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된 믿음 : 무속 대해부>
대관령·계룡산·인왕산 6박 7일 기도터 탐방
무당들 북적 "기도발 받으려" "신도 위해서"
영적 능력 키운다며 전국의 명산 돌며 수행
'과잉 신내림' '무당 피라미드' 상업화 걱정도
편집자주
하늘과 땅을 잇는 원초적 존재, 무당은 우리와 함께 살아간다. 미신으로 치부되기도 하고 범죄의 온상이 될 때도 있지만, 사람들은 그들을 통해 위로를 받기도 한다. 한국일보는 석 달간 전국의 점집과 기도터를 돌아다니며 우리 곁에 있는 무속의 두 얼굴을 조명했다. 전국 어디에나 있지만, 공식적으론 어디에도 없는 무속의 현주소도 파헤쳤다. 문화 코드로 자리 잡은 무속이 나아갈 길에 대해서도 모색했다.
"여기 묘하네. 완전 '파묘' 분위기야."
9월 7일 오전 강원 평창군 대관령 산기슭에서 한 등산객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그의 눈은 16.5㎡(5평) 남짓한 기와 건물로 향했다. "둥둥둥" 울리는 북, 징 소리에 맞춰 경을 읊는 스님의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건물 안 제단 위에는 사과와 포도, 배, 요구르트, 소주병이 놓여 있었고, 형형색색 부채와 오방색 깃발이 바닥을 화려하게 덮고 있었다. 하산길에 마주한 뜻밖의 광경에 등산객들의 표정에는 호기심이 잔뜩 묻어났다.
이곳은 대관령 국사성황당. 보통 사람들에겐 강릉시와 평창군 사이 '선자령 등산코스'에서 우연히 마주한 작은 기와집 정도로 보이겠지만, 스님에게는 매우 특별한 장소다. 등산객 무리가 발길을 돌린 뒤에도 징 소리는 계속 울렸다. 스님과 함께 있던 중년 여성 3명은 사방을 향해 절을 하고, 오방색기를 흔들며 부채를 들고 뛰었다. 한 여성이 오방색기 중에서 청색 깃발을 뽑자 스님은 "엄마 쪽을 풀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1시간 넘게 의식이 진행된 뒤에야 스님은 건물 밖으로 나왔다.
"어릴 때 출가했는데, 살다 보니까 무속 일도 하게 됐어요. 알려지면 절에서 쫓겨나요. 여성분들은 신내림 받은 무당들인데, 오늘은 그분들한테 (영적으로) 막혔던 것을 치워내고 '문을 여는' 치성(신에게 정성 들여 비는 행위)을 드린 거예요. 새로운 문이 열리면 무당도 한 단계 더 올라갈 수 있거든요. 특히 여기 국사성황당은 무당이라면 대부분 거쳐가는 곳이라 많이 옵니다."
스님 말대로였다. 이날에만 국사성황당과 인근 산신각에 70명 이상이 찾아왔다. 구경 온 등산객도 있었지만 소지품이나 행색, 기도하는 모습을 보니 대부분 무속인과 함께 온 신도들이었다. "내가 무당이요" 밝히지 않더라도 오방색기나 부채, 방울 등 무구(巫具)를 들고 다니는 경우가 많아 등산객과 구분이 어렵지 않았다.
"무당이 궁금하면 국사성황당 같은 기도터에 한번 가봐요. 몰래카메라 설치하고 싶어질 정도로 재밌는 광경이 많습니다."
기도터 탐방은 무속 전문가 조성제 무천문화연구소장의 한마디에서 시작됐다. 늦여름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9월 2일부터 6박 7일간 서울 인왕산, 충남 계룡산, 강원 대관령의 기도터를 찾았다. 방송이나 유튜브,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보여주는 화려한 무당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무당을 보기 위해서다. 그곳에서 무당과 그 가족, 기도터 운영자와 신도 등 31명을 인터뷰했고, 그 가운데 19명은 스스로 '신내림을 받은 무당'이라고 밝혔다.
① 신: 신기를 위해 빌다
무당들은 왜 산에 오를까. 그들이 말하는 첫 번째 이유는 '신'(神)이다. 맑은 기운을 받아 영적 능력을 키우고, 신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산에서 기도한다는 것이다.
9월 8일 국사성황당 앞에서 만난 김창준(61)씨는 무당인 배우자 목화선녀(61)의 '영'을 위해 22년간 전국 기도터를 함께 돌아다녔다고 했다. 사업 실패 후 아내가 신내림을 받자 '무당 로드매니저'로 직업을 바꿨다. 이날도 목화선녀가 기도하는 사이, 김씨는 성황당 앞에서 담배를 피우며 인스턴트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무속인은 산천(山川)이랑 길에서 까먹는 돈이 너무 많아요. 한 달에 열 번 넘게 기도를 다녀야 하니까. 집사람 하는 말이 기도 많이 해야 '기도발' 받는대요. 집에만 있으면 영이 떨어져서 점도 잘 못 본다나."
기도는 사방으로 절을 한 뒤, 가만히 앉거나 엎드려 명상하는 방식이 가장 흔했다. 부채나 오방색기를 흔들고, 징을 치기도 했다. 기도하는 사이 내면에선 어떤 일이 벌어질까. 계룡산에서 만난 한 무당은 이렇게 말했다. "일반 사람들이 대화하는 것처럼 '신'과 대화하는 거예요. '신'에게 질문하고 답을 듣고. 답을 안 주실 때도 있지만…"
무당들은 전국의 기도터를 다닌다. 김씨는 아내를 데리고 북쪽으로는 파주와 고성 통일전망대, 남쪽으로는 부산, 해남, 제주도까지 1년에 1회 이상 방문한다. 국사성황당은 집에서 가까워 매달 한두 번은 꼭 찾는다고 했다.
발품을 팔아 여러 곳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도터마다 특색이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인왕산은 무속인들 사이에서 '한국 무속의 본점'으로, 계룡산은 '최고의 기가 발생하는 산'으로, 대관령은 '백성을 지키며 문을 열어주는 공간'으로 인식돼 있다.
특히 인왕산 선바위와 국사당은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있어 무당들이 자주 찾는다.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에서 15분 정도 걸으면, 아파트 단지를 지나자마자 '무속의 공간'이 펼쳐진다. 이곳에서 만난 40대 무당은 "인왕산은 무당들이 신내림 받고 나서 물꼬를 트는 곳"이라며 "무당이 됐으면 여기 와서 도장 찍고 가야 한다"고 했다. 선바위 뒤쪽 '산신각'을 관리하는 박갑순(89) 할머니는 "요즘은 적게 오는 편이지만, 예전에는 인왕산에 무당이 쫙 깔렸다. 선바위에 무당들이 놓고 가는 기도비만 하루에 200만 원 정도였다"고 전했다.
몸소 체험한 '신'... 믿음은 굳건했다
'영험함'을 좇아 전국을 돌며 기도하는 행위는 '신'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어야 가능하다. 기도터에서 만난 무당 가운데 '신'의 존재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의심은커녕 "젊어서 못 느끼는 것일 뿐 신은 분명 있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이들은 굿이나 점사처럼 당장 돈 벌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순전히 '영적 능력'을 얻으려고 먼 거리를 달려왔다고 했다.
믿음의 원천에는 무당이 되기 전 몸소 체험한 '무병'(신병)이 있었다. 무당이 된 계기를 구체적으로 밝힌 11명 중 10명은 무병을 앓았다고 했다. 그들이 묘사한 증상은 △우울증 △거식증 △근육통 △소화장애 △공황장애 △황달 등과 유사했고, 여러 증상을 동시에 겪었다는 이들도 있었다. 인왕산에서 만난 무당 해광신궁(39)은 이렇게 말했다.
"우울증을 오래 앓았어요. 3년 동안 잘 못 자고 음식도 거의 못 먹고 토했어요. 서울에서 유명한 병원, 한의원을 20곳 이상 다녔고, 용하다는 대구와 삼척 한의원까지 가봤는데 효과가 없었어요. 병원에선 '약을 바꿔봅시다' 이런 말밖에 못 들었고요. 코로나 걸려서 가장 아팠을 때의 상태가 3년 정도 지속됐다고 보면 돼요."
신내림을 받고 무병 증상이 '귀신같이' 사라진 점도 '신'을 향한 믿음을 키웠다고 했다. 해광신궁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점집 가보라'는 조언을 듣고 무당을 찾아간 뒤 신내림을 받았고, 이후 무병이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음식 토하고 잠 못 자는 게 가장 힘들었는데, 바로 사라졌어요. 라면 하나를 제대로 먹을 수 있게 됐다니까요. 근육통처럼 몸을 꽉 짜는 느낌도 없어졌어요."
② 복 : 다른 이의 복을 빌다
기도터에선 신도나 다른 사람의 '복'을 빌어주는 무당도 적지 않았다. '신'과 소통해 신도의 액운을 쫓고 소원 성취를 도우려 기도한다는 것이다.
무당 황영이(66)씨는 9월 3일 신도를 데리고 인왕산에 왔다. 그는 동행한 신도를 위해 기도했다고 했다. 신도는 자신을 "손님이자 운전기사"라고 소개할 정도로 황씨와 돈독해 보였다. 한 달에 한 번 신도가 운전해서 두 사람이 함께 기도터를 다닌다고 했다.
대관령 국사성황당에선 신도 가족을 대상으로 작은 굿판이 벌어졌다. 충남 청양에서 왔다는 무당은 "신도의 사업을 잘되게 해주는 '조상굿'을 했다"며 "다른 데서도 했는데, 일이 안 풀려서 대관령까지 왔다"고 귀띔했다. 스스로 '월곡동 족집게 무당'이라고 칭한 또 다른 무당은 '무속인의 삶'이 어떤지 묻자 이렇게 답했다.
"무속인이라면 인연 있는 백성들을 위해, 한 가정의 각성바지(성이 각각 다른 사람)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원한이 있는 혼백이라든가, 그 조상들을 풀어줘야 재가집(무속 의식을 결정하는 신도)이 잘되거든요."
정신과 보내는 무당, 약 끊으라는 무당
일부 무당은 스스로를 무형 서비스 제공자로 인식했다. 단순히 '복'을 빌어주는 차원을 넘어 상담자 역할을 강조했다. 해광신궁은 이를 '힐링 신점'이라고 불렀다.
"요즘엔 속 얘기를 할 곳이 없잖아요. 나도 '어떻게 해야 된다'고 방향을 얘기해주긴 하지만, 그 사람의 고민을 들어주는 것 자체가 중요합니다. 어떻게 힘들었고 얼마나 마음고생이 컸는지,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되거든요."
신도를 대할 때 무속 행위와 현대 의학의 공존을 고민하는 무당도 있었다. 서울 논현동에서 점집을 운영하는 빅토리아(54)는 신도가 찾아오면 △점을 봐야 할지 △심리 상담을 해야 할지 △정신건강의학과에 보내야 할지 우선적으로 판단한다고 했다. 점집에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면 "최면 치료를 받는 게 어떻겠느냐"며 병원을 찾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무속에 과도하게 심취해 손님에게 위험한 처방을 내릴 것 같은 무당도 있었다. 계룡산에서 만난 한 무당은 "현대인들이 앓고 있는 암, 정신병, 우울증의 원인은 '신'이기 때문에, '신'으로 못 고칠 건 없다"고 말했다. 그에게 '손님에게 우울증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어떻게 하느냐'고 묻자 "약 먹지 말고, 차라리 쌀 한 말 올리고 기도하자고 말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③ 전 : 돈을 위해 빌다
기도터에선 상업화된 무속의 단면도 보였다. 점집이나 굿당만큼은 아니지만 기도터 역시 '돈벌이의 장'이었다. 대관령에서 진행된 작은 규모의 '조상굿'을 지켜보던 한 무속인은 "최소 수백만 원짜리"라고 알려줬다.
기도터에선 무당이 기도하는 모습을 일행이 휴대폰 카메라로 찍어주는 장면도 목격됐다. 신도가 함께 오지 못한 경우 '당신을 위해 이렇게 기도했다'고 증명하는 용도다. '원격 기도 거래 시스템'인 셈이다.
무당들 사이에서도 '돈'은 주요 화두였다. 인터뷰에 응한 대다수 무당은 지나친 상업화에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무속 사기' 문제도 인식하고 있었다. 인왕산에서 만난 40대 무당 박모씨는 "요즘엔 진짜 무당은 별로 없고, 70%는 돈이 목적"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무당 매니저' 김씨도 "자세히 보면 90%가 '사짜'(사기꾼)"라며 혀를 찼다. 해광신궁은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했다. "시간 지나면 점을 잘 보는지 못 보는지 알려지잖아요. 그래서 무당 일 시작할 때 (손님들이 실력을 잘 모르니까) 세게 당기는 것 같아요."
돈을 노리는 사기 수법을 구체적으로 증언하는 이도 있었다. 계룡산에서 만난 무당 임미애(62)씨는 "어떤 무당이 '너 진짜 나쁜 일 있다. 누가 곧 죽을 거다'라고 말하면 사기, 협박이라고 봐야 한다"며 "문제는 사기 치는 무당들이 돈을 잘 벌고, 착한 무당들은 힘들다는 것"이라고 했다. 빅토리아는 "사업 운이든 이직이든 점 보러 온 목적이 있을 텐데, '왼쪽에 할머니 모시고 왔네. 전쟁통에 돌아가신 분이 있네'라며 무관한 얘기를 하는 무당들은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무당 피라미드까지... '신' 집어삼킨 '돈'
무당들은 '과잉 신내림굿' 문제도 알고 있었다. '신'을 내려 무당으로 만드는 '신굿'은 굿 중에서도 가장 비싸다. 이 돈을 노리고 무속인이 될 필요가 없는 사람에게 '신을 받아야 한다'고 겁을 주는 무당이 많다는 것이다. 신굿이 극성을 부리다 보니 무당들이 이른바 '신제자'를 양산하고, 그 제자들이 다시 제자를 양산하는 '무당 피라미드'까지 생겨났다.
과잉 신굿은 젊은 무당들 사이에서 특히 화제였다. 무당 박은영(37)씨는 2030 무당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폭로했다. "신내림을 해준 무당이 다음 날부터 연락이 안 돼요. '100일 기도 들어가라'고 하고 잠수 타요. 그러면 아무것도 모르는 애동(견습 무당)은 물어볼 데가 없잖아요. 그러다 보니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 애동끼리 모여 소통하고 공부하기도 해요. 신굿은 받았는데 '이 길이 아닌가' 걱정하는 애동들이 정말 많아요."
박씨 역시 채팅방을 통해 만난 무당 김종우(29)씨와 함께 계룡산에서 기도를 하던 중이었다. 김씨는 "대출까지 받아 신굿 받았는데 말문이 안 터져서 무당 일 못 하는 사람들 많이 봤다. '무당이 무당 잡아먹는다'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고 거들었다.
지나친 상업화와 무속 사기의 폐해는 고스란히 무당들에게 돌아온다. 계룡산에서 만난 무당 우모(54)씨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무속이 토속신앙인데도 부정적 인식이 강한 건 자초한 거예요. 좋은 무당도 있지만, 이미지를 깎아먹는 무당들이 워낙 많잖아요."
그럼에도 내부 자정은 쉽지 않아 보인다. 대부분 '나와는 무관한 얘기'로 치부하기 때문이다. 인터뷰에 응한 무당들은 "목사나 스님 중에도 사기꾼은 있지 않느냐. 사기 치는 무당에게는 '신'이 알아서 벌 줄 것"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무속인들이 바뀔 수 있겠느냐'고 묻자, 우씨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힘들다고 봐요. 무당들은 단합이 안 되거든요. '그 무당은 당신과 다르게 얘기하던데'라고 하면, 대번 '거기서 사기친 거야'라고 하잖아요. 서로가 서로를 사기꾼이라고 부르고, 다들 '내 신령님이 최고'라고 하는데, 어떻게 화합할 수 있겠어요?"
■한국일보 엑설런스랩
팀장 : 이성원 기자
취재 : 손영하·이서현 기자, 이지수·한채연 인턴기자
사진 : 하상윤·정다빈 기자
영상 : 김용식·박고은·박채원 PD, 김태린 작가, 전세희 모션그래퍼, 이란희·김가현 인턴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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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판을 걷어차다
사람 잡는 무속
기도터 가는 이유
산업화된 점집
시대와 공존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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