기도 했다. 집권 후 서사를 만들어낸 박정희와 달리, YS와 DJ는 민주화 과정의 '고난의 서사'를 바탕으로 대통령에 오를 수 있었다.

산업화·민주화 이후 거대 서사가 통용되지 않는 시기에 등장한 윤석열 대통령은 이례적 케이스다. 검사 시절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과 정권을 가리지 않는 수사로 자신만의 스토리를 구축했다. 그러나 정치에 대한 이해와 실력 검증을 건너뛴 채 집권한 결과는 모두가 목격하고 있는 대로다. 잇단 국정 난맥뿐 아니라 일개 선거 브로커에게 공개 협박을 당하는 모습에 참담함을 느낄 뿐이다. 김건희 여사 의혹에 한없이 무력한 윤 대통령은 '공정'이란 정치자산마저 잃고 말았다.

차기 대선주자들은 윤 대통령을 대척점으로 한 서사를 구축하고 있다. 야권 지지층에선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의 자녀 입시 비리 혐의를 '윤석열 검찰'에 의한 핍박의 증거로 여긴다. 이른바 '피해자 서사'를 쌓아가고 있다.

여권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윤 대통령과의 반복된 충돌로 피해자 서사를 축적하고 있다. 한 대표는 10일 김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과 관련해 "검찰은 국민이 납득할 만한 결과를 내놓아야 한다"며 사실상 기소 의견을 밝혔다. 그동안의 소극적 차별화에서 벗어나 윤 대통령의 핍박에도 굴하지 않는 모습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그러나 지난해 말까지 검찰총장의 수사지휘권을 회복시키지 않아 사실상 사건을 뭉갰던 '윤 정부 2인자'로서 민망한 주장이다.

이들의 우격다짐식의 피해자 서사는 정치 팬덤을 자양분으로 삼는다. 윤 대통령에 대한 증오나 반감을 기반으로 지지하는 정치인에게 무조건적으로 역경의 서사를 부여하고 있다. 이러한 팬덤이 빚어낸 서사는 '정치 후퇴'와 같은 부작용을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정치권에 난무하는 서사에 더 이상 현혹되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김회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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