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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취업·결혼… '초고속 온라인 점술' 호황… 신뢰성은 의문

입력
2024.10.20 13:00
수정
2024.10.20 14:33
0 0

<방치된 믿음 : 무속 대해부>
유튜브·틱톡·오픈카톡이 '점술' 창구로
'오늘의 운세' 제공 앱 방문자 2배 증가
예약·방문 없이 곧바로 결과 나와 선호
"질적 담보 안 돼... 연출 많아 주의를"

편집자주

하늘과 땅을 잇는 원초적 존재, 무당은 우리와 함께 살아간다. 미신으로 치부되기도 하고 범죄의 온상이 될 때도 있지만, 사람들은 그들을 통해 위로를 받기도 한다. 한국일보는 석 달간 전국의 점집과 기도터를 돌아다니며 우리 곁에 있는 무속의 두 얼굴을 조명했다. 전국 어디에나 있지만, 공식적으론 어디에도 없는 무속의 현주소도 파헤쳤다. 문화 코드로 자리 잡은 무속이 나아갈 길에 대해서도 모색했다.

"음력 2001년 O월 O일 X시 X분 창원 황씨입니다. 올해가 원하는 대로 잘 지나갈 수 있을까요? 너무 스트레스받아서요."(23세 여성)

"이분은 신가물(신의 제자가 될 운명이 있는 사람)이에요. 남들보다 늦게 자리를 잡는데, 문제는 중간에 환란이 너무 많이 와. 돈의 환란, 인간의 환란, 가족의 환란. 정상적인 직장에 다닐 수 없는 사주야. 저한테 연락주세요. 그냥 (유튜브에서) 이렇게 말할 사주가 아니에요."(J보살)

유튜브에 '무당' '신점' 등을 검색하면 손쉽게 무당 관련 콘텐츠를 접할 수 있다. 유튜브 캡처

유튜브에 '무당' '신점' 등을 검색하면 손쉽게 무당 관련 콘텐츠를 접할 수 있다. 유튜브 캡처

9월 25일 오후, 구독자 19만5,000명의 무속 유튜브 채널. 무속인 3명이 나란히 카메라를 향해 앉아 실시간 채팅창에 올라오는 질문을 하나하나 읽으며 술술 답변을 내놨다. 이들은 음력 생년월일, 나이, 성별, 이름이나 성씨 등 단편적인 정보만 제공받고도 결혼, 이사, 이직, 재물 등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줬다. 2시간 동안 60여 명에게 점사(점괘로 길흉을 설명하는 것)를 봐줬지만, 비용은 받지 않았다. 대신 화면 위쪽에는 이들의 연락처 3개가 적혀 있었다.

유튜브, 운세앱, 카톡... '운세'가 파고들었다

신점·사주풀이·타로 등 운세 산업이 2030세대를 등에 업고 온라인에서 성행하고 있다. 서울 성북구 미아리 등 무당과 역술인이 모여 있던 점성촌이 쇠퇴하는 사이, 점술 서비스는 온라인 공간으로 자리를 옮겼다.

유튜브나 틱톡 같은 동영상 플랫폼이 대표적이다. 라이브 방송은 무당들의 주요 콘텐츠다. 가벼운 질문을 받아 무료 점사를 봐주며 관심을 끈 뒤, 유료 점사로 손님을 끌어들이는 식이다.

9월 25일, 유튜브 라이브 방송에서 무속인 3명이 '무료 점사'를 봐주고 있다. 유튜브 캡처

9월 25일, 유튜브 라이브 방송에서 무속인 3명이 '무료 점사'를 봐주고 있다. 유튜브 캡처

유튜브 영상은 운세업의 주요 광고 수단이기도 하다. 성북구에서 점집을 운영하는 이모(49)씨는 "지나가다 점집 간판을 보고 들어오는 손님은 드물고, 대부분 유튜브 등에서 광고를 보고 전화로 먼저 연락한다"고 설명했다. '무당 유튜브'가 워낙 많으니 영상 제작업체도 돈벌이가 된다. 네이버 지도에 점집과 연락처를 등록해 놨다는 60대 무당은 "영상업체에서 유튜브 영상 찍으라고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가 온다"고 말했다.

운세를 테마로 한 애플리케이션(앱)을 향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스타트업 분석업체 '혁신의숲'(innoforest.co.kr)에 따르면, 운세앱 '점신'의 월간 고유 방문자(MUV)는 2022년 3월 52만4,000명에서 2024년 8월에는 112만9,000명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같은 기간 또 다른 운세앱 '포스텔러' 방문자 역시 28만8,000명에서 52만1,000명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그래픽=강준구 기자

그래픽=강준구 기자

운세앱 인기의 1등 공신은 2030세대다. 올해 8월 기준 '포스텔러' 유료 서비스를 구매한 소비자의 절반 이상(53.9%)이 20대 이하 여성이었고, 30대 여성도 29.2%를 차지했다. '점신' 역시 2030 여성이 전체 유료 서비스 구매자의 절반 이상으로 추정됐다. '포스텔러'를 개발한 심경진 '운칠기삼' 공동대표는 "운세앱을 지속적으로 이용하는 고객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기대감을 동시에 갖고 있는 젊은 층"이라며 "특히 여성들이 '나에 대한 이야기'를 더 선호하는 것 같다. 글로벌 서비스를 해보니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카카오, 네이버와 같은 대형 플랫폼에서도 운세 서비스의 인기를 확인할 수 있다. 9월 25일 카카오톡에서 '신점'을 검색하자 오픈채팅방 800여 개가 나왔다. 대부분 '무료 신점' '사주팔자' '연애 고민' '꿈 해몽'과 같은 제목과 해시태그를 달고 있었다. 유튜브·틱톡과 마찬가지로 간단한 질문에 답해주는 무료 상담으로 관심을 끈 뒤, 유료 서비스로 유인하는 방식이었다.

카카오톡 오픈채팅 '신점' 검색 결과(왼쪽 사진)와 네이버 엑스퍼트 운세 관련 상담 상품. 온라인 캡처

카카오톡 오픈채팅 '신점' 검색 결과(왼쪽 사진)와 네이버 엑스퍼트 운세 관련 상담 상품. 온라인 캡처

전문가 상담 서비스 '네이버 엑스퍼트'에는 운세·타로·작명 카테고리에 상품 1만8,055개, 전문가 4,549명이 등록돼 있었다. 심리 분야로 함께 분류된 심리상담, MBTI·심리검사, 미술·언어치료에 등록된 상품과 전문가를 모두 더한 규모(상품 2,432개, 전문가 927명)보다 훨씬 많았다. 운세가 포털사이트의 핵심 콘텐츠로 자리 잡은 셈이다.

쉽고 편리하지만, 신뢰성 의문

온라인 운세 서비스의 최대 장점은 접근성이다.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 한 참가자가 "전공을 살릴지, 새로운 일에 도전해야 할지" 묻자, 곧바로 "지금 전공으로 취업하면 만족이 되지 않을 것"이란 답이 돌아왔다. 상담을 예약할 필요도 없고, 점집에 방문할 필요도 없이 몇 초 만에 '진로 솔루션'을 얻은 것이다. 온라인 사주를 본 경험이 있다는 대학생 강모(23)씨는 "직접 점집에 가기도 귀찮고, 용하다는 곳은 예약도 오래 기다려야 한다"며 "직접 만나서 대화하면 까먹는데, 전화 녹음이나 (사주 내용이 정리된) 문서는 평생 간직할 수도 있다"고 했다.

지난 8월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굿당'에 유튜브 제작업체 광고가 붙은 모습. 굿당을 찾는 무속인들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손영하 기자

지난 8월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굿당'에 유튜브 제작업체 광고가 붙은 모습. 굿당을 찾는 무속인들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손영하 기자

문제는 점술업의 특성상 서비스 제공자의 전문성이나 신뢰성을 제대로 따져 볼 수 없다는 데 있다. 무속인들조차 온라인 점술업에 부정적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경기 부천시에서 점집을 운영하는 30대 무당은 "유튜브 등으로 진입장벽이 낮아진 건 좋지만,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질적으로 담보가 안 된다. 유튜브 영상 중 대본, 연출도 많지 않으냐"고 말했다.

온라인 광고가 성행하면서 굿값 등이 올라가는 부작용도 있다. 서울 논현동의 50대 무당은 "유튜브 광고 영상을 만드는 데 비용이 어마무시하다"며 "결국 점집에 오는 소비자한테 복채나 굿값을 더 올려 받는 수밖에 없다"고 귀띔했다.

■한국일보 엑설런스랩
팀장 : 이성원 기자
취재 : 손영하·이서현 기자, 이지수·한채연 인턴기자
사진 : 하상윤·정다빈 기자
영상 : 김용식·박고은·박채원 PD, 김태린 작가, 전세희 모션그래퍼, 이란희·김가현 인턴PD


손영하 기자
이성원 기자
이서현 기자
이지수 인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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