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8 제럴드 포드의 닉슨 사면- 2
제럴드 포드는 TV 회견에서 워터게이트 스캔들 이후 닉슨의 가족이 겪어온 비극은 “우리 모두가 한몫을 한 비극”이라고 운을 뗀 뒤 “이 비극은 계속될 수도 있고, 누군가 끝내야 할 수도 있다. 오직 대통령만이 끝낼 수 있다면, 즉 내가 할 수 있다면 해야 한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길고도 지루한 재판으로 국론이 분열될 우려도 언급했다.
그의 결정의 배경을 두고 여러 설이 있었다. 다양한 시나리오를 두고 자기 정당의 이해를 저울질한 결과라는 설, 우직한 성정으로 알려진 포드가 참모들의 권고를 뿌리치고 개인적으로 내린 결단이란 설 등등. 워터게이트 특종 기자인 워싱턴포스트의 밥 우드워드는 포드 부고 기사에서 “닉슨과의 우정 때문에 (개인적으로) 내린 결정이었다”고 포드가 말한 적이 있다고 썼다.
그는 전임 부통령 스피로 애그뉴의 사임으로 선거 없이 부통령이 됐다가 역시 선거 없이, 다시 말해 수정헌법 25조 규정에 따라 대통령직을 승계한 미국 최초 유일 대통령이다. 닉슨 사임은 900일이 채 안 된 그의 임기 내내 엄청난 정치적 짐이 됐다.
그는 베트남전쟁 반전 분위기와 패전으로 인해 더 악화한 여론, 전쟁 인플레이션 후유증에다 석유파동으로 인한 고물가 등 스태그플레이션을 감당해야 했다. 재임 중 유방암에 걸린 부인 베티 포드의 공개적인 투병과 낙태 등 여성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조력도 한계가 있었다. 그는 1976년 예비선거에서 로널드 레이건 후보를 간신히 누르고 후보로 지명됐지만, 본선에서 민주당 지미 카터에게 패했다.
사면 발표 직후 리처드 닉슨은 자신의 캘리포니아 자택에서 사면 수락 기자회견을 했다. 그는 “정치적 스캔들이 국가적 비극으로 커졌을 때 더 단호하고 솔직하게 대처하지 못한 잘못”을 인정했다. 포드는 자신을 정당화해줄 부적인 양, 1915년 미국 대법원 판례(Burdick v. US)의 한 구절, ‘사면은 죄의 추궁을 내포하고 사면의 수락은 죄의 자백을 내포한다’는 글을 지갑 속에 간직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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