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미국 대선 격전지를 가다-3회·끝>
0.2%p 차로 희비 갈린 전통적 ‘레드스테이트’
이주민 유입·트럼프 반대가 바이든 승리로
흑인 표심·투표율이 승패 좌우할 핵심 변수
최대 격전지는 부동층 많은 애틀랜타 교외
조지아주(州)는 4년 전 미국 대선 당시 민주당 후보였던 조 바이든 대통령이 가장 힘들게 이긴 곳이다. 현재 다시 공화당 대선 후보가 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득표율 차이가 0.23%포인트(바이든 49.47%, 트럼프 49.24%)에 불과했다. 투표자가 493만5,487명에 달하는 주에서 고작 1만1,779표 차이로 희비가 엇갈린 것이다. 패배를 받아들이지 못한 트럼프가 대선 결과 전복을 시도할 요량으로 2021년 1월 초 조지아주 국무장관에게 “1만1,780표를 찾아내라”고 압력을 넣었다가 지난해 재판에 넘겨지기도 했을 정도로 접전이었다.
올해 대선 역시 팽팽하다. 지난달 19일(현지시간)부터 이달 8일까지 실시된 조지아주 대상 각종 여론조사 지지율을 미국 선거 분석 매체 리얼클리어폴리틱스가 집계하니 평균 격차가 고작 1.0%포인트였다. 추세로는 트럼프에게 유리하게 해석될 법하다. 민주당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맹추격해 바이든 퇴진 직후(7월 24일) 4.5%포인트까지 벌어졌던 차이를 빠른 속도로 따라잡을 때까지만 해도 아예 추월하는 것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지난달 중순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해리스가 후보로 추대된 뒤 오히려 트럼프 지지율이 반등했고, 이후 근 한 달간 트럼프 박빙 우위가 지속되고 있는 게 현재 판세다.
독실했던 ‘바이블벨트’의 변신
노스캐롤라이나·애리조나·네바다와 함께 ‘선벨트’(따뜻한 남부) 경합주인 조지아는 원래 공화당의 표밭이었다. 기독교 복음주의자가 흔한 미국 동남부에 자리 잡아 루이지애나·앨라배마·테네시 등과 함께 ‘바이블(성경)벨트’로도 묶일 정도로 보수적인 ‘레드(빨강·공화당 상징색)스테이트’였다.
하지만 애틀랜타의 매력이 색깔을 바꾸기 시작했다. 애틀랜타 교외에 각종 제조업 공장이 들어서면서 일자리 등에 끌려 이주민과 이민자가 몰려들었고, 인종과 민족이 다앙해졌다. 백인 비율이 줄면서 보수색도 묽어졌다.
이 흐름을 가속화한 이는 트럼프다. 처음에는 기성 정치인과 달라 참신해 보였던 그의 ‘극우 본색’이 드러나자 온건한 보수 성향 대도시 교외 유권자들이 크게 실망했다. 현재 애틀랜타 광역권에 사는 조지아 인구는 10명 중 6명에 육박한다. 그 결과가 ‘블루(파랑·민주당 상징색)웨이브’였고, 2020년 바이든 승리였다. 민주당 대선 후보가 조지아에서 승리한 것은 1992년 빌 클린턴 이후 28년 만이었다.
그러나 당파성이 뚜렷하지 않은 새 정착민들은 바이든 집권기 때 심해진 인플레이션(고물가) 탓에 먹고살기가 힘들어지자 흔들렸다. 다시 트럼프가 우위를 보이던 2024년 대선 판은 인도·자메이카계 흑인 여성 후보 해리스의 등장으로 요동치고 있다. 선거인단 규모(16명)가 7개 경합주 중 펜실베이니아(19명) 다음으로 큰 조지아를 놓칠 경우 트럼프에게 치명적이다.
백인만 많던 쇼핑몰이 달라졌다
7일부터 이틀간 둘러본 곳은 애틀랜타 북서쪽 외곽의 콥카운티(기초 행정 단위)다. 미국 시사주간지 유에스뉴스앤드월드리포트가 가장 주목할 필요가 있는 조지아 내 카운티로 꼽은 지역이다. 미국 조지아대 정치학 교수 트레이 후드는 9일 한국일보 통화에서 “온건한 교외 부동층을 최대한 확보하는 게 해리스, 트럼프 둘 모두에게 승리의 관건”이라며 “대도시와 농촌·소도시가 양당 편으로 결집한다면 애틀랜타 교외 카운티가 진정한 전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20년 전까지 콥카운티는 10명 중 7명이 백인인 지역이었다. 하지만 백인 비율은 2020년 들어 48%까지 내려왔다. 흑인(아프리카계)이 30%로 그다음이고, 히스패닉(라틴계)이 15%, 아시아계가 6%다.
콥카운티 득표율도 8년 만에 완전히 달라졌다. 2012년 대선 때 각각 42.8%, 55.3%였던 민주·공화 양당 득표율은 2020년 56.3%, 42.9%로 뒤집혔다. 콥카운티 스미나와 가까운 애틀랜타 외곽 컴벌랜드몰에서 8일 만난 60대 흑인 여성 클라우디아는 “10, 15년 전까지 애틀랜타에서 흘러온 백인들로 가득했던 이곳이 정말 많이 변했다”며 “4, 5년 전부터 흑인뿐 아니라 유색인종으로 다양해지고 있다는 게 매주 느껴질 정도”라고 말했다.
흑인 남녀 표심 분열 가능성
후드 교수는 해리스 승리의 열쇠로 ‘높은 흑인 투표율’을 꼽았다. 조지아는 7개 경합주 중 흑인 비율이 가장 높다. 33%로 미국 평균(14%)의 두 배를 훌쩍 넘는다. 7일 찾은 카운티 남서부 파우더스프링스는 흑인(52%)이 백인(29%)보다 많은 동네였다.
바이든과 트럼프 간 식상한 ‘고령 백인 남성 재대결’ 구도나, 바이든 정부 때 힘들어진 경제 형편 탓에 시큰둥하던 흑인들에게 해리스가 활력을 불어넣은 것은 분명해 보였다. 주택 수리용품 판매점 홈디포 앞에서 만난 직원 킴(66)은 “여성이 권력을 갖게 되면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다. 정부가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잘 알고 있는 카멀라(해리스)는 여성, 특히 흑인 여성을 더 세심하게 도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지아 흑인 여성을 뭉치게 만드는 해리스의 무기는 임신중지(낙태)권이다. 조지아의 경우 임신 6주 이후 임신중지가 불법이다. 인근 주에서 약을 처방받아 복용했다가 합병증으로 숨진 조지아 여성 사례가 얼마 전 공개되기도 했다. 인터뷰에 응한 조지아 주민들 중 임신중지 금지에 찬성하는 이는 찾지 못했다. 한결같이 정부가 개입해서는 안 되는 개인의 자유 및 여성의 선택권을 이유로 거론했다. 인종을 막론하고 애틀랜타 교외 온건파 부동층 여성에게는 확실한 효과가 보장된 의제라는 게 전문가 중론이다.
트럼프가 노리는 약한 고리는 흑인 남성이다. 그는 7월 말 흑인 언론인 단체 초청 토론 때 해리스는 흑인이 아닌 아시아계라며 정체성 논란을 제기했다. 여기에 해리스가 흑인을 잡아들인 검사 출신이라는 사실과 맞물려 흑인 남성의 거부감을 키웠다는 분석도 나왔다. 그들은 고물가가 민주당 책임이라고 여기며 트럼프가 자신들에게 경제적 기회를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은 보도했다. “해리스가 사회주의자인 만큼 피부색에 현혹되지 말라”고 흑인 신자들을 단속하는 보수 기독교 진영도 흑인 분열 자극 요인이다.
“해리스? 확신 없다”
게다가 ‘반(反)트럼프’ 성향 주민에게 해리스는 대안이 아니라는 얘기도 많았다. 7일 콥카운티 중심 도시 매리에타에서 만난 무당파 백인 남성 애런(44·투자 컨설턴트)도, 둘째를 임신 중인 백인 여성 민주당원 애슐리(33·회계사)도 이민 급증 문제를 단순히 추방으로 해소하려 하는 트럼프의 ‘무식한’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두 후보 다 좋은 선택지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애틀랜타 인근 디캡카운티에 살며 콥카운티에서 일한다는 흑인 남성 말리크 알리(38·배우)는 “일자리와 환경이 가장 중요한 대화 주제”라며 “임신중지권 같은 인권을 무시하는 후보는 논외지만 민주당 후보도 만족스럽지 않다. 제3당 후보에게 투표할지 망설이고 있다”고 말했다.
젊은 흑인 여성이라고 전부 해리스의 ‘집토끼’는 아니다. 7일 매리에타 소재 케네소주립대에서 만난 흑인 여학생 에마뉘엘 자토(18)는 부모 뜻에 따라 당적이 민주당이라고 했다. 투표 의향도 있다. 하지만 해리스에게 표를 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는 “트럼프의 소통 방식(com mode)이 청중에게 더 잘 다가가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2020년 대선은 사기라는 트럼프 주장에 개연성이 있고, 불법 이민이 결코 허용돼서는 안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조지아가 허리케인 ‘헐린’에 집중 강타당한 지역이라는 것도 해리스에게는 악재다. 트럼프가 유세 때마다 비방 소재로 활용하고 있는 데다 재해 피해로 민주당이 강세를 보여 온 우편과 부재자 투표에도 차질이 빚어지고 있어서다.
지난달 27일 공개된 미국 CBS방송 조지아주 지지율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트럼프(51%)는 해리스(49%)보다 오차범위 내에서 우세했다. 특히 남성(56% 대 43%), 백인(69% 대 31%), 65세 이상(59% 대 41%) 유권자 층에서 트럼프가 해리스를 압도했다. 해리스는 여성(53% 대 46%), 흑인(83% 대 15%), 45세 이하(58% 대 42%)에서 강세를 보였다. 결국 각자 지지층을 얼마나 투표소로 끌어모을 수 있느냐가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미국 대선 판세를 좌우할 핵심 변수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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