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간 5551건 연기 신청... 승인율 99%
용혜인 의원 "법적 요건 안 지켜도 허가"
아파트 등의 소유자나 관리자가 소방시설의 설치·관리 여부를 점검한 뒤 불량 시설에 대해 정해진 기간 안에 수리·교체·정비하도록 한 '자체점검' 제도가 유명무실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소방당국이 법에서 정한 불량 소방시설에 대한 시정 조치 기한을 연기해달라는 요청을 거의 대부분 받아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8월 전기차 화재가 발생한 인천 서구 청라국제도시 아파트도 사고 발생 약 1주일 전에 소방당국이 시정 조치 연기 신청을 받아준 것으로 확인됐다.
10일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소방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2년 12월부터 올해 8월까지 접수된 소방시설 자체점검 시정 조치 기한 연기 신청 건수는 총 5,551건으로, 이 중 98.9%(5,495건)가 승인됐다. 19개 시·도본부 가운데 광주·대전·세종·전남·창원 등 5곳은 승인율이 100%였다.
이 제도는 민간 차원의 소방시설 점검을 강화하기 위해 1983년 도입됐는데 아파트 관리자 등이 점검을 하면 그 결과를 토대로 소방당국이 필요한 조치를 명령하던 방식으로 운영됐다. 그러나 자체점검 능력 강화를 명분으로 2022년 12월 아파트 등이 직접 시정 조치까지 한 뒤 소방당국에 보고하는 식으로 바뀌었다. 당초에는 소방당국의 조치 명령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됐지만 현재는 300만 원 이하 과태료 처분에 그친다.
지난 8월 1일 벤츠 전기차 폭발 화재로 큰 피해를 입은 청라 아파트도 사고 발생 8일 전인 7월 24일 시정 조치 기한 연기 신청을 했고 그날 바로 승인된 것으로 밝혀졌다. 해당 아파트는 6월 17~19일 사흘간 업체를 통해 점검을 했고, 그 결과 소화·경보·피난구조·제연 설비 등에서 모두 169개 불량 사항이 발견됐다. 당시 인천 서부소방서는 7월 10일 자체점검 결과보고서를 제출받은 뒤 같은 달 29일까지 시정 조치를 완료하라는 공문을 아파트 측에 보냈다.
하지만 아파트 측에서 "보수업체가 8월 20일까지 준공하기로 약속했다"며 기한 연기를 요청했고 소방당국은 현장 확인 없이 승인해줬다. 과거에는 현장 확인을 꼭 거쳐야 했지만 2022년 12월 필요시 현장 확인으로 변경됐다. 그러던 차에 8일 뒤 해당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서 전기차 폭발 화재가 발생, 주민 22명과 소방관 1명이 다쳤다. 또 차량 87대가 타고, 793대가 열손·그을림 피해를 입었다. 용 의원은 "현행법상 시정 조치 연기 사유는 재난 발생, 건물 소유권 변동 등으로 엄격하게 제한되나 소방당국은 이를 충족하지 않아도 무작정 승인해줬다"며 "자체점검 결과에 따른 시정 조치가 제때 이뤄지지 못한 점도 청라 아파트 화재 피해가 커진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정기신 세명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자체점검 후 소방당국의 현장 확인을 거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현실적으로 인력 뒷받침이 되지 않는다"며 "심각한 불량 사항이 있을 때는 구체적 조치 계획을 밝혀야만 시정 조치 연기를 해주는 방식 등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방청 관계자는 "관할 시도 소방서가 판단해 (시정 조치 기한) 연기 승인을 해주고 있다"며 "법적 요건이 돼서 승인하는 것으로, 충족되지 않았는데 승인한 경우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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