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경사 속에서, 그가 박근혜 정부의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일이 다시 회자되고 있다. 이번 수상은 작품의 가치를 함부로 재단하려는 풍토에 경종을 울린 것이다.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 ‘오징어 게임’의 황동혁 감독도 당시 블랙리스트에 포함됐다. 정권 입맛에 따라 창작의 자유를 위축시키려는 시도가 얼마나 퇴행을 부르고 개인을 넘어 국가적 손실을 초래할 위험이 큰지 다시 한번 새기게 된다.
노벨상 수상에 가장 크게 기여한 저서로 꼽히는 ‘소년이 온다’는 5·18민주화운동을 소재로 다룬 소설로, 박근혜 정부의 문화체육관광부는 한국문학번역원에 해외 문화교류 행사 지원 배제를 지시했다. 다행히 문학번역원이 이를 실행하지 않아 한 작가의 책은 해외에 널리 소개될 수 있었다. 한 작가의 대표작 ‘채식주의자’도 경기의 한 학교가 ‘청소년 유해도서’라며 폐기했다고 한다. 경기도교육청은 “학생들의 올바른 가치관 형성을 위해 부적절하다고 판단되는 내용이 포함된 도서에 대해서는 적합한 조치를 취하도록 요청한 바 있지만, 특정 도서를 유해도서로 지정하고 폐기를 지시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이번 수상은 문학적 성취를 넘어 사회적 의미도 크다. 한 작가는 5·18과 제주 4·3 사건을 정면으로 다루면서 수상의 쾌거를 이뤘는데, 정작 국내에선 이 비극의 역사를 폄훼하거나 모욕하려는 시도가 여전하다. 오죽했으면 5·18왜곡처벌법이 제정되고, 이번엔 4·3왜곡을 처벌하는 4·3특별법 개정안이 발의됐을 정도이다.
‘소년이 온다’의 주인공 동호의 실제 인물인 문재학 열사의 어머니 김길자씨는 “나는 재학이를 잊지 않으려고, 세상이 기억하도록 하기 위해 살아왔다”며 “평생 내가 못 해낸 일을 소설가 한 분이 좋은 글로 세계에 알렸다”며 기뻐했다고 한다. 아울러 이번 수상을 정치권이 진영논리로 접근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언급하며 “5·18이 우리에게 두 개의 노벨상을 안겨줬다”고 했다. 의도와 달리 역사적 비극을 수단화하는 듯 읽힐 수 있다. 정치권은 축하로 족하며 한발 떨어져 있는 것이 예의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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